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 골굴사 템플스테이에 참가한 외국인들이 선명상을 체험하고 있다. 선명상은 한국 불교 전통 수행법 ‘간화선’에 기반한 명상법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공
경북 경주 골굴사 템플스테이에 참가한 외국인들이 선명상을 체험하고 있다. 선명상은 한국 불교 전통 수행법 ‘간화선’에 기반한 명상법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공
“허리는 자연스럽게 곧게 펴고, 어깨 힘을 빼세요. 눈은 부드럽게 감거나 자연스럽게 떠도 좋습니다. 지금부터 생각과 감정을 모두 그치세요. ‘무(無)’ 하나에만 집중하세요. 무, 무, 무, 무, 무… 죽비를 치는 순간, 모두를 놓아버립니다. 시작합니다.”

탁, 탁, 탁…. 죽비 소리가 들리자 미국 코네티컷주 뉴헤이븐에 있는 명문대 예일대 루스홀이 정적에 휩싸였다. 지난 10일 열린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진우스님의 ‘선(禪)명상으로의 여정’ 특강을 듣기 위해 이곳에 모인 학생 150여 명은 안내에 따라 눈을 감고 5분간 명상에 빠져들었다. 강단 위에서 함께 눈을 감고 명상을 마친 진우스님은 정적을 깨운 뒤 “일상에서 스트레스를 받거나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잠시 멈추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흘려보내는 연습을 해보라”고 말했다.

“감정을 붙잡지 말고 흘려보내라”

"죽비 치는 순간 놓아버리세요"…예일대도 열광한 불교 명상법
선명상은 한국 불교 전통 수행법인 ‘간화선’에 기반한 명상법이다. 조계종은 선명상 보급을 위해 지난달 2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국제선명상대회를 개최한 데 이어 이달 8~15일 미국을 찾았다. 진우스님은 “선명상은 종교의 유무를 떠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정신건강을 위해 필요한 삶의 태도이자 마음의 습관”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예일대 강의에서 진우스님은 일상에서 간편하게 선명상을 실천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을 소개했다. 직접 시연한 ‘5분 선명상’을 비롯해 감정이 격해질 때 5초 동안 모든 것을 멈추고 마음을 가라앉히는 ‘5초 우선멈춤 선명상’, 고통과 괴로움을 흘려보내는 ‘지나가리라 쉘패스 선명상’, 모든 것은 나에게서 나온다는 자신감을 북돋아주는 ‘그림자 선명상’ 등이다. 진우스님은 “선명상은 언제, 어디에 있거나, 누구나 할 수 있는 수행”이라며 “지나친 감정을 내려놓고 잡념을 없애면 공부나 일을 할 때도 최고의 능률을 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선명상을 통해 마음의 평안을 찾은 본인의 경험담도 고백했다. 진우스님이 수십 년 전 손가락뼈가 으스러져 병원을 찾았을 때, 젊은 의사가 “스님이니 이 정도는 쉽게 참을 것”이라며 웃고 빨리 치료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진우스님은 “고통과 분노, 원망에 시달리던 그 순간, 선명상을 통해 나의 내면에 이런 부정적인 감정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타인이 무슨 행동을 하든 화를 낼 이유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며 “모든 원인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자 고통과 분노가 가라앉았고, 몸과 마음이 평안해졌다”고 말했다.

이날 강의를 들은 예일대 학생들은 선명상에 대한 질문을 쏟아냈다. 한 학생은 “살다 보면 슬픔이나 고통스러운 순간이 찾아오지 않을 수 없는데, 그럴 때 어떻게 감정을 다스리느냐”고 물었다. 이에 진우스님은 “순간의 기분 좋고 나쁨은 느낄 수 있고, 그럴 때마다 얼마든지 웃고 눈물을 흘려도 괜찮다”면서도 “그 감정에 오랫동안 매달리지 않고 흘려보내는 법을 연습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어 “즐거움과 고통이 동전의 양면처럼 항상 같이 찾아온다는 걸 깨닫고 나면, 양극단의 차이를 줄여 평안을 찾는 법을 터득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명상 통해 내면의 회복탄력성 발견”

진우스님은 12일 세계적인 명상 지도자 존 카밧진 미국 매사추세츠대 의대 명예교수와도 만났다. 카밧진 교수는 마음챙김(Mindfulness-based stress reduction·MBSR) 명상 프로그램을 개발해 미국 내 명상 확산을 주도했다. 그는 1974년 한국의 숭산스님을 만나 불교 수행법 참선을 배우기도 했다.

