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 이후 새로운 라이프스타일로 탄생한 '임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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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배세연의 스페이스 오디세이
Charles Eames & Ray Eames 부부
자연과 삶의 방식을 담고 있는 건축물
임스하우스(Eames house)
Charles Eames & Ray Eames 부부
자연과 삶의 방식을 담고 있는 건축물
임스하우스(Eames house)
자신을 잘 아는 일은 어렵다. 태어났을 때부터 너무 당연하게 '안다'고 생각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자신에 대해 잘 알기 위한 노력은 타인을 잘 알기 위한 노력보다 소홀하다. 또한 그렇기에 자신이 진짜로 무엇을 원하는지, 편안해하는지, 좋아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공간도 마찬가지다. 너무 당연하게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잘 모르는 공간, 그렇기에 어려운 공간이 '주거 공간'이다.
오피스나 문화공간처럼 전문성을 갖고 있는 공간들은 그 실체를 알기 전부터 어렵다고들 생각한다. 하지만 막상 제대로 설계하려고 하면, 글을 쓰려고 하면, 무언가를 바꿔보려고 하면 가장 어려운 공간은 주거 공간이다. 주거 공간은 누군가의 계속되는 일상, 즉 삶 자체를 담고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에 가장 많은 주거 형태는 '아파트'이다. 이 아파트는 살기 위한 공간이면서도 투자가치의 대상이자 브랜딩의 대상이기도 하다. 단순히 누군가의 삶을 담기 위해서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이러한 주거 유형이 과연 살기에 적합한 주거인가? 라는 근원적인 질문이 문득문득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사람이 살기 위한 방식, 즉 주거 공간에 대한 다양한 제안은 오랜 기간 동안 많은 디자이너들이 고민하고 제시해왔다. 이들 중 사는 사람의 삶의 방식을 가장 잘 담은 집이 무엇이었나 생각해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임스하우스(Eames House, 1949)이다. 디자인 업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 부부(Charles Eames & Ray Eames)를 모르더라도, 이들이 디자인한 가구들은 (대부분 카피로 존재하고 있는) 한 번 쯤 보았을 가능성이 크다. 이 부부는 일 속에서의 삶, 삶 속에서의 일을 추구하였고 그들이 오래 살았던 집에 그 가치를 오롯이 반영하였다. 몬드리안 패턴의 외관을 가진 두 개의 매스가 중정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배치된 이곳의 구성은 단순하지만, 오늘날에 봐도 뛰어난 디자인의 집이다. 주거 공간-중정(외부)-작업공간 순으로 연결되는 흐름을 가지며 공공성을 가지는 주거 공간의 거실과 스튜디오의 메인 작업공간은 가장 큰 면적과 복층으로 디자인하여 개방감뿐 아니라 공간 활용에 유연성을 더하였다. 주거 공간 중 이 거실의 한 켠에는 작은 알코브를 두어 동일한 공간에서도 위계를 두었고, 1층에는 주방을, 2층에는 부부의 사적공간을 배치하여 공과 사의 공간을 구분하였다. 하지만 2층 난간 위에 설치된 미닫이 문을 열면 침실에서도 거실을 내려다볼 수 있게 하여 시각적인 개방감은 유지된다. 또한 작업공간에는 1층에 암실을, 2층에 별도의 작업실을 두어 메인 작업공간과 함께 부부가 온전히 일에 몰두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두 개의 매스는 사이의 중정을 통해 연결되어 생활과 일을 가까이 두면서도 유연하게 구분할 수 있었다. LA의 산타모니카에 있는 이 집은 해변에서 150미터가량 떨어진 숲속에서 비탈진 지형에 순응하여 지어졌다. 집의 양옆으로는 숲과 바다가 위치하고 건물은 유칼립투스 나무로 둘러 쌓여 있으며 두 건물 중앙에 숲과 이어지는 중정을 두어 마치 자연이 품고 있는 하나의 조각과도 같아 보인다. 그런데 이 집의 훌륭함은 디자인을 넘어 당시 시대상을 고려한 것에서 극대화된다.
