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배출권, 이상고온에 주춤…악재 딛고 반등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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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중립 정책에 힘입어 고공 행진을 이어가던 탄소배출권 가격이 최근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유럽의 이상고온 현상이 지속되면서 재고가 증가한 데다 탄소배출권 대신 원전을 택하는 큰손이 늘어나면서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배출권거래제 대상 산업 확대, 배출권 선판매에 따른 타이트한 공급 등의 영향으로 가격 우상향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한경ESG] - 투자 트렌드
핑크빛 전망과 함께 투자자에게 주목받아온 ‘녹색 원자재’ 탄소배출권이 부진의 늪에 빠졌다. 전 세계적 ‘탄소중립’ 기조에 올라타며 승승장구할 것이란 당초 기대감과 달리 지지부진한 가격 흐름을 보이고 있어서다. 원인은 겹악재다. 역상관관계인 천연가스 가격이 반등하지 못한 데다 탄소배출권을 구입하는 ‘큰손’들이 원전을 택한 탓이다. 여전히 중장기적으로 ‘유망’하다는 일부 전문가의 관측에도 투자자들은 흔들리고 있다.
탄소중립 기조에 배출권 高高
투자업계에 따르면 신한자산운용의 SOL 유럽탄소배출권선물 S&P(H) 상장지수펀드(ETF)는 올해 들어 19.46%, 최근 1년간 25.21%(지난 10월 20일 기준)나 추락했다. 해당 ETF는 세계 최대 탄소배출권 시장인 유럽 탄소배출권 선물에 집중 투자하는 상품이다.
유럽 탄소배출권은 전 세계 시장의 약 90%를 차지한다. 유럽 시장이 발달한 것은 가장 앞서 탄소중립을 추진해서다. 탄소중립 기조는 악화되고 있는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해 시작됐다. 인간에 의해 발생하는 온실가스배출량을 최대한 줄이고, 남은 온실가스는 흡수·제거해 실질적 배출량을 ‘제로(0)’로 만들자는 취지다.
탄소배출권은 정부가 할당한 온실가스배출 허용량에 맞춰 기업이 그 권리를 거래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배출 허용량보다 탄소를 더 많이 배출한 기업은 부족한 배출권을 구입해야 하고, 배출량이 적은 기업은 남는 배출권을 팔 수 있다.
탄소배출권이 주목받은 것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중요도가 커지면서다. 해를 거듭할수록 배출 허용량이 줄어드는 만큼 배출권 가격이 우상향할 것이란 기대감이 투자자들을 끌어들였다. 실제 SOL 유럽탄소배출권선물 S&P ETF의 경우 지난 2021년 말 상장한 이후 한 달여 만에 40% 넘게 폭등하는 기염을 토했다.
유럽에서 쏟아지는 탄소중립 정책에 더해 유럽 내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한 것이 탄소배출권 가격 상승에 기름을 부었다. ‘KODEX 유럽탄소배출권선물 ICE(H)’, ‘SOL 글로벌탄소배출권 IHS(합성)’, ‘HANARO 글로벌탄소배출권선물 ICE(합성)’(17.83%) 등 국내에서 관련 상품이 쏟아진 것도 이 때문이다.
시장에선 천연가스 가격이 오르면 가격에 부담을 느낀 수요자들이 탄소 발생을 유발하는 석탄 발전으로 선회, 탄소배출권의 가치가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럽의 경우 석탄을 에너지원으로 발전하는 전기량이 14%에 달한다.
기대감 왜 꺾였나
부푼 기대감은 오래가지 못했다. 시장조사업체 트레이딩 이코노믹스에 따르면, 유럽 탄소배출권 가격은 지난해 2월 톤당 100유로를 돌파한 이후 지난 2월 52유로까지 떨어졌다. 이후 반등에 성공하며 80유로까지 상승했지만 재차 60유로 선까지 내려온 상태다.
우선 지지부진한 천연가스 가격이 탄소배출권의 발목을 잡고 있다. 러·우전쟁 이후 급등한 천연가스는 유럽의 이상고온 현상이 지속되면서 재고가 증가해 가격이 하락한 상태다. 석탄 대신 저렴한 천연가스 소비가 이어질 경우 탄소배출이 억제돼 배출권 가치가 상승하지 못하는 구조여서다.
