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인스타그램 캡처, 김영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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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눈을 감고 드셔주시기 바랍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이하 '흑백요리사') 2화 말미, '셀럽의 셰프'라는 별명을 가진 요리사가 안성재 심사위원에게 한 말이다.

2라운드 흑백대전에서의 백미는 블라인드 심사를 위한 '안대'였다. 다만 안성재 심사위원의 눈을 가장 먼저 감게 한 이는 1라운드 흑수저 결정전에 따로 있었다. 야채를 마치 일식 해산물 요리처럼 구현해 미각적 착각을 일으킨 '셀럽의 셰프', 임희원(39) 셰프다.

17일 오전 그의 모던 한식 레스토랑인 서울 용산구 한남동 소재의 '부토'에서 만난 임 셰프는 '베지테리언 사시미'와 '베지테리언 후토마키'를 선보인 배경으로 "최근에 집중했던 요리 중 제 철학을 가장 잘 담은 결과물이라고 생각해 선보였다"고 밝혔다. 한경닷컴이 그를 만나 셀럽의 셰프로 '흑백요리사'에 출연한 배경과 요리 철학을 들었다.

'라면가게 사장' 꿈꾸던 중학생

한남동 '부토'에서 만난 임희원 셰프. 흑백요리사에 셀럽의 세프로 출연했다. 매장 인테리어를 직접 할 정도로 가게에 대한 애정이 큰 요리사였다. /사진=김영리 기자
한남동 '부토'에서 만난 임희원 셰프. 흑백요리사에 셀럽의 세프로 출연했다. 매장 인테리어를 직접 할 정도로 가게에 대한 애정이 큰 요리사였다. /사진=김영리 기자
중학생 시절 사소한 경험이 그를 요리의 세계로 입문시켰다. 임 셰프는 "정확히 말하면 요리가 아니라 '상차림'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면, 라면을 끓여주고 집에 있던 반찬을 내어주는 게 그렇게 뿌듯했다"면서 "고등학생 때부터 요리사에 대한 막연한 꿈을 품게 되면서 졸업 후 곧바로 부천 소재의 한 대형 한식당의 서빙 아르바이트부터 했다"고 요리 입문 계기를 전했다.

임 셰프는 "젊은 시절 쉬어본 기억이 없다"며 요리에 대한 열정을 드러냈다. 한식당 알바로 시작해 3개월 차가 지나자 막내로 주방에 입성할 수 있었고, 오전 9시부터 오후 11시 30분까지 매일 식자재 정리부터 주방 마감까지 도맡았다는 설명이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그때 만성 허리 디스크를 얻었다. 퇴근할 땐 허리가 안 펴져서 굽은 채로 집에 들어갔고, 찜질을 해도 허리가 이완되지 않아 무릎 꿇고 엎드린 채 잠을 청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한시도 쉬지 않는 성격이다. 군대에서도 한·양식 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요식업을 계속해야겠다는 생각에 수능을 치러 대학에 진학, 푸드 스타일링도 공부했다. 그는 "이때 배워둔 전공 지식으로 '부토'의 인테리어 등 공간 기획도 손수 했다"고 덧붙였다.

어디서든 성실하게 일을 해낸 덕에 군 제대 이후에는 주변 선후배들이 계속 그를 불러냈다고. 임 셰프는 "덕분에 양식, 일식 등 다양한 식당에서 경험을 쌓았다. 2014년께 서래마을 소재의 이탈리안 파스타 가게서 근무했을 때는 운 좋게 방송 프로그램 '올리브쇼'에 섭외됐고, 이때부터 대중에 이름을 알렸다"고 설명했다.

"인생의 전환점 필요해 출연 결심"

한남동 '부토'에서 만난 임희원 셰프. 흑백요리사에 셀럽의 세프로 출연했다. 매장 인테리어를 직접 할 정도로 가게에 대한 애정이 큰 요리사였다. /사진=김영리 기자
한남동 '부토'에서 만난 임희원 셰프. 흑백요리사에 셀럽의 세프로 출연했다. 매장 인테리어를 직접 할 정도로 가게에 대한 애정이 큰 요리사였다. /사진=김영리 기자
인지도와 요리사로서의 성공을 모두 맛봤던 시절이었다. 그는 2015년 홍콩으로 건너가 모던 코리안 식당 '모모제인'의 헤드셰프로 근무했다. 500개 이상의 레시피를 연구하고, 월급의 80%를 모두 '음식'에 쓸 정도로 몰두했던 그는 끝내 모모제인을 '홍콩 2018 미슐랭 가이드'에서 '미슐랭 더플레이트'(지금은 없어진 등급)에 선정되게끔 했다.

