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수장 야히야 신와르를 교전 끝에 사살했다. ‘칸 유니스의 도살자’로 불린 신와르는 하마스 강경파를 이끌며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민간인 학살 사건을 주동해 전쟁을 촉발한 핵심 인물이다. 하마스의 강경파 지도자가 줄줄이 사망하면서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휴전, 인질 반환 협상이 급물살을 탈 것이란 기대가 감돈다.

○‘복수혈전’ 성공한 이스라엘

이스라엘 군인들이 17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남부 도시인 텔술탄의 한 건물에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최고 정치지도자 야히야 신와르(오른쪽 아래 작은 사진)의 시신을 살펴보고 있다. 신와르는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을 주도해 전쟁을 촉발한 핵심 인물이다.  /이스라엘군 제공
이스라엘 군인들이 17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남부 도시인 텔술탄의 한 건물에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최고 정치지도자 야히야 신와르(오른쪽 아래 작은 사진)의 시신을 살펴보고 있다. 신와르는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을 주도해 전쟁을 촉발한 핵심 인물이다. /이스라엘군 제공
17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은 성명을 통해 “군과 신베트(정보기관)가 1년간 추적한 끝에 하마스 테러조직 지도자 신와르를 제거했다”고 발표했다. 이스라엘군에 따르면 지난 16일 가자지구 남부에 진출한 828보병여단 예하 훈련부대 병력이 텔 술탄에서 일상적인 수색 작전 중 하마스 전투원 3명을 발견해 교전을 벌였다. 건물로 피신한 하마스 전투원은 드론의 추격을 받자 막대기를 휘두르며 저항했으나 이스라엘 전차포에 맞은 건물이 무너지며 사망했다. 군당국이 시신을 수습해 치과 기록, 지문 및 DNA를 검사한 결과 사망자가 신와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시신에선 AK-47 소총, 라이터, 유엔팔레스타인난민기구(UNRWA) 직원의 신분증과 여권, 이스라엘 돈 4만셰켈(약 1470만원)어치가 발견됐다.

지난해 10월 이스라엘인 1200여 명을 죽이고 251명을 납치한 테러를 총지휘한 신와르를 잡기 위해 이스라엘은 가용 자원을 총동원해 추적을 벌였다. 이스라엘 지상군의 가자지구 전면 침공 이후에도 신와르는 지하 터널 등 은신처에 숨어 지금까지 항전했고 전쟁이 1년 넘게 지속되며 4만2000여 명이 사망했다. 사망자 중엔 전투에 휘말린 팔레스타인 민간인도 적지 않다. 이스라엘 당국은 하마스 조직원 3만 명 중 1만5000명 이상을 사살했다고 추산한다. 올해 7월 하마스 알카삼 여단 무함마드 데이프 사령관이 공습으로 사살된 데 이어 이스마일 하니예 정치지도자도 이란에서 공격을 받고 사망했다.

○살아나는 종전 기대감

이스라엘, 습격 주도한 하마스 수장도 제거…휴전 기대감 커져
하니예에 이어 수장이 된 신와르는 무장 투쟁을 추구하는 하마스에서도 초강경파로 유명하다. 그는 1980년대 초반 하마스에 가담해 보안부에서 조직 내 이스라엘 협력자를 무자비하게 처형하며 이름을 날렸다. 살인죄 등으로 1988년 이스라엘에 체포됐고, 헤즈볼라가 납치한 이스라엘 병사 인질과 교환돼 2011년 풀려날 때까지 23년간 수감 생활을 했다. 석방 후 이란혁명수비대(IRGC) 가셈 솔레이마니 쿠드스군 사령관과 협력해 가자지구에 대규모 땅굴과 무장 초소, 로켓 발사대를 구축하고 각종 테러 작전을 지휘했다.

신와르가 사망하면서 휴전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미국 정부는 휴전 협상을 재개하려는 강력한 의지를 드러냈다. 18일 독일 베를린을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어제 하마스 지도자의 죽음은 정의의 순간이었다”며 “하마스 없는 가자지구의 더 나은 미래를 모색할 기회를 갖게 됐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4~5일 안에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을 이스라엘로 파견해 가자지구의 전후 처리 방향 등을 논의할 방침이다.

○이란과 헤즈볼라 분쟁 ‘진행 중’

하마스가 잡고 있는 인질을 돌려받는 일은 마지막 과제로 남았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비로소 가자 주민이 하마스의 폭정에서 벗어날 기회가 왔다”면서도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자국민 인질을 거론하며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이 돌아올 때까지 전력을 다해 (전쟁을) 계속하겠다”고 다짐했다. 납치된 251명 가운데 지금까지 105명이 석방됐고 34명이 사망한 게 확인됐다. 실종자를 제외한 101명이 아직 억류 중인 것으로 이스라엘군은 파악하고 있다.

헤즈볼라와 이란 간 갈등은 안갯속이다. 이스라엘은 이날도 레바논 남부에서 지상군을 전진시켰고 지하 갱도와 무기 저장고, 군사 초소 등 150여 곳을 폭격했다. 이스라엘군은 “이날 공습으로 헤즈볼라의 무함마드 하신 라말 타위베 지역 사령관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아미르 사에이드 이라바니 주유엔 이란대사는 이날 신와르를 ‘순교자’라고 언급하며 “저항 정신이 거세질 것”이라고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다만 이란을 중심으로 하는 반미국·반이스라엘 성향 ‘저항의 축’ 지도부가 지난 몇 달 사이 거의 궤멸당한 탓에 이들의 전략도 크게 흔들리고 있다. 지난 8일 헤즈볼라 2인자인 나임 카셈은 선결 조건 없는 휴전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스라엘 내부에서도 인질들이 돌아오면 휴전 요구가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