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알코올 의존증 100만명 넘는데…전문병원은 겨우 8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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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상 100% 채워도 환자 0.12%만 입원 가능
치료 늦어지며 주취자 범죄 끊이지 않아
"알코올 전문병원 수가제도 개선해야"
치료 늦어지며 주취자 범죄 끊이지 않아
"알코올 전문병원 수가제도 개선해야"
국내 알코올 의존증(알코올 중독) 환자 수가 100만 명을 훌쩍 넘어설 것으로 추산되는 가운데, 알코올 질환 전문병원은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때문에 중독 초기에 치료를 받지 못하거나 일반 정신과병원에서 진료를 받는 환자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알코올 의존증 치료에 수가 인상 등의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7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내 알코올 질환 전문병원은 경기도 4곳, 충북 2곳, 부산·광주 각각 1곳 등 전국에 총 8곳에 수준에 불과하다. 복지부는 알코올 환자 비율 66% 이상, 전문의 3명 이상, 80병상 이상 등의 필수조건을 충족하는 정신과 병원을 알코올 질환 전문병원으로 인증해주고 있다. 해당 병원엔 복지부가 의료질평가지원금과 전문병원관리료 등 전문병원에 해당하는 수가를 적용한다.
이 8곳의 전문병원이 보유한 병상 수는 총 1712개다. 그런데 복지부의 2021년 정신건강실태조 따르면 국내 알코올 사용장애의 1년 유병률은 2.6%로, 국내 환자 수가 134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전문병원 8곳이 알코올 의존증 환자만 받는다고 가정하더라도 전체 환자의 0.12%만 수용할 수 있는 셈이다. 지난해 알코올 의존증으로 치료받은 환자 수는 6만2818명에 불과한데, 이마저도 전문병원들이 수용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알코올 의존증 환자가 전문병원에서 치료받기 위해 수 주씩 기다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지적이다. 동생의 알코올 의존증 입원 치료를 계획 중인 박모 씨(52)는 "집이랑 가장 가까운 전문병원인 일산 카프성모병원에 문의했는데 초진을 받으려면 3주 정도 대기해야 한다는 답을 받았다"고 했다. 다른 전문병원들도 입원하기 위해선 2주~4주씩 기다려야 하는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알코올 의존증은 중증으로 악화하기 전 초기 치료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대기 과정에서 치료의 '골든 타임'을 놓칠 때가 많다. 국내 주취자 범죄가 늘어나는 이유도 알코올 의존증에 대한 조기 진단과 초기 치료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2022년에 검거된 살인범 중 37.5%, 방화범의 39%가 주취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 지난해 주취자로 인한 경찰 출동 건수도 전국적으로 95만8602건에 달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알코올 중독 상태에서는 판단력이 흐려지고 감정이 격해진다"며 "음주를 범죄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보긴 힘들지만, 범죄의 촉매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알코올 의존증의 심각성을 간과하는 사회 분위기가 진단과 치료의 필요성을 줄이고, 전문병원의 수요와 공급을 줄이는 악순환을 낳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알코올 전문병원인 아주편한병원의 정재훈 원장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이 알코올 의존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해 전문병원 방문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며 "이곳에 온 환자는 술에 취해 폭력을 행사하는 등 상태가 심각해 주변 사람들에 의해 강제 입원된 경우가 대다수"라고 전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대부분의 알코올 의존증 치료는 전문병원이 아닌 일반 정신과병원에서 이뤄진다. 전문가들은 이 때 치료 효과가 비교적 낮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전용준 다사랑중앙병원 원장은 "알코올 중독 환자는 술을 마시지 않으면 정신이 멀쩡하기 때문에 조현병 등 다른 정신질환 환자들과 함께 있으면 자존감이 낮아지고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이때문에 입원했다가도 금방 퇴원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 치료 효과가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의료계에선 알코올 전문병원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수가제도로 정신과병원들이 전문병원 신청을 꺼린다고도 지적한다. 알코올전문병원협의회 대표인 정 원장은 "일반 정신병원은 의료급여 환자가 10% 정도인데 알코올 전문병원은 50%에 달한다"며 "전문병원관리료 등 전문병원 수가 인센티브가 건강보험 환자한테만 적용돼 손실이 크다"고 말했다. 100명의 입원 환자가 있을 경우 인력이나 치료 시스템은 100명에 준해서 운영하지만, 정작 전문병원 수가는 50명 미만 기준으로 적용되는 게 현실이라는 설명이다. 알코올 의존증과 타 정신 질환의 수가가 동일한 점도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전문가들은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각종 사회적 폐해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전문병원을 대폭 늘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병철 한림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수가제도를 개선해 전문병원 신청을 유도할 강력한 유인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알코올 중독의 위험을 과소 평가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다빈 기자 davinci@hankyung.com
17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내 알코올 질환 전문병원은 경기도 4곳, 충북 2곳, 부산·광주 각각 1곳 등 전국에 총 8곳에 수준에 불과하다. 복지부는 알코올 환자 비율 66% 이상, 전문의 3명 이상, 80병상 이상 등의 필수조건을 충족하는 정신과 병원을 알코올 질환 전문병원으로 인증해주고 있다. 해당 병원엔 복지부가 의료질평가지원금과 전문병원관리료 등 전문병원에 해당하는 수가를 적용한다.
