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된 실수로 위기에 빠진 美 Fed…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국제경제읽기 한상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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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앙은행(Fed)은 빅컷을 단행한 지 한 달도 채 못돼 '파월의 실수(Powell’s failure)'에 시달리고 있다. 빅컷 추진 이후 발표되는 경제지표가 워낙 좋게 나오기 때문이다. 이달 말에 발표될 3분기 성장률도 3.4%에 달할 것이라는 추정된다. 오쿤의 법칙상 GDP 갭을 구해보면 1.5% 포인트 이상 인플레이션 갭이 발생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각종 물가 지표는 여전히 목표치를 웃돌고 있다. 오히려 9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은 2.4%로 8월의 2.3%보다 높게 나왔다. '노랜딩'이란 용어가 나올 만큼 펀더멘털이 강한 여건에서 빅컷을 단행하면 1980년대 초 당시 Fed 의장이 저지른 '볼커의 실수(Volker’s failure)'를 저지르지 않겠느냐는 비판이 통화론자를 중심으로 제기하고 있다.
2022년 3월 금리 인상 때도 Fed는 거센 실기론에 시달렸다. 2021년 4월 이후 모든 물가가 급등하자 '일시적'이라 판단하고 오히려 평균물가목표제를 도입해 방관했다. 그 후 말이 뛰는 식으로 물가가 오르는 켈로핑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자 빅스텝(0.25%p), 자이언트 스텝 (0.75%p)으로 금리를 올리는 과정에서 경제 주체에게 충격과 부담을 줬다. '파월의 혼돈(Powell’s chaos)'. 최후 안전판 역할을 해야 할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오히려 주식시장을 비롯한 금융시장을 더 혼란스럽게 한다는 데서 비롯된 신조어다. 남라타 너레인과 쿠날 상가니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파월의 기자회견으로 S&P 지수가 상하로 1%, 금액으로는 390조원 이상의 주가 변동이 초래된다고 추정했다.
1913년 당시 각주의 최대 현안인 물가를 잡기 위해 Fed가 설립됐다. 초기에는 '비밀의 사원'이라 불릴 정도로 철저하게 비공개 원칙을 유지했다. 물가 안정 목표를 도달하기 위한 양대 수단인 '통화량 조절'과 '기준금리 변경' 중 전자를 주수단으로 삼았던 1980년대 초까지 이 원칙이 지켜졌다.
비밀의 사원이 열리기 시작한 것은 2차 오일쇼크로 미국 경제에 들이닥친 스테그플레이션 이후부터다. 경기침체하에 물가가 오르는 사상 초유의 상황을 맞아 직전까지 통화정책의 주수단은 통화량 조절방식이 한계를 보이기 시작했다. 오랜 고민 끝에 당시 폴 볼커 Fed 의장은 기준금리 변경방식을 다시 채택했다.
문제는 경기순환 진폭이 커지고 주가가 짧아지는 '순응성(procyclicality)'과 '단축화(shortening)' 현상이 심화되는데 기준금리 변경방식이 효과를 보기까지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이다. 통화정책의 시차가 길 때는 기준금리를 변경할 때와 효과가 나타나는 시점에 경제 상황이 달라 Fed가 실수를 저지를 확률이 높아진다. 선제성(preemptive)이 통화표준(monetary standard)의 생명으로 여기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통화표준이란 로버트 헤철 전 리치몬드 연방준비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가 주장해 통화정책의 틀(frame)이자 체제(regime)로 기준금리 변경과 같은 통화정책은 일정기간 지속돼야 효과를 볼 수 있어 선제성을 중시한다.
각국 중앙은행은 통화표적경로상 최종 목표인 물가 안정이 제대로 가고 있는지를 중간에 확인해 보고 싶은 표적변수(proxy)가 필요했다. 중간표적변수는 그 특성상 기준금리와 인과관계가 명확하고 최종 목표와의 연계성이 높아야 한다. 이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중간표적변수를 설정해 운용하면 최종 목표 달성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
하지만 이 양대 조건을 갖춘 중간표적변수를 찾기가 더 어렵다는 점이다. 비밀의 사원을 열어 Fed의 의도대로 시장을 끌고 나가 시차를 줄이기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다. 1994년 앨런 그린스펀 의장이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성명서 발표를 필두로 2000년에는 경제진단과 전망, 2003년에는 통화정책 지침이 추가됐다. 바톤을 받은 밴 버냉키 의장은 2011년에 기자회견까지 열었다.