이곳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급변하는 사회와 경제적 상황을 깊이 고려하여 지어진 집으로, 산업용 자재인 강철과 유리를 창의적으로 사용하여 구조와 비용의 효율성을 달성하였고 대량 생산된 자재를 조립하는 방식으로 지어져 시공과정에서의 작업량 및 시간의 효율성 또한 달성하였다.
이렇게 산업용 자재로 만들어진 두 개의 직육면체 매스는 극대화된 기능주의의 결과인 듯하지만, 그 내부에는 부부가 세계 각지에서 수집한 물건과 디자인한 가구들이 꽉 채우고 있어 부부의 취향과 생활감이 풍성하게 펼쳐진다. 이처럼 임스하우스는 사는 사람의 생활관과 취향, 시대 상황, 주변 경관을 총체적으로 반영하여 만들어진 집이다. 그리고 이것이 모두에게 좋은 집이라기보다, 이 부부에게 최적화된 집이기에 더 큰 의미가 있다. 필자가 어릴 때부터 꿈꾸고 있는 집은 너른 마당을 품고 있는 한옥이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하면 보통은 주거 공간으로서 한옥의 기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이 오간다. 한옥은 편의성도, 냉/난방의 기능도, 투자가치도 없고 오직 낭만만 있는 집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사람이 사는 공간은 그 사람의 생각과 마음, 나아가 삶의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생각과 마음을 썩 편안하게 해주고 종종 낭만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이 집인 것이 꽤 괜찮지 않나-라는, 자본주의와는 대척점에 있는 생각이 종종 든다.
임스 부부가 찍은 짧은 필름 '10의 제곱수'를 보면, 잔디밭에 누워있는 사람을 기준으로 10의 제곱수만큼 밖을 향할 때와 안을 향할 때 펼쳐지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이때 잔디밭에 누워있는 사람에 ‘나’를 대입해보면 나의 안과 밖에 이처럼 신비로운 광경이 펼쳐질 수 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나에게 허락된 이 넓은 세상 안에서 자신을 중심에 놓고 자신에게 좋은 공간이 무엇일지 충분히 고민하고 상상해본다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다양한 삶의 공간이 존중되는 세상에 우리가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해본다.
배세연 한양대 실내건축디자인학과 조교수
오피스나 문화공간처럼 전문성을 갖고 있는 공간들은 그 실체를 알기 전부터 어렵다고들 생각한다. 하지만 막상 제대로 설계하려고 하면, 글을 쓰려고 하면, 무언가를 바꿔보려고 하면 가장 어려운 공간은 주거 공간이다. 주거 공간은 누군가의 계속되는 일상, 즉 삶 자체를 담고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에 가장 많은 주거 형태는 '아파트'이다. 이 아파트는 살기 위한 공간이면서도 투자가치의 대상이자 브랜딩의 대상이기도 하다. 단순히 누군가의 삶을 담기 위해서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이러한 주거 유형이 과연 살기에 적합한 주거인가? 라는 근원적인 질문이 문득문득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사람이 살기 위한 방식, 즉 주거 공간에 대한 다양한 제안은 오랜 기간 동안 많은 디자이너들이 고민하고 제시해왔다. 이들 중 사는 사람의 삶의 방식을 가장 잘 담은 집이 무엇이었나 생각해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임스하우스(Eames House, 1949)이다. 디자인 업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 부부(Charles Eames & Ray Eames)를 모르더라도, 이들이 디자인한 가구들은 (대부분 카피로 존재하고 있는) 한 번 쯤 보았을 가능성이 크다. 이 부부는 일 속에서의 삶, 삶 속에서의 일을 추구하였고 그들이 오래 살았던 집에 그 가치를 오롯이 반영하였다. 