유럽 각국이 기업 법인세 인상 카드를 잇달아 꺼내 들고 있다. 경제성장률이 둔화하고 있지만 재정적자 규모를 줄이지 못하면 중장기적으로 더 큰 어려움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최근 예산안을 통해 한시적 증세안을 발표한 프랑스에 이어 영국도 기업 세금 인상 카드를 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내홍에 빠진 프랑스와 영국

성장 정체 비상인데…유럽 줄줄이 증세
15일(현지시간) 외신에 따르면 지난주 대기업과 고소득층에 대한 한시적 증세로 추가 세수 193억유로(약 28조5000억원)를 마련하는 예산안을 공개한 프랑스 정부는 예산안의 의회 통과에 전력을 쏟고 있다. 취임 당시 법인세율을 25%까지 내려 경제를 성장시키겠다고 공언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도 엘리제궁 예산 증액을 포기하며 지원 사격에 나섰다. 만성 재정적자에 시달린 프랑스는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110%가 넘는 약 3조2000억유로 국가 부채로 올해 이자로만 500억유로 이상이 들어갔다. 내년에도 올해보다 150억유로 늘어난 3000억유로의 국채를 재발행해야 한다. 프랑스 국채 금리는 스페인보다 높은 상태이며 신용평가사 피치는 지난 11일 프랑스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했다.

프랑스는 대기업 증세로 총 136억유로 추가 세수를 확보할 계획이다. 매출 10억유로(약 1조4000억원) 이상~30억유로(약 4조4000억원) 미만인 기업은 2024년과 2025년 이익에 대해 법인세율이 최고 30%로, 매출 30억유로 이상 기업은 36%로 인상된다. 400여 개 프랑스 기업이 법인세 인상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패션·잡화 기업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의 장자크 기오니 최고재무책임자(CFO)는 “내년 최대 8억유로(약 1조2000억원)의 추가 세금을 낼 것으로 예상된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우파 정당과 기업들은 세금 인상이 일자리 감소, 경기 침체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다. 프랑스 중소기업연합회(CPME)는 “정부의 증세로 기업의 비용이 급격히 상승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영국 정부도 오는 30일 발표할 예산안에 기업의 간접세 인상 방안을 담을 예정이다. 레이철 리브스 영국 재무장관은 “예산 균형을 맞추기로 결심했다”면서도 “소득세와 부가가치세를 인상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BBC방송은 “노동당 정부가 법인세를 25% 이상으로 높이지 않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기업이 부담하는 국민연금, 고용보험, 의료보험 등 간접세를 대폭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네덜란드와 에스토니아는 내년부터 각각 법인세를 1.5~2%포인트 인상할 방침이다.

○국경을 넘는 법인세 갈등

이탈리아도 은행·보험사에 대한 세액공제를 제한하는 방식 등으로 횡재세를 부과해 35억유로를 추가로 걷는 방안을 이날 발표했다. 이탈리아는 국가 부채 비율이 137%에 달하는 악조건에서 경기 부양을 위한 재원도 마련해야 한다. 이탈리아는 작년 GDP의 7.2%에 달하는 적자를 기록해 유럽연합(EU)의 제재를 받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탈리아는 정보기술(IT) 플랫폼 기업을 겨냥한 디지털 서비스세 인상도 검토 중이다. 이탈리아는 2019년부터 대형 디지털 플랫폼 기업의 인터넷 거래 수익에 3% 세금을 부과하고 있다. 미국이 통상 보복을 검토하며 반발한 탓에 글로벌 최저한세가 도입되면 이를 폐지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이에 앞서 디지털세 인상을 강행할 경우 미국 정부가 반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유럽 내에서 세율을 낮춰 기업을 유치하려는 국가들 때문에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3일 다국적기업에 대한 최소 법인세 규제를 위반한 스페인, 키프로스, 폴란드, 포르투갈 등을 고발했다. 국가 부채 비율이 GDP의 63.6%에 불과한 독일 역시 기업 경기를 살리는 게 우선이라고 판단해 각종 세금 공제와 보조금 정책을 시행할 예정이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