기자회견을 가지면서 또 하나의 문제가 발생했다. FOMC 회의 직후 발표되는 선언문과 30분 후에 갖는 Fed 의장 기자회견 간의 일관성이다. 최근처럼 디지털이 진전되는 통화정책 여건에서는 FOMC 선언문과 Fed 의장의 기자회견과 일치되지 않을 때는 확정 혹은 부정적 편향을 낳아 시장에 혼선을 초래한다.
작년 12월 FOMC 선언문과 파월 Fed 의장의 기자회견으로 이 문제의 중요성을 살펴보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선언문에 포함된 점도표상으로는 올해 세 차례 금리인하가 예상됐다. 하지만 파월의 기자회견은 선언문보다 더 강한 피봇 시사로 최대 여섯 차례까지 금리인하 신호를 줬다. 직전 선언문은 무력화되고 시장은 혼선이 나타났다. 파월 이전에 버냉키와 재닛 옐런 의장이 이 점을 중시해 기자회견 내용을 FOMC 선언문의 내용을 재확인하는 선에 그쳤던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파월 의장은 달랐다. 기자회견 뉘앙스가 FOMC 선언문과 다른 것을 넘어 각종 포럼과 의회 증언에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Fed 인사들도 가세했다.
Fed 의장과 인사들이 수시로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과정에서 통화표준의 생명인 선제성 유지가 어렵게 되자 2021년 9월 평균물가목표제 도입 계기로 노골적으로 '후행적(reactive)'으로 바뀌었다. 통화표준상 선제성을 잃어 통화정책의 주도력을 잡지 못한다면 '세계중앙은행'과 '세계 경제 대통령'으로서 Fed와 Fed 의장의 위상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파월 의장의 교체론과 Fed의 폐지론이 부는 이 시련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로버트 먼델의 최적통화이론에 따라 달러화의 영향권을 감안해 Fed의 역할을 평가하면 크게 두 단계로 구분된다. GATT(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와 IMF(국제통화기금) 탄생을 기점으로 그 이전에는 '미국의 중앙은행', 그 이후에는 '세계중앙은행'의 역할을 했던 시기다.
1기 때 Fed는 물가 안정 목표를 제대로 달성하지 못했다. 스무트-홀리법으로 상징되는 각국의 극단적 보호주의로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지자 Fed는 금리인하 등을 통해 경기부양에 나섰다. 하지만 1차 전쟁의 후유증이 남아있는 여건에서 Fed의 금융완화 조치는 곧바로 인플레이션을 촉발시켰다.
당황한 매리너 에클스 Fed 의장은 성급하게 금리를 대폭 올렸지만 오히려 미국 경제를 '대공황'이란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넣었다. Fed 역사상 최대 치욕으로 평가되고 있는 '에클스 실수(Eccles’s failure)'다. 그때까지 주류 경제학이었던 고전주의 경제학자들은 Fed가 개입하지 않고 시장에 맡겨 놓았더라면 대공황이 10년 이상 지속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좀비(죽은 시체)'라는 혹평을 들을 정도로 무기력증에 빠져있던 Fed를 구해낸 것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주도했던 '뉴딜 정책'이다. 만성적인 초과공급 여건에서 정부 주도로 총수요를 진작시켜 대공황을 탈출시킬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총수요 관리대책의 근거가 된 케인즈 이론이 탄생됐다.
2기에 접어들어서는 외형상으로 Fed의 전성시대가 1970년대 초까지 지속됐다. 이 기간에는 달러 가치가 급값에 연동된 브레튼우즈 체제가 잘 작동됐기 때문이다. 1960년대 케네디·존슨 경기 호황기에도 물가 문제가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하지만 Fed가 잘했다기보다는 국제통화체제의 요인이 더 크다.