늘어난 배출권 공급도 가격 상승에는 악재다. 한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는 “유럽연합(EU)이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는 리파워EU 정책을 발표하면서 탄소배출권 공급량이 증가한 것 또한 배출권 가격 부진의 원인 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원전에 빠진 빅테크
탄소배출권의 주요 수요자였던 빅테크가 원자력 등 탄소를 적게 배출하는 에너지 발전원에 잇따라 투자를 단행하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 구글은 지난 7월 환경보고서에서 탄소배출권 구매를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대신 원전 관련 기업에 투자해 전기를 공급받기로 했다. 최근 구글은 미국 스타트업 카이로스 파워가 향후 가동하는 소형모듈원전(SMR)의 에너지를 구매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카이로스가 가동하는 6∼7개 원자로에서 총 500MW의 전력을 구매할 계획이다.
전 세계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클라우드 서비스인 아마존 웹 서비스(AWS)의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구동에 필요한 막대한 전력을 확보하기 위해 지난 10월 미국 버지니아주 에너지 기업인 도미니언 에너지와 소형 원자로 개발을 위한 계약을 체결했다. 도미니언은 버지니아에 있는 아마존의 452개 데이터센터에 약 3500MW의 전기를 공급하고 있는데, 이는 약 250만 가구가 사용 가능한 전력량이다. 이번 계약을 통해 추가로 SMR을 지을 경우 300MW 이상의 전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마존은 또 워싱턴주에 있는 공공 전력 공급 기업인 에너지 노스웨스트와 계약을 체결하고, 노스웨스트의 4개 SMR 건설 사업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들 원자로는 초기에 약 320MW의 전력을 생산하고, 이후에 총용량을 960MW로 늘릴 계획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도 미국 원자력발전 1위 기업인 콘스텔레이션 에너지와 20년간 데이터센터에 전력을 공급하는 계약을 맺었다. 이를 위해 콘스텔레이션은 1979년 3월 미국 역사상 최악의 원전 사고가 발생한 스리마일섬 원전 1호기의 상업용 운전을 2028년 재개하기로 한 상태다. 챗GPT 개발사 오픈AI도 원전 에너지 확보에 나섰다. 샘 올트먼 챗GPT CEO가 이사회 의장으로 있는 오클로(Oklo)는 2027년 가동을 목표로 첫 SMR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같은 겹악재에도 중장기적으로 탄소배출권 가격이 우상향 곡선을 그릴 것이란 긍정적 전망이 나온다. 최관순 SK증권 연구원은 “중장기적으로는 배출권거래제 대상 산업 확대, 배출권 선판매에 따른 타이트한 공급 등의 영향으로 우상향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한다”며 “유럽에 이어 영국과 미국도 탄소국경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돼 글로벌 배출권 가격은 장기적으로 동조화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박재원 한국경제 기자 wonderful@hankyung.com
탄소중립 기조에 배출권 高高
투자업계에 따르면 신한자산운용의 SOL 유럽탄소배출권선물 S&P(H) 상장지수펀드(ETF)는 올해 들어 19.46%, 최근 1년간 25.21%(지난 10월 20일 기준)나 추락했다. 해당 ETF는 세계 최대 탄소배출권 시장인 유럽 탄소배출권 선물에 집중 투자하는 상품이다.
유럽 탄소배출권은 전 세계 시장의 약 90%를 차지한다. 유럽 시장이 발달한 것은 가장 앞서 탄소중립을 추진해서다. 탄소중립 기조는 악화되고 있는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해 시작됐다. 인간에 의해 발생하는 온실가스배출량을 최대한 줄이고, 남은 온실가스는 흡수·제거해 실질적 배출량을 ‘제로(0)’로 만들자는 취지다.
탄소배출권은 정부가 할당한 온실가스배출 허용량에 맞춰 기업이 그 권리를 거래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배출 허용량보다 탄소를 더 많이 배출한 기업은 부족한 배출권을 구입해야 하고, 배출량이 적은 기업은 남는 배출권을 팔 수 있다.
탄소배출권이 주목받은 것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중요도가 커지면서다. 해를 거듭할수록 배출 허용량이 줄어드는 만큼 배출권 가격이 우상향할 것이란 기대감이 투자자들을 끌어들였다. 실제 SOL 유럽탄소배출권선물 S&P ETF의 경우 지난 2021년 말 상장한 이후 한 달여 만에 40% 넘게 폭등하는 기염을 토했다.