두 사람은 선명상과 MBSR 명상을 통해 신체적·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카밧진 교수는 “명상은 고통을 직접 없애주진 않지만, 평정심을 찾아 고통을 품을 수 있는 내면의 잠재력을 발견하게 한다”며 “환자들은 명상을 통해 현재 겪고 있는 고통의 바다에서 빠져나와, 고통을 감각의 차원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바라볼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이에 진우스님은 “평정심과 평온함은 선명상의 목표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명상은 세계적인 기업인과 사회 지도층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다. 미국의 유명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는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가장 먼저 명상한다고 밝혔다. 잭 도시 트위터 창업자도 마찬가지다. 일론 머스크, 빌 게이츠, 워런 버핏 등도 명상 마니아로 알려져 있다. 진우스님은 “오피니언 리더들은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만큼 그들의 정신 건강과 올바른 판단을 위해 특히나 명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이 발전할수록 명상을 통해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카밧진 교수는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성의 핵심은 따라올 수 없다”며 “명상을 통해 우리 안에 깃들어 있는 회복 탄력성과 지혜를 발견하는 것이 기후 위기 등 인류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첫걸음”이라고 주장했다.

명상은 과학과 거리 멀다?
진우스님 "양자역학과 불교 맞닿아 있어"

"죽비 치는 순간 놓아버리세요"…예일대도 열광한 불교 명상법
신체와 정신의 고통을 가만히 앉아서 눈을 감는 명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불교의 가르침은 얼핏 과학과 거리가 멀어 보이기도 한다. 이 같은 의문에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진우스님(사진)은 “선명상의 원리는 과학으로도 설명된다”고 반박한다.

진우스님은 대중에게 선명상을 합리적으로 이해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양자물리학을 전문가 수준으로 공부했다고 한다. 양자역학의 핵심 개념인 ‘상보성 원리’는 서로 배타적인 개념으로 여겨졌던 파동과 입자의 성질이 어떤 실험을 하느냐에 따라 한 물체에서 번갈아 가며 나타날 수 있고, 상호 보완적으로 작용한다는 이론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진우스님이 지난 10일 미국 예일대에서 선명상을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조계종 제공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진우스님이 지난 10일 미국 예일대에서 선명상을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조계종 제공
상보성 원리가 불교의 가르침과 맞닿아 있다는 게 진우스님의 주장이다. 그는 “좋고 싫음은 본래 하나지만 우리가 이를 의식적으로 구분함으로써 두 가지 감정으로 분리된다”며 “분리시키지 말고 시비고락(是非苦樂)이 없는 진공상태로 의식을 전환해야 옳고 그름이 반복되는 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마음을 무(無)의 진공으로 끌고 들어가는 방법이 바로 선명상이다. 진우스님은 “지나간 과거도, 다가오는 미래도 걱정하고 집착할 필요가 없다”며 “지금 앉아 있는 현재에 집중하되 ‘좋다’ 혹은 ‘싫다’ 등 생각과 감정을 얹지 말고, 마음을 평안하게 유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진우스님은 지난 9일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는 코넬클럽에서 물리학자 미나스 카파토스 미국 채프먼대 석좌교수와 ‘한국 선명상과 양자역학과의 대화’를 주제로 대담하기도 했다. 이날 카파토스 교수는 “양자물리학과 선명상은 정신의 역할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많다”고 말했다.

뉴욕=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