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한구 전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 9월 한미관계에 관한 콘퍼런스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여한구 전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 9월 한미관계에 관한 콘퍼런스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미국이 기존 규칙을 바꾸자고 제안하는 게 결코 나쁘지만은 않을 수 있습니다."

미국 워싱턴DC의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에서 선임연구위원을 맡고 있는 여한구 전 통상교섭본부장은 *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협상은 기브 앤드 테이크(give and take)이기 때문에 항상 '기회'로 만들 여지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트럼프 1기 정부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를 요구했지만 양측이 조속히 협상장에 앉아서 성과를 낸 덕분에 트럼프 1기가 끝날 때까지 의외로 통상에서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은 것을 예로 들었다. 여 전 본부장은 "한국은 지금 방위산업 등에서 규제로 인해 충분히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며 "핵 연료 처리에도 일본에 비해 제약이 많고 원자력발전 도 미국 웨스팅하우스와의 지적재산권 분쟁으로 수출에 제약이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부분에서 규제 완화를 반대급부로 요구하고 한국의 이익을 관철할 여지가 있다는 해석이다.

여 전 본부장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모두 "보호무역주의자"라면서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주도해 온 글로벌 통상질서의 판이 바뀌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당시 미국과 소련은 경쟁관계였긴 하지만 경제적으로는 미국이 압도했다"며 "전 세계 총생산의 절반을 미국이 담당했을 정도였다"고 했다. 미국이 세계 각국에 문턱을 낮추라는 요구를 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하지만 미국의 비중이 20~30% 수준으로 떨어진 지금은 미국 경제의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쪼그라들었다. 그 자리는 중국이 차지했다. 여 전 본부장은 "중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시키고 번영의 길로 이끌면 한국이 그랬듯 중산층이 커지고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나라가 될 줄 알았는데 정 반대의 길로 갔다"고 했다. 이어 "각국 정보담당자들 사이에서는 버락 오바마 정부 말기에도 중국 경제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사태에 대한 우려가 있었지만 경제논리에 무시당했다"고 되짚었다.

"미국 차기 정부가 누가 되든 당장 내년에 한미FTA부터 손대려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그의 예상이다. "특히 트럼프 전 대통령의 주요 관심사는 전 세계에 10~20% 보편관세 적용, 대 중국 관세 인상, 미국 멕시코 캐나다 협정(USMCA)을 손질하는 문제, 세금감면안 유지 등에 쏠려 있다"고 했다. 그는 "트럼프 1기 때는 유세 과정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한미FTA를 손봐야 한다고 했던 것과 비교하면 매우 미미한 수준의 관심"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한국을 '머니 머신(돈 찍어내는 기계)'로 인식하면서 비용분담을 요구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태도는 바로잡아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한국이 미국의 1위 투자국(신규 투자금액 기준)이라는 점 등을 적극 알리면서 한국에서 보는 무역적자는 투자에 수반되는 중간재 수입 등으로 인한 일시적인 것이 많다고 설명해야 한다"고 여 전 본부장은 덧붙였다.

여 전 본부장은 1993년 산업자원부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통상업무를 꾸준히 담당해 온 통상 전문가다.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펠로우로서 보스턴과 워싱턴DC를 오가며 지내고 있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