이 8곳의 전문병원이 보유한 병상 수는 총 1712개다. 그런데 복지부의 2021년 정신건강실태조 따르면 국내 알코올 사용장애의 1년 유병률은 2.6%로, 국내 환자 수가 134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전문병원 8곳이 알코올 의존증 환자만 받는다고 가정하더라도 전체 환자의 0.12%만 수용할 수 있는 셈이다. 지난해 알코올 의존증으로 치료받은 환자 수는 6만2818명에 불과한데, 이마저도 전문병원들이 수용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알코올 의존증 환자가 전문병원에서 치료받기 위해 수 주씩 기다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지적이다. 동생의 알코올 의존증 입원 치료를 계획 중인 박모 씨(52)는 "집이랑 가장 가까운 전문병원인 일산 카프성모병원에 문의했는데 초진을 받으려면 3주 정도 대기해야 한다는 답을 받았다"고 했다. 다른 전문병원들도 입원하기 위해선 2주~4주씩 기다려야 하는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알코올 의존증은 중증으로 악화하기 전 초기 치료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대기 과정에서 치료의 '골든 타임'을 놓칠 때가 많다. 국내 주취자 범죄가 늘어나는 이유도 알코올 의존증에 대한 조기 진단과 초기 치료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2022년에 검거된 살인범 중 37.5%, 방화범의 39%가 주취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 지난해 주취자로 인한 경찰 출동 건수도 전국적으로 95만8602건에 달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알코올 중독 상태에서는 판단력이 흐려지고 감정이 격해진다"며 "음주를 범죄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보긴 힘들지만, 범죄의 촉매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알코올 의존증의 심각성을 간과하는 사회 분위기가 진단과 치료의 필요성을 줄이고, 전문병원의 수요와 공급을 줄이는 악순환을 낳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알코올 전문병원인 아주편한병원의 정재훈 원장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이 알코올 의존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해 전문병원 방문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며 "이곳에 온 환자는 술에 취해 폭력을 행사하는 등 상태가 심각해 주변 사람들에 의해 강제 입원된 경우가 대다수"라고 전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대부분의 알코올 의존증 치료는 전문병원이 아닌 일반 정신과병원에서 이뤄진다. 전문가들은 이 때 치료 효과가 비교적 낮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전용준 다사랑중앙병원 원장은 "알코올 중독 환자는 술을 마시지 않으면 정신이 멀쩡하기 때문에 조현병 등 다른 정신질환 환자들과 함께 있으면 자존감이 낮아지고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이때문에 입원했다가도 금방 퇴원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 치료 효과가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의료계에선 알코올 전문병원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수가제도로 정신과병원들이 전문병원 신청을 꺼린다고도 지적한다. 알코올전문병원협의회 대표인 정 원장은 "일반 정신병원은 의료급여 환자가 10% 정도인데 알코올 전문병원은 50%에 달한다"며 "전문병원관리료 등 전문병원 수가 인센티브가 건강보험 환자한테만 적용돼 손실이 크다"고 말했다. 100명의 입원 환자가 있을 경우 인력이나 치료 시스템은 100명에 준해서 운영하지만, 정작 전문병원 수가는 50명 미만 기준으로 적용되는 게 현실이라는 설명이다. 알코올 의존증과 타 정신 질환의 수가가 동일한 점도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전문가들은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각종 사회적 폐해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전문병원을 대폭 늘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병철 한림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수가제도를 개선해 전문병원 신청을 유도할 강력한 유인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알코올 중독의 위험을 과소 평가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다빈 기자 davinc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