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무지에서 헤메이길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서평]
인간은 얼마나 무지했고 얼마나 무지를 극복해왔을까. 무지를 극복하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영국 케임브리지대 종신 석학교수 피터 버크는 <무지의 역사>에서 인류사를 지배해 온 무지의 여정을 살핀다. 무지는 죄없는 사람을 탓하게 했고, 수많은 목숨을 잃게하기도 했다. 무지를 효과적으로 이용한 사람들은 권력을 쟁취했고, 이들은 지금도 득세를 하고 있다.

무지로부터 비롯되는 공포는 전염병이 유행할 때 가장 심각하게 나타난다. 페스트부터 천연두, 콜레라, 스페인 독감 등 팬데믹이 발생할 때마다 사람들은 그 원인과 전염 방식, 예방, 치료 등에 대해 알지 못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에 떨던 사람들은 신앙으로 전염병에 대응했다. 신의 분노를 달래기 위해 행진을 벌이거나, 회개를 증명하기 위해 몸에 채찍질을 하기도 했다.

전쟁에서도 무지가 패배를 초래한 사례가 많다. 1812년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과 1941년 히틀러의 소련 침공 실패는 러시아의 지리와 날씨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됐다. 1839년 영국과 1979년 소련, 2001년 미국에 의한 세 번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역시 과거의 실수에서 교훈을 얻지 못해 같은 실수가 반복됐다.
인간이 무지에서 헤메이길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서평]
무지는 지배 계급이 대중을 통제하거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일부러 정보를 숨김으로써 발생하기도 한다. 과거 유럽에선 금서 목록을 지정해 정보를 검열했다. 근대에 들어선 신문이나 정치 풍자 만화, 연극 등을 탄압했다. 재난 발생 시에도 정부가 정보를 숨긴 경우가 많다. 소련 정부는 체르노빌 참사 당시 사고 발생 사실을 부인한 후 경미한 사고라고 주장했다. 발전소 건설 과정의 과실과 초기 비상사태에 대한 KGB의 비밀 보고서가 밝혀진 건 소련이 붕괴되고 난 이후다.

정보화 시대는 지식 못지 않게 무지도 확산시키고 있다. 버크 교수는 “정보가 넘쳐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정보의 홍수 속에 개인은 정작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를 선택하기 어려워졌다. 저자는 이런 상태를 ‘필터링 실패’라고 부르고, 우리의 무지를 스스로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근 수십년 동안 정보의 양이 급속하게 늘긴 했지만, 이는 엄연히 지식의 증가와는 다르다는 지적이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