'물가 안정' 목표를 달성시키기 위해 Fed의 역할을 절실하게 요구되는 때는 1970년대 이후부터다. 1971년 닉슨의 금 태환 정지선언 이후 과도기인 스미스 소니언 체체를 거쳐 1976년 킹스턴 회의를 계기로 국제통화체제가 자유변동환율제로 넘어가면서 브레튼우즈 체제가 최대 시련을 맞았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 원천도 1970년대 두 차례 오일 쇼크를 거치면서 '총수요' 측에서 '총공급' 측으로 바뀌었다. 다른 거시경제 변수와 관계도 물가와 경제성장 간 '정(正)'에서 '부(負)'의 관계로 바뀌었다. 2기 들어 Fed가 통화정책의 근간으로 삼아왔던 케인즈언 총수요 관리대책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었다.
2차 오일 쇼크 발생 시점에 취임한 폴 볼커 의장은 장고 끝에 Fed의 설립목적에 충실해 금리를 17%까지 올리자 물가가 잡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물가 안정 기조가 정착되지 못한 상황에서 1980년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를 의식해 금리를 9%대로 내리자 물가가 다시 뛰기 시작했다. 에클스 실수만큼 잘 알려지지 않은 '볼커의 실수(Volker’s failure)'다.
1930년대와 마찬가지로 볼커 실수는 로널드 레이건 정부의 공급 중시 경제학으로 해결했다. 래퍼 곡선으로 바탕을 이 이론은 세율 감소 등을 통해 경제주체들의 의욕을 고취시켜 경기침체를 방지하고 물가도 잡을 수 있었다. 그 후 Fed는 수확 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 인터넷 등의 발달로 고성장-저물가의 신경제 신화 덕분에 제2의 전성시대를 맞았다.
설립 이후 Fed가 위기 상황을 맞을 때마다 미국 대통령의 Fed 의장 교체와 혁신적인 통화정책으로 극복했다. 이제 미국의 대통령 선거도 코 앞에 닥쳤다. 내년 1월 20일에 태어날 47대 정부에서는 어떤 Fed 의장과 통화정책 방식으로 위기에 빠진 파월 의장과 Fed를 구할 것인가가 벌써부터 관심이 되고 있다.
한상춘 /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박승원기자 magun1221@wowtv.co.kr
하지만 각종 물가 지표는 여전히 목표치를 웃돌고 있다. 오히려 9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은 2.4%로 8월의 2.3%보다 높게 나왔다. '노랜딩'이란 용어가 나올 만큼 펀더멘털이 강한 여건에서 빅컷을 단행하면 1980년대 초 당시 Fed 의장이 저지른 '볼커의 실수(Volker’s failure)'를 저지르지 않겠느냐는 비판이 통화론자를 중심으로 제기하고 있다.
2022년 3월 금리 인상 때도 Fed는 거센 실기론에 시달렸다. 2021년 4월 이후 모든 물가가 급등하자 '일시적'이라 판단하고 오히려 평균물가목표제를 도입해 방관했다. 그 후 말이 뛰는 식으로 물가가 오르는 켈로핑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자 빅스텝(0.25%p), 자이언트 스텝 (0.75%p)으로 금리를 올리는 과정에서 경제 주체에게 충격과 부담을 줬다. '파월의 혼돈(Powell’s chaos)'. 최후 안전판 역할을 해야 할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오히려 주식시장을 비롯한 금융시장을 더 혼란스럽게 한다는 데서 비롯된 신조어다. 남라타 너레인과 쿠날 상가니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파월의 기자회견으로 S&P 지수가 상하로 1%, 금액으로는 390조원 이상의 주가 변동이 초래된다고 추정했다.
1913년 당시 각주의 최대 현안인 물가를 잡기 위해 Fed가 설립됐다. 초기에는 '비밀의 사원'이라 불릴 정도로 철저하게 비공개 원칙을 유지했다. 물가 안정 목표를 도달하기 위한 양대 수단인 '통화량 조절'과 '기준금리 변경' 중 전자를 주수단으로 삼았던 1980년대 초까지 이 원칙이 지켜졌다.