전력을 다했던 홍콩 생활을 뒤로 하고, 2018년 12월 서울 한남동에 지금의 '부토'를 차렸다. 임 셰프는 "오롯이 스스로 문을 연 첫 식당이었다"면서 "나만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야채'에 관심 갖게 된 시점도 이때다. 임 셰프는 "정관스님께 직접 사찰음식을 배울 기회를 얻어 1년여간 주 3일은 스님이 계시는 백양사 천진암(전남 장성군 소재)에 내려갔다. 당시 처음 차를 샀는데, 1년간 6만km를 달렸다. 그때 '지속가능성'이라는 가치에 꽂혀 식재료를 탐구하고, 채소로 다양한 맛을 내보는 조리법을 익혔다. 요리의 '메인'으로는 주목받지 못하던 야채에 다양한 조리법을 적용하면, 다채롭고 새로운 맛이 탄생한다는 점에 매료됐다"고 밝혔다.
한남동 '부토'에서 만난 임희원 셰프. 흑백요리사에 셀럽의 세프로 출연했다. 매장 인테리어를 직접 할 정도로 가게에 대한 애정이 큰 요리사였다. /사진=김영리 기자
한남동 '부토'에서 만난 임희원 셰프. 흑백요리사에 셀럽의 세프로 출연했다. 매장 인테리어를 직접 할 정도로 가게에 대한 애정이 큰 요리사였다. /사진=김영리 기자
식당은 처음부터 순항했다. 2019년부터 엄정화, 이효리 등 유명 연예인이 식당을 찾아 한남동에서 입소문이 퍼졌다. 그런 그에게도 힘든 시기가 있었다. 임 셰프는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정신적, 금전적으로 힘들었다. 친한 사람들과 교류도 못 하고, 부토 외에 다른 브랜드를 론칭하려던 계획도 잘 안 풀렸다. 그 후유증이 2023년까지 남아있었는데, 그때 '흑백요리사' 섭외 연락을 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전 세계에 방영되는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끌렸다"며 "우승보다는 다시 요리 열정에 불씨를 지피고 싶어 출연했다"고 밝혔다.

다만 흑·백 대결 구도에 대해선 몰랐다고 전했다. 임 셰프는 "20인 백수저에도 알던 분이 있는데, 80인에서 20인을 추려 맞대결할 줄은 몰랐다. 지금은 '(백수저에 비해)요리를 한 번 더 선보일 수 있었던 셈이니 좋았다'고 생각하지만, 그 당시에는 스스로 백수저까진 아니어도 흑과 백 사이 중간쯤, '회색요리사'는 된다고 생각하기도 했다"며 웃었다.

'베지테리언 사시미'를 첫 요리로 선보인 이유에 대해선 "일단 채소 요리라는 전제는 뒀다. 내가 원하는 타이밍에 심사를 받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따뜻한 요리보다는 차가운 요리를 해야겠다고 판단했다. 또 심사위원 분들이 배가 부른 상태일 것이라 추측해, 한 점으로 임팩트를 줄 수 있는 요리를 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1라운드에서 그의 통찰력이 빛을 발했다. 안성재 심사위원은 그의 요리를 맛보곤 "우리 땅에서 자라는 채소를 최대한 맛있고 예의를 갖춰 다루고자 한 열의가 느껴졌다"며 극찬했다. 지켜보던 에드워드 리도 "먹어보고 싶다"고 말할 정도였다.

2라운드에서는 남정석 셰프와 대결해 아쉽게 떨어졌다. 방송에서는 편집된 2라운드 요리 '도화새우선과 토마토응이'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그는 "1라운드에서 일식을 해 한식으로 준비한 건데, 오판한 부분이 있었다. 앞선 요리들의 심사가 길어져 요리를 마치고도 40분 넘게 대기했다"면서 "내 요리의 소스가 전분 베이스라 식으면 질감이 바뀌었고, 태국식 향신료를 써 산미가 강화됐다. 백 심사위원님이 '시다'고 하시더라. 참가자라면 심사 여건도 고려했어야 했던 게 맞다"고 말했다.

"100년 뒤 '전통'으로 불리는 요리 만들고파"

한남동 '부토'에서 만난 임희원 셰프. 흑백요리사에 셀럽의 세프로 출연했다. 매장 인테리어를 직접 할 정도로 가게에 대한 애정이 큰 요리사였다. 그가 연구하고 있는 채소 요리들. /사진=김영리 기자
한남동 '부토'에서 만난 임희원 셰프. 흑백요리사에 셀럽의 세프로 출연했다. 매장 인테리어를 직접 할 정도로 가게에 대한 애정이 큰 요리사였다. 그가 연구하고 있는 채소 요리들. /사진=김영리 기자
'흑백요리사'가 인기를 끈 덕에 운영 중인 식당도 이미 한 달 예약이 꽉 차게 됐다. 방송계 연락, 출연 제의 등 많지만 식당 운영에 방해받지 않는 선에서 섭외에 응하고 있다고. 임 셰프는 "많은 관심에 깊은 감사를 드리지만, 코로나19의 버팀목이 되어 주신 단골손님들을 모시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어 "방송 이후 엄정화 누나, 이효리 누나가 안부 문자도 보내줬다. 감사한 마음이다"라며 단골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여전히 '지속가능성'에 대해 고민한다고 말했다. 특정 식재료의 유행에 휩쓸리지 않는, 변함없는 요리를 선보이는 것이 그의 목표다.

"방송 출연 전부터 '내가 도전했던 새로운 레시피 중 단 한 가지라도 100년 뒤 '전통'으로 불리는 요리가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해왔습니다. 지금 잠시 주목받았다고 해서 달라지고 싶지 않아요. 제가 추구하던 '서브'가 '메인'이 되는 맛있는 채소 요리, 꾸준히 선보이면서 성장하고 싶습니다."

김영리 한경닷컴 기자 smart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