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릴레마와 피벗…Fed '실수론', 한은 '실기론' 나온 까닭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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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빅컷' 한 달 만에
경제지표 너무 강력
물가는 목표치 웃돌아
파월 '피벗'에 비판론
한은 피벗 선제성 잃어
금리 소폭인하도 논란
가계부채·집값 문제보다
1순위 물가안정 집중을
경제지표 너무 강력
물가는 목표치 웃돌아
파월 '피벗'에 비판론
한은 피벗 선제성 잃어
금리 소폭인하도 논란
가계부채·집값 문제보다
1순위 물가안정 집중을
올해 국제 금융시장에선 주요국 중앙은행의 피벗(통화정책 전환) 움직임이 최대 이슈다. 하지만 피벗을 추진하자마자 ‘실수론’과 ‘실기론’이 동시에 거론되며 중앙은행 무용론까지 일고 있다. 전자는 피벗을 추진하지 말아야 할 것을 했다는 의미로, 후자는 추진 방향은 맞았지만 ‘선제성’을 잃었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미국 중앙은행(Fed)은 빅컷을 단행한 지 한 달도 채 못 돼 ‘파월의 실수(Powell’s failure)’에 시달리고 있다. 빅컷 추진 이후 발표된 경제지표가 워낙 좋기 때문이다. 이달 말 나올 3분기 성장률도 3.4%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오쿤의 법칙상 국내총생산(GDP) 갭을 구해 보면 1.5%포인트 이상 인플레이션 갭이 발생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각종 물가지표는 여전히 목표치를 웃돌고 있다. 오히려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4%로 8월의 2.3%보다 높게 나왔다. ‘노랜딩’이란 용어가 나올 만큼 펀더멘털이 강한 여건에서 빅컷을 단행하면 1980년대 초 당시 Fed 의장이 저지른 ‘볼커의 실수(Volker’s failure)’를 저지르지 않겠느냐는 비판이 통화론자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2022년 3월 금리 인상 때도 Fed는 거센 실기론에 시달렸다. 2021년 4월 이후 모든 물가지표가 급등하자 ‘일시적’이라고 판단하고 오히려 평균물가목표제를 도입해 방관했다. 그 후 말이 뛰는 식으로 물가가 오르는 켈로핑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자 빅스텝(0.50%포인트), 자이언트 스텝(0.75%포인트)으로 금리를 올리는 과정에서 경제 주체에게 충격과 부담을 줬다.
지난 6월 이후 세 차례 금리를 내린 유럽중앙은행(ECB)에도 실기론이 핵심 유로국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8%로 목표치 2%를 밑돌았다. 하지만 유로존의 맹주 격인 독일 경제는 지난해 -0.3% 성장한 데 이어 올해도 -0.2%로 예상돼 역성장 공포가 확산하고 있다. 또 하나의 유로 핵심국인 프랑스 경제도 녹록지 않다.
ECB의 실기론을 제기하는 핵심 유로국의 논리는 이렇다. 준스태그플레이션에 해당하는 지금의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6월부터 추진한 피벗 시기를 더 앞당겼어야 했다고 주장한다. 실기했다면 10월 ECB 회의에서라도 베이비컷보다 빅컷을 단행했어야 한다는 시각이다. 유로 경제의 앞날에 대한 시각도 낙관적이라고 비판한다.
핵심 유로국의 불만은 유로존의 앞날과 유로화 가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변수다. 8년 전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에 이어 ‘넥시트’(Nexit=Netherlands+Exit)가 우려될 정도로 유로존 내에서 균열 조짐이 일고 있다. 달러인덱스 구성 통화 중 유로화 비중이 58%인 점을 고려할 때 유로존 균열로 유로화 가치가 약세를 보이면 강달러 시대가 전개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10월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피벗을 단행한 것에 대해 한국은행도 ECB와 같은 성격의 실기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6%로 유로존보다 더 낮았다. 경기도 지난 2분기 성장률이 -0.2%로 역성장한 데 이어 3분기엔 제로 수준에 그친 것으로 추정된다. 준스태그플레이션 정도가 유로존보다 더 심하다.
하지만 6월 이후 세 차례에 걸쳐 0.75%포인트 인하한 ECB에 비해 피벗 시기가 늦었고 그 폭도 0.25%포인트에 그쳤다. 피벗 성격도 가계부채, 강남 집값 불안 등을 우려한 매파적 성향이 강해 추가 금리 인하 여부가 불투명하다. 매파성 금리 인하로 혼선을 빚은 시장에서는 “그럴 거라면 금리를 인하하지 말지 왜 했느냐”는 볼멘소리까지 터져나오고 있다.
Fed 실수론, ECB와 한은의 실기론은 통화정책 전환기에 중앙은행의 실력을 가늠할 트릴레마 국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증거다. 조세와 복지, 그리고 국가채무 간 상충관계인 재정 트릴레마에 빗댄 통화 트릴레마란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금리를 내리면 물가가 오르고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면 경기가 침체하는 현상을 말한다.