비밀의 사원이 열리기 시작한 것은 2차 오일쇼크로 미국 경제에 들이닥친 스테그플레이션 이후부터다. 경기침체하에 물가가 오르는 사상 초유의 상황을 맞아 직전까지 통화정책의 주수단은 통화량 조절방식이 한계를 보이기 시작했다. 오랜 고민 끝에 당시 폴 볼커 Fed 의장은 기준금리 변경방식을 다시 채택했다.
문제는 경기순환 진폭이 커지고 주가가 짧아지는 '순응성(procyclicality)'과 '단축화(shortening)' 현상이 심화되는데 기준금리 변경방식이 효과를 보기까지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이다. 통화정책의 시차가 길 때는 기준금리를 변경할 때와 효과가 나타나는 시점에 경제 상황이 달라 Fed가 실수를 저지를 확률이 높아진다. 선제성(preemptive)이 통화표준(monetary standard)의 생명으로 여기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통화표준이란 로버트 헤철 전 리치몬드 연방준비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가 주장해 통화정책의 틀(frame)이자 체제(regime)로 기준금리 변경과 같은 통화정책은 일정기간 지속돼야 효과를 볼 수 있어 선제성을 중시한다.
각국 중앙은행은 통화표적경로상 최종 목표인 물가 안정이 제대로 가고 있는지를 중간에 확인해 보고 싶은 표적변수(proxy)가 필요했다. 중간표적변수는 그 특성상 기준금리와 인과관계가 명확하고 최종 목표와의 연계성이 높아야 한다. 이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중간표적변수를 설정해 운용하면 최종 목표 달성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
하지만 이 양대 조건을 갖춘 중간표적변수를 찾기가 더 어렵다는 점이다. 비밀의 사원을 열어 Fed의 의도대로 시장을 끌고 나가 시차를 줄이기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다. 1994년 앨런 그린스펀 의장이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성명서 발표를 필두로 2000년에는 경제진단과 전망, 2003년에는 통화정책 지침이 추가됐다. 바톤을 받은 밴 버냉키 의장은 2011년에 기자회견까지 열었다.
기자회견을 가지면서 또 하나의 문제가 발생했다. FOMC 회의 직후 발표되는 선언문과 30분 후에 갖는 Fed 의장 기자회견 간의 일관성이다. 최근처럼 디지털이 진전되는 통화정책 여건에서는 FOMC 선언문과 Fed 의장의 기자회견과 일치되지 않을 때는 확정 혹은 부정적 편향을 낳아 시장에 혼선을 초래한다.
작년 12월 FOMC 선언문과 파월 Fed 의장의 기자회견으로 이 문제의 중요성을 살펴보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선언문에 포함된 점도표상으로는 올해 세 차례 금리인하가 예상됐다. 하지만 파월의 기자회견은 선언문보다 더 강한 피봇 시사로 최대 여섯 차례까지 금리인하 신호를 줬다. 직전 선언문은 무력화되고 시장은 혼선이 나타났다. 파월 이전에 버냉키와 재닛 옐런 의장이 이 점을 중시해 기자회견 내용을 FOMC 선언문의 내용을 재확인하는 선에 그쳤던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파월 의장은 달랐다. 기자회견 뉘앙스가 FOMC 선언문과 다른 것을 넘어 각종 포럼과 의회 증언에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Fed 인사들도 가세했다.
Fed 의장과 인사들이 수시로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과정에서 통화표준의 생명인 선제성 유지가 어렵게 되자 2021년 9월 평균물가목표제 도입 계기로 노골적으로 '후행적(reactive)'으로 바뀌었다. 통화표준상 선제성을 잃어 통화정책의 주도력을 잡지 못한다면 '세계중앙은행'과 '세계 경제 대통령'으로서 Fed와 Fed 의장의 위상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파월 의장의 교체론과 Fed의 폐지론이 부는 이 시련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로버트 먼델의 최적통화이론에 따라 달러화의 영향권을 감안해 Fed의 역할을 평가하면 크게 두 단계로 구분된다. GATT(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와 IMF(국제통화기금) 탄생을 기점으로 그 이전에는 '미국의 중앙은행', 그 이후에는 '세계중앙은행'의 역할을 했던 시기다.