몬드리안 패턴의 외관을 가진 두 개의 매스가 중정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배치된 이곳의 구성은 단순하지만, 오늘날에 봐도 뛰어난 디자인의 집이다. 주거 공간-중정(외부)-작업공간 순으로 연결되는 흐름을 가지며 공공성을 가지는 주거 공간의 거실과 스튜디오의 메인 작업공간은 가장 큰 면적과 복층으로 디자인하여 개방감뿐 아니라 공간 활용에 유연성을 더하였다. 주거 공간 중 이 거실의 한 켠에는 작은 알코브를 두어 동일한 공간에서도 위계를 두었고, 1층에는 주방을, 2층에는 부부의 사적공간을 배치하여 공과 사의 공간을 구분하였다. 하지만 2층 난간 위에 설치된 미닫이 문을 열면 침실에서도 거실을 내려다볼 수 있게 하여 시각적인 개방감은 유지된다. 또한 작업공간에는 1층에 암실을, 2층에 별도의 작업실을 두어 메인 작업공간과 함께 부부가 온전히 일에 몰두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두 개의 매스는 사이의 중정을 통해 연결되어 생활과 일을 가까이 두면서도 유연하게 구분할 수 있었다. LA의 산타모니카에 있는 이 집은 해변에서 150미터가량 떨어진 숲속에서 비탈진 지형에 순응하여 지어졌다. 집의 양옆으로는 숲과 바다가 위치하고 건물은 유칼립투스 나무로 둘러 쌓여 있으며 두 건물 중앙에 숲과 이어지는 중정을 두어 마치 자연이 품고 있는 하나의 조각과도 같아 보인다. 그런데 이 집의 훌륭함은 디자인을 넘어 당시 시대상을 고려한 것에서 극대화된다.
이곳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급변하는 사회와 경제적 상황을 깊이 고려하여 지어진 집으로, 산업용 자재인 강철과 유리를 창의적으로 사용하여 구조와 비용의 효율성을 달성하였고 대량 생산된 자재를 조립하는 방식으로 지어져 시공과정에서의 작업량 및 시간의 효율성 또한 달성하였다.
이렇게 산업용 자재로 만들어진 두 개의 직육면체 매스는 극대화된 기능주의의 결과인 듯하지만, 그 내부에는 부부가 세계 각지에서 수집한 물건과 디자인한 가구들이 꽉 채우고 있어 부부의 취향과 생활감이 풍성하게 펼쳐진다. 이처럼 임스하우스는 사는 사람의 생활관과 취향, 시대 상황, 주변 경관을 총체적으로 반영하여 만들어진 집이다. 그리고 이것이 모두에게 좋은 집이라기보다, 이 부부에게 최적화된 집이기에 더 큰 의미가 있다. 필자가 어릴 때부터 꿈꾸고 있는 집은 너른 마당을 품고 있는 한옥이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하면 보통은 주거 공간으로서 한옥의 기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이 오간다. 한옥은 편의성도, 냉/난방의 기능도, 투자가치도 없고 오직 낭만만 있는 집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사람이 사는 공간은 그 사람의 생각과 마음, 나아가 삶의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생각과 마음을 썩 편안하게 해주고 종종 낭만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이 집인 것이 꽤 괜찮지 않나-라는, 자본주의와는 대척점에 있는 생각이 종종 든다.
임스 부부가 찍은 짧은 필름 '10의 제곱수'를 보면, 잔디밭에 누워있는 사람을 기준으로 10의 제곱수만큼 밖을 향할 때와 안을 향할 때 펼쳐지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이때 잔디밭에 누워있는 사람에 ‘나’를 대입해보면 나의 안과 밖에 이처럼 신비로운 광경이 펼쳐질 수 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나에게 허락된 이 넓은 세상 안에서 자신을 중심에 놓고 자신에게 좋은 공간이 무엇일지 충분히 고민하고 상상해본다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다양한 삶의 공간이 존중되는 세상에 우리가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해본다.
배세연 한양대 실내건축디자인학과 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