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관리 공백'에 늘어난 가계빚…디딤돌·버팀목 올 30조 폭증
금융당국의 한 고위 관계자는 지난 3월 사석에서 “디딤돌 대출이 가계부채 뇌관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 디딤돌 대출이 급증할 수 있다는 게 그의 걱정이었다. 당시는 가계대출이 두 달 연속 감소하는 등 안정세를 보이는 시기였다.

걱정은 현실이 됐다. 디딤돌(구입)·버팀목(전세) 등 국토교통부의 정책모기지 잔액은 올 들어 매월 3조~4조원씩 불어났다. 지난달까지 디딤돌·버팀목 대출 잔액은 30조원 늘어 은행권 전체 주택담보대출 증가분(46조5000억원)의 64%를 차지했다.

○여전업 DSR 미적용 대출 92%

대출 '관리 공백'에 늘어난 가계빚…디딤돌·버팀목 올 30조 폭증
16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제출받은 ‘금융권 가계대출의 DSR 적용 현황’ 자료를 보면 금융당국의 고민을 확인할 수 있다. 정책모기지를 포함한 DSR 미적용 가계대출 비율이 전체의 63.3%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DSR은 차주의 연간 원리금 상환액을 연소득으로 나눈 값이다. 현재 기준은 은행권이 40%, 2금융권은 50%다. 연봉 1억원인 사람은 은행에서 원리금 상환액 4000만원 이하까지 돈을 빌릴 수 있다는 의미다.

DSR 규제는 총대출이 1억원 이상인 차주에게만 적용된다. 정책모기지와 전세자금, 중도금·이주비, 서민금융 등은 규제 대상이 아니다. 은행권의 올 상반기 신규 가계대출에서 정책·전세·중도금·이주비 대출 비중은 28.2%로 집계됐다.

규제가 느슨한 2금융권의 DSR 미적용 대출 비율은 더 높은 것으로 파악됐다. 여전(신용카드)업권의 미적용 비율은 92.1%에 달했다. 현금서비스, 할부·리스 등은 DSR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정책모기지 엇박자도

‘규제 공백’의 여파는 가계부채 증가로 이어졌다. 올 9월까지 가계대출 잔액은 40조9000억원 증가해 작년 전체 규모(37조1000억원)를 넘어섰다. 지난 8월에는 월간 역대 최대인 9조7000억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전체 가계부채 잔액은 1780조원으로 실질 국내총생산(GDP·1996조원) 규모에 육박했다.

정책모기지와 전세대출이 포함된 주택담보대출은 46조5000억원으로 전체 가계대출보다 많았다. 신용대출 등 다른 대출은 오히려 줄었다는 얘기다. 정책모기지와 전세대출만 잘 관리해도 가계부채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부처 간 정책모기지 ‘엇박자’도 가계 빚 증가 요인으로 꼽힌다. 금융위원회는 소관 대출 상품인 보금자리론의 금리를 시중 금리 이상으로 올려 올해 보금자리론 잔액을 16조원 감소시켰다. 반면 국토교통부는 디딤돌·버팀목 대출을 쏟아내다 지난 8월에야 금리를 0.2~0.4%포인트 올렸다. 30년 만기 디딤돌 대출 금리는 연 3.95%로 연 4%대인 은행 주담대보다 여전히 낮다.

디딤돌 대출은 부부합산 연 소득 6000만원 이하인 무주택자가 받을 수 있다. 서민의 내 집 마련을 지원한다는 정책적 취지가 담겨 있다. 하지만 취약계층의 무리한 대출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만만찮게 제기된다.

박춘성 한국금융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장은 “가계부채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려면 정책모기지와 전세대출에 DSR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정부는 DSR 적용 확대 등 다양한 가계부채 관리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전세대출에선 유주택자 전세대출의 이자부터 DSR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전세 및 정책모기지에서 주택 가격과 지역, 소득 수준별로 차등화해 DSR을 적용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강현우/최한종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