1기 때 Fed는 물가 안정 목표를 제대로 달성하지 못했다. 스무트-홀리법으로 상징되는 각국의 극단적 보호주의로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지자 Fed는 금리인하 등을 통해 경기부양에 나섰다. 하지만 1차 전쟁의 후유증이 남아있는 여건에서 Fed의 금융완화 조치는 곧바로 인플레이션을 촉발시켰다.
당황한 매리너 에클스 Fed 의장은 성급하게 금리를 대폭 올렸지만 오히려 미국 경제를 '대공황'이란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넣었다. Fed 역사상 최대 치욕으로 평가되고 있는 '에클스 실수(Eccles’s failure)'다. 그때까지 주류 경제학이었던 고전주의 경제학자들은 Fed가 개입하지 않고 시장에 맡겨 놓았더라면 대공황이 10년 이상 지속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좀비(죽은 시체)'라는 혹평을 들을 정도로 무기력증에 빠져있던 Fed를 구해낸 것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주도했던 '뉴딜 정책'이다. 만성적인 초과공급 여건에서 정부 주도로 총수요를 진작시켜 대공황을 탈출시킬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총수요 관리대책의 근거가 된 케인즈 이론이 탄생됐다.
2기에 접어들어서는 외형상으로 Fed의 전성시대가 1970년대 초까지 지속됐다. 이 기간에는 달러 가치가 급값에 연동된 브레튼우즈 체제가 잘 작동됐기 때문이다. 1960년대 케네디·존슨 경기 호황기에도 물가 문제가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하지만 Fed가 잘했다기보다는 국제통화체제의 요인이 더 크다.
'물가 안정' 목표를 달성시키기 위해 Fed의 역할을 절실하게 요구되는 때는 1970년대 이후부터다. 1971년 닉슨의 금 태환 정지선언 이후 과도기인 스미스 소니언 체체를 거쳐 1976년 킹스턴 회의를 계기로 국제통화체제가 자유변동환율제로 넘어가면서 브레튼우즈 체제가 최대 시련을 맞았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 원천도 1970년대 두 차례 오일 쇼크를 거치면서 '총수요' 측에서 '총공급' 측으로 바뀌었다. 다른 거시경제 변수와 관계도 물가와 경제성장 간 '정(正)'에서 '부(負)'의 관계로 바뀌었다. 2기 들어 Fed가 통화정책의 근간으로 삼아왔던 케인즈언 총수요 관리대책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었다.
2차 오일 쇼크 발생 시점에 취임한 폴 볼커 의장은 장고 끝에 Fed의 설립목적에 충실해 금리를 17%까지 올리자 물가가 잡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물가 안정 기조가 정착되지 못한 상황에서 1980년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를 의식해 금리를 9%대로 내리자 물가가 다시 뛰기 시작했다. 에클스 실수만큼 잘 알려지지 않은 '볼커의 실수(Volker’s failure)'다.
1930년대와 마찬가지로 볼커 실수는 로널드 레이건 정부의 공급 중시 경제학으로 해결했다. 래퍼 곡선으로 바탕을 이 이론은 세율 감소 등을 통해 경제주체들의 의욕을 고취시켜 경기침체를 방지하고 물가도 잡을 수 있었다. 그 후 Fed는 수확 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 인터넷 등의 발달로 고성장-저물가의 신경제 신화 덕분에 제2의 전성시대를 맞았다.
설립 이후 Fed가 위기 상황을 맞을 때마다 미국 대통령의 Fed 의장 교체와 혁신적인 통화정책으로 극복했다. 이제 미국의 대통령 선거도 코 앞에 닥쳤다. 내년 1월 20일에 태어날 47대 정부에서는 어떤 Fed 의장과 통화정책 방식으로 위기에 빠진 파월 의장과 Fed를 구할 것인가가 벌써부터 관심이 되고 있다.
한상춘 /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박승원기자 magun1221@wowtv.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