각국 중앙은행이 트릴레마를 헤쳐 나가는 과정은 ‘해로드-도마의 칼날 성장 이론’에 비유된다. 작두를 타는 무속인이 칼날 위에서 떨어지면 큰 상처가 나듯이 물가를 다 잡기 전에 금리를 성급하게 내리면 ‘볼커의 실수’, 경기가 다 회복되기 전에 금리를 성급하게 올리면 ‘에클스의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트릴레마 국면처럼 통화정책 목표가 상충할 때는 ‘틴버겐 정리’(Tinbergen’s theorem·정책 목표 수대로 정책 수단을 가져가는 것)대로 중앙은행은 1선 목표인 물가 안정에 우선순위를 두고 다른 목표는 해당 부처에 맡기면 된다. 한은처럼 경기, 물가, 고용, 가계부채, 강남 집값, 심지어는 교육 문제까지 고려하다 보면 어느 하나도 못 잡는 상황에 닥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미국 중앙은행(Fed)은 빅컷을 단행한 지 한 달도 채 못 돼 ‘파월의 실수(Powell’s failure)’에 시달리고 있다. 빅컷 추진 이후 발표된 경제지표가 워낙 좋기 때문이다. 이달 말 나올 3분기 성장률도 3.4%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오쿤의 법칙상 국내총생산(GDP) 갭을 구해 보면 1.5%포인트 이상 인플레이션 갭이 발생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각종 물가지표는 여전히 목표치를 웃돌고 있다. 오히려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4%로 8월의 2.3%보다 높게 나왔다. ‘노랜딩’이란 용어가 나올 만큼 펀더멘털이 강한 여건에서 빅컷을 단행하면 1980년대 초 당시 Fed 의장이 저지른 ‘볼커의 실수(Volker’s failure)’를 저지르지 않겠느냐는 비판이 통화론자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2022년 3월 금리 인상 때도 Fed는 거센 실기론에 시달렸다. 2021년 4월 이후 모든 물가지표가 급등하자 ‘일시적’이라고 판단하고 오히려 평균물가목표제를 도입해 방관했다. 그 후 말이 뛰는 식으로 물가가 오르는 켈로핑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자 빅스텝(0.50%포인트), 자이언트 스텝(0.75%포인트)으로 금리를 올리는 과정에서 경제 주체에게 충격과 부담을 줬다.
지난 6월 이후 세 차례 금리를 내린 유럽중앙은행(ECB)에도 실기론이 핵심 유로국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8%로 목표치 2%를 밑돌았다. 하지만 유로존의 맹주 격인 독일 경제는 지난해 -0.3% 성장한 데 이어 올해도 -0.2%로 예상돼 역성장 공포가 확산하고 있다. 또 하나의 유로 핵심국인 프랑스 경제도 녹록지 않다.
ECB의 실기론을 제기하는 핵심 유로국의 논리는 이렇다. 준스태그플레이션에 해당하는 지금의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6월부터 추진한 피벗 시기를 더 앞당겼어야 했다고 주장한다. 실기했다면 10월 ECB 회의에서라도 베이비컷보다 빅컷을 단행했어야 한다는 시각이다. 유로 경제의 앞날에 대한 시각도 낙관적이라고 비판한다.
핵심 유로국의 불만은 유로존의 앞날과 유로화 가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변수다. 8년 전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에 이어 ‘넥시트’(Nexit=Netherlands+Exit)가 우려될 정도로 유로존 내에서 균열 조짐이 일고 있다. 달러인덱스 구성 통화 중 유로화 비중이 58%인 점을 고려할 때 유로존 균열로 유로화 가치가 약세를 보이면 강달러 시대가 전개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10월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피벗을 단행한 것에 대해 한국은행도 ECB와 같은 성격의 실기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6%로 유로존보다 더 낮았다. 경기도 지난 2분기 성장률이 -0.2%로 역성장한 데 이어 3분기엔 제로 수준에 그친 것으로 추정된다. 준스태그플레이션 정도가 유로존보다 더 심하다.
하지만 6월 이후 세 차례에 걸쳐 0.75%포인트 인하한 ECB에 비해 피벗 시기가 늦었고 그 폭도 0.25%포인트에 그쳤다. 피벗 성격도 가계부채, 강남 집값 불안 등을 우려한 매파적 성향이 강해 추가 금리 인하 여부가 불투명하다. 매파성 금리 인하로 혼선을 빚은 시장에서는 “그럴 거라면 금리를 인하하지 말지 왜 했느냐”는 볼멘소리까지 터져나오고 있다.
Fed 실수론, ECB와 한은의 실기론은 통화정책 전환기에 중앙은행의 실력을 가늠할 트릴레마 국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증거다. 조세와 복지, 그리고 국가채무 간 상충관계인 재정 트릴레마에 빗댄 통화 트릴레마란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금리를 내리면 물가가 오르고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면 경기가 침체하는 현상을 말한다.
각국 중앙은행이 트릴레마를 헤쳐 나가는 과정은 ‘해로드-도마의 칼날 성장 이론’에 비유된다. 작두를 타는 무속인이 칼날 위에서 떨어지면 큰 상처가 나듯이 물가를 다 잡기 전에 금리를 성급하게 내리면 ‘볼커의 실수’, 경기가 다 회복되기 전에 금리를 성급하게 올리면 ‘에클스의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트릴레마 국면처럼 통화정책 목표가 상충할 때는 ‘틴버겐 정리’(Tinbergen’s theorem·정책 목표 수대로 정책 수단을 가져가는 것)대로 중앙은행은 1선 목표인 물가 안정에 우선순위를 두고 다른 목표는 해당 부처에 맡기면 된다. 한은처럼 경기, 물가, 고용, 가계부채, 강남 집값, 심지어는 교육 문제까지 고려하다 보면 어느 하나도 못 잡는 상황에 닥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