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용진의 의료와 사회] 의과대학 오지마라
2025학년도 의과대학 정원이 올해보다 1497명 늘어난 4695명으로 확정됐다. 이는 정부가 농어촌 지역과 필수진료과의 의사 부족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다. 하지만 이를 둘러싼 의정 갈등은 계속되고 있다. 왜 의료 분야에서 사회적 갈등이 반복되는 것일까?

그 답은 일제강점기와 그 이후 한국의 급격한 성장 과정에서 비롯된 구조적 문제에 있다. 근대화 과정에서 전통 의학과 현대의학이 분리되고, 약국의료보험을 통해 약사가 의료 행위를 허용받았던 역사적 흔적이 오늘날 왜곡된 의료 시스템을 조성하는 데 일조했다. 여기에 민주화 이후 등장한 ‘공공의료’ 개념은 국가 의료기관은 공공성을 지키고 민간 의료기관은 이윤만 추구한다는 잘못된 이분법을 끌어냈다.

가난했던 시절 시작된 의료보험 저수가 정책은 의사들이 수익성이 없는 분야를 외면하도록 했다. 그 결과 의사로서 갖춰야 할 직업윤리까지 뒷전으로 미루게 했다. 의사들이 비필수의료로 수익을 창출해야만 전문성을 유지할 수 있는 현실에서 필수의료를 외치는 것은 직업윤리를 지키고자 하는 저항이자 한국 의료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의 상징이다.

또한 의료정책의 혼란은 그간의 정치 수준을 반영한다. 갈등의 뿌리에는 정치적 요인이 있다. 정치인들은 약사회의 강력한 조직력과 제약업계의 경제적 영향력에 휘둘렸다. 제약업계는 수십 년간 국민의 세금을 지원받았음에도 세계적인 제약사 하나 찾기 어렵다. 동일 성분의 복제 의약품이 수십 개에 달하지만 국민들은 그 가격 비교조차 허락받지 못하고 있다. 약사의 상담 없이는 일반의약품을 구입하기 힘들고, 약 배송은 대통령 지시에도 불구하고 실현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의료개혁특위 위원장이 현직 제약협회장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인공지능(AI)과 로봇이 주도하는 미래 사회에서 의사의 전문성 역시 유지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기술 발전이 가속화하면서 진료의 많은 부분이 자동화되고, 의사의 역할이 축소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과대학에 진학하려는 사람은 진로를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정치적·경제적 전망은 결코 의사들에게 긍정적이지 않다. 의사는 이제 사회적 존경과 높은 수익을 보장받기 힘든 직업으로 변해가고 있다.

사회적 책무를 고민하는 엘리트라면 ‘4차 산업혁명’에 맞춰 인공지능, 로봇공학, 데이터 과학 등의 분야를 선택하기를 권한다. 의사가 되기보다는 기후변화 해결을 위한 과학 연구나 급변하는 시대에 인간의 본질과 윤리를 탐구하는 철학, 사회학 같은 인문학을 전공하는 것을 추천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과대학에 진학하고 싶다면, 의사과학자의 길을 걷는 것이 바람직하다. 구체적인 연구 목표를 세우고 그에 맞는 대학과 교수진을 찾아라. 꼭 국내일 필요는 없다.

현 정부의 의료개혁이 진정한 정치적 발전과 함께 의료 역사의 질곡을 치유할 수 있을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반복되는 의료 갈등으로 인한 피해가 결국 국민에게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만약 당신이 진료만 잘하는 의사가 되고자 한다면, 의사의 수입은 건강보험 재정의 한계에 따라 제한된다는 현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제는 더 큰 사명감과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의사라는 직업을 바라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