유럽에서 쏟아지는 탄소중립 정책에 더해 유럽 내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한 것이 탄소배출권 가격 상승에 기름을 부었다. ‘KODEX 유럽탄소배출권선물 ICE(H)’, ‘SOL 글로벌탄소배출권 IHS(합성)’, ‘HANARO 글로벌탄소배출권선물 ICE(합성)’(17.83%) 등 국내에서 관련 상품이 쏟아진 것도 이 때문이다.
시장에선 천연가스 가격이 오르면 가격에 부담을 느낀 수요자들이 탄소 발생을 유발하는 석탄 발전으로 선회, 탄소배출권의 가치가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럽의 경우 석탄을 에너지원으로 발전하는 전기량이 14%에 달한다.
기대감 왜 꺾였나
부푼 기대감은 오래가지 못했다. 시장조사업체 트레이딩 이코노믹스에 따르면, 유럽 탄소배출권 가격은 지난해 2월 톤당 100유로를 돌파한 이후 지난 2월 52유로까지 떨어졌다. 이후 반등에 성공하며 80유로까지 상승했지만 재차 60유로 선까지 내려온 상태다.
우선 지지부진한 천연가스 가격이 탄소배출권의 발목을 잡고 있다. 러·우전쟁 이후 급등한 천연가스는 유럽의 이상고온 현상이 지속되면서 재고가 증가해 가격이 하락한 상태다. 석탄 대신 저렴한 천연가스 소비가 이어질 경우 탄소배출이 억제돼 배출권 가치가 상승하지 못하는 구조여서다.
늘어난 배출권 공급도 가격 상승에는 악재다. 한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는 “유럽연합(EU)이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는 리파워EU 정책을 발표하면서 탄소배출권 공급량이 증가한 것 또한 배출권 가격 부진의 원인 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원전에 빠진 빅테크
탄소배출권의 주요 수요자였던 빅테크가 원자력 등 탄소를 적게 배출하는 에너지 발전원에 잇따라 투자를 단행하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 구글은 지난 7월 환경보고서에서 탄소배출권 구매를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대신 원전 관련 기업에 투자해 전기를 공급받기로 했다. 최근 구글은 미국 스타트업 카이로스 파워가 향후 가동하는 소형모듈원전(SMR)의 에너지를 구매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카이로스가 가동하는 6∼7개 원자로에서 총 500MW의 전력을 구매할 계획이다.
전 세계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클라우드 서비스인 아마존 웹 서비스(AWS)의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구동에 필요한 막대한 전력을 확보하기 위해 지난 10월 미국 버지니아주 에너지 기업인 도미니언 에너지와 소형 원자로 개발을 위한 계약을 체결했다. 도미니언은 버지니아에 있는 아마존의 452개 데이터센터에 약 3500MW의 전기를 공급하고 있는데, 이는 약 250만 가구가 사용 가능한 전력량이다. 이번 계약을 통해 추가로 SMR을 지을 경우 300MW 이상의 전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마존은 또 워싱턴주에 있는 공공 전력 공급 기업인 에너지 노스웨스트와 계약을 체결하고, 노스웨스트의 4개 SMR 건설 사업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들 원자로는 초기에 약 320MW의 전력을 생산하고, 이후에 총용량을 960MW로 늘릴 계획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도 미국 원자력발전 1위 기업인 콘스텔레이션 에너지와 20년간 데이터센터에 전력을 공급하는 계약을 맺었다. 이를 위해 콘스텔레이션은 1979년 3월 미국 역사상 최악의 원전 사고가 발생한 스리마일섬 원전 1호기의 상업용 운전을 2028년 재개하기로 한 상태다. 챗GPT 개발사 오픈AI도 원전 에너지 확보에 나섰다. 샘 올트먼 챗GPT CEO가 이사회 의장으로 있는 오클로(Oklo)는 2027년 가동을 목표로 첫 SMR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같은 겹악재에도 중장기적으로 탄소배출권 가격이 우상향 곡선을 그릴 것이란 긍정적 전망이 나온다. 최관순 SK증권 연구원은 “중장기적으로는 배출권거래제 대상 산업 확대, 배출권 선판매에 따른 타이트한 공급 등의 영향으로 우상향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한다”며 “유럽에 이어 영국과 미국도 탄소국경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돼 글로벌 배출권 가격은 장기적으로 동조화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박재원 한국경제 기자 wonderf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