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비저블 마더(2015). © Urs Fischer. Courtesy of the artist  Photographer: Stefan Altenburger
인비저블 마더(2015). © Urs Fischer. Courtesy of the artist Photographer: Stefan Altenburger
스위스에서 태어나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주로 활동하는 우르스 피셔(51)는 지금 세계 미술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작가 중 한 명이다. 그의 작품은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을 만큼 강렬한 인상을 지니고 있다는 평가다. 그가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 전시하고 베네치아 비엔날레에도 단골로 참여하는 비결이다. 경매 낙찰가는 수십억원에 달한다. 그런데 막상 “피셔는 어떤 작품을 하느냐”고 물으면 대답할 말이 마땅치 않다. 김환기의 점화, 쿠사마 야요이의 물방울 무늬처럼 피셔를 정의하는 ‘대표적인 작풍’이 무엇인지 설명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서울 성북동 제이슨함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피셔의 개인전 ‘Feelings’는 그 답을 찾아볼 수 있는 자리다.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10여 년간 피셔가 만든 주요 조각, 사진, 회화, 설치작품을 전시했다. 피셔가 국내 언론 가운데 처음으로 한경과 만났다. 그는 이번 전시에 대해 “‘나’라는 작가를 처음으로 소개한다고 생각하고 작품 세계 전반을 폭넓게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고 소개했다.

키워드는 ‘낯설게 보기’

전시장 외관부터 관객의 시선을 잡아끈다. 마치 낡은 건물에 흰색 페인트를 엎은 듯하다. 함윤철 제이슨함 대표는 건물을 허물고 갤러리를 새로 지으려 했지만 계획을 바꿨다. 피셔가 “독특해서 오히려 좋다”며 흰 페인트를 칠해 건물을 미술관으로 탈바꿈시켰다.
제이슨함이 새로 마련한 전시장 건물(왼쪽). 제이슨함 제공
제이슨함이 새로 마련한 전시장 건물(왼쪽). 제이슨함 제공
1층 전시의 주요 주제는 ‘사랑’. 입구에 설치된 펭귄 네온은 작가의 딸이 쥐고 다니는 펭귄 인형이다. 거창해 보이는 예술도 일상적으로 우리가 느끼는 사랑에서 출발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시장 문을 열면 피셔의 대표 연작 ‘프로블럼 페인팅스’가 눈에 들어온다. 할리우드 영화 속 커플의 초상화 위에 베이컨을 올려놓은 듯한 그림이다. 흔한 음식이면서도 시간이 흐르면 상해버리는 베이컨을 통해 피셔는 ‘사랑도 영원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입구에서 바라본 전시 전경. 프라블럼 페인팅 연작이 걸려 있다. 제이슨함 제공
입구에서 바라본 전시 전경. 프라블럼 페인팅 연작이 걸려 있다. 제이슨함 제공
프로블럼 페인팅 연작 중 ‘이터니티’(2023).   작가 제공
프로블럼 페인팅 연작 중 ‘이터니티’(2023). 작가 제공
‘유에프’와 ‘인비저블 마더’는 부모님의 사랑을 주제로 한 작품이다. 유에프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직접 만든 의자에 피셔가 조각칼로 손 모양을 새겨 붙인 작품으로, 아버지의 사랑이 자식에게 전달되고 있다는 사실을 상징한다.

반면 인비저블 마더는 성모 마리아가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를 안고 있는 전통적인 ‘피에타 작품’이다. 다만 작품에는 성모 마리아가 빠져 있고, 예수는 해골과 같은 모습으로 묘사된다. 이를 통해 어머니의 사랑이 그만큼 자식에게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점을 표현했다.
"삶은 놀랍고 좋은 것…그래서 축제이자 선물"
2층 전시장 전경. 제이슨함 제공
2층 전시장 전경. 제이슨함 제공
전시장 2층의 ‘폰드’는 거울 위에 얕은 물을 부은 뒤 주변에 식물 화분들을 배치해 ‘미술관 속 연못’을 연출한 작품이다. ‘언타이틀드’는 플라스틱 생수병처럼 보이는 유리 생수병을 의자 다리 아래 놓아 둔 설치 작품. 이처럼 피셔는 평범한 물건들을 서로 어울리지 않게 배치하고 재구성해 일상을 낯설게 볼 수 있도록 한다.

“예술은 시대와 의미를 초월”

그에게 작품 세계를 한마디로 정의해달라고 부탁했더니 “어렵다”고 했다. 대신 그는 자신의 예술관을 설명했다. 그는 “100년 전 만들어진 미술 작품을 본다고 생각하면 당시 작가의 생각과 의도, 상황 등을 어렴풋하게는 상상할 수 있지만 완전히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며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작품을 보고 감동받는다”고 했다.
우르스 피셔. 작가제공
우르스 피셔. 작가제공
“예술 작품이란 건 시대와 의미를 초월해 존재합니다. 다른 설명을 덧붙이는 건 무의미합니다. 제 작품은 ‘피셔가 만든 작품’입니다. 작품에는 제 존재 자체가 담깁니다. 제가 보고, 경험하고, 이해하는 것들이요.”

그렇다면 그가 바라보고 작품에 담으려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축제이자 선물”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삶은 좋은 것이고 놀라운 것입니다. 이번 전시의 이름인 ‘Feelings’처럼 관객이 작품을 보고 강렬한 감정을 느끼길 바랍니다. 유쾌함, 수치심, 죄책감 등 무슨 감정이든 좋습니다. 그게 바로 삶이니까요.” 전시는 12월 7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