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투자자가 한국에 ESG 공시 요구한 배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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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가 한국 자산시장에 ESG 공시를 요구한 배경에는 '수탁자 책임', '포트폴리오 관리', '피로감' 3가지 키워드가 있다. 기업가치 제고(밸류업)를 위해선 투자자가 왜 이러한 요구를 하는지 이해해야 한다.
[한경ESG] 러닝 - ESG와 밸류업 ①
한국회계기준원은 9월 말 ‘한국 지속가능성 공시기준(KSSB) 공개초안 의견조회 최종 결과’를 공개했다. 입장을 알기 어려웠던 글로벌 투자자의 의견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의견을 낸 글로벌 투자자는 11곳이었다. 노르웨이 국부펀드(NBIM), 네덜란드 연금자산운용(APG)처럼 기후변화 대응이 미진한 한국 기업을 투자 배제(네거티브 스크리닝)한 운용사도 있고, 높은 수익률로 유명한 캐나다 연금(CPPIB), 리걸앤제너럴(LGIM)과 티로프라이스 같은 초대형 자산운용사도 참여했다.
이 운용사들의 참여가 한국회계기준원이 선별적으로 보낸 서신에 회신한 게 아닌 자발적이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자산운용사와 함께 금융투자업계의 기후변화 대응을 촉진하는 유엔환경계획(UNEP), 책임투자원칙(PRI), 아시아 기후변화 투자자 그룹(AIGCC) 같은 파트너십 성격의 6개 기관도 목소리를 냈다.
특히 AIGCC는 의견을 제출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AIGCC는 8개 자산운용사와 10월 초 김병환 금융위원장에게 조속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시 의무화 일정 확정을 촉구하는 공개서한을 보냈다. 이들 운용사의 운용자산 규모 합계는 4700조 원에 달한다. KSSB 공개초안 의견도 제출했던 브리티시 콜롬비아 자산운용(BCI)과 LGIM이 공개서한 발송에 함께했다. 한국 리테일 펀드시장에도 진출한 피델리티 자산운용, 슈로더가 서명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한국의 지속가능성 정보공개 기준과 도입 방법, 시기 같은 쟁점에 대한 이들의 의견이었지만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즉,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를 최대한 수용하고 “가급적 의무화 시기를 2026년(2025 회계연도)으로 당기고, 도입 일정도 빨리 확정하라”는 것이다. 2023년 6월 ISSB 최종안이 공개된 이후 국내 기관투자자의 주장과 거의 일치했다. 그러나 의문이 남는다. 왜 글로벌 연기금과 대형운용사들은 포트폴리오에서 크지 않은 비중인 한국 기업의 지속가능성 정보공개 기준 도입에 적극적인 관심을 표명하는 것일까.
투자자들의 ‘이유’ 있는 공시 요구
첫째, 운용사 본연의 수탁자 책임원칙(스튜어드십 코드)을 충실히 이행하는 과정으로 보인다. AIGCC의 공개서한은 “고객 최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고 수탁자 책임을 다하기 위해 지속가능성 관련 중요한 정보도 요구해야 하는 게 의무”라고 적고 있다. 이러한 활동이 스튜어드십 코드 이행이라고 보는 것이다. 지속가능 투자를 유독 강조하는 미국 캘리포니아 교직원연금(CalSTRS)을 비롯한 유수의 연기금 등이 목록에 속해 있는 이유다.
둘째, 한국 기업의 주가수익률이 부진해 자신들의 운용수익률이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예를 들어 한국 기업 보유 규모를 살펴보면 NBIM은 29조 원, APG는 15조 원, CPPIB는 11조 원에 달한다. 한국이 지속가능 정보공개의 첫 단추인 기후 공시를 소홀히 하면 한국 증시 저평가(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심화될 것이란 게 이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포트폴리오에 속한 회사 하나둘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다.
셋째, 펀드운용 과정에서 한국만 이례적으로 다루기 불편해서다. 실제 외국 투자자 일부는 한국 기업만 유독 지속가능 정보 전산화, 표준화가 더뎌 관련 정보를 찾을 때 두꺼운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일일이 찾아 읽고 회사에 확인하는 것에 상당한 피로감을 호소하곤 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멀리 있지 않다.
2024년 11월 현재 한국 주식시장의 화두인 삼성전자 위기와 함께 밸류업이 꼽힌다. 사실 밸류업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에 대한 논의는 2024년 내내 진행됐다. 주주환원 방식 선진화, 이사의 의무와 관련한 상법 개정과 이어지는 대기업 분할 합병 논란, 일본의 밸류업 프로그램의 벤치마크 등이다.
밸류업의 본질, ESG
‘밸류업 지수’는 자기자본이익률(ROE)과 주가순자산비율(PBR)로 자를 대듯 분류해 종목이 편입됐다.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간 이해충돌 소지가 있던 회사들도 포함됐다. 초과수익과 섹터 배분을 고려하다 정체성을 잃었다는 비판도 이어지고 있으나 벤치마크를 보강한다고 했으니 걱정은 잠시 내려둘 일이다.
이보다 걱정스러운 점은 밸류업의 본질과 ESG에 대한 생각이 미진하다는 것이다. 밸류업이 엄연히 ‘내재 가치 상승’을 의미하기에 한국의 밸류업은 ESG를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작금의 시대에는 ESG가 내재 가치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친다. ESG는 개념상으로 위험을 낮춰 자본비용에 반영된다. 그래서 ESG 투자는 장기 위험조정수익률을 지향한다.
재무학에서 내재 가치를 계산할 때 주로 사용하는 현금흐름 할인법의 변수들은 자본비용, 미래 현금흐름, 이익과 배당의 성장률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ESG가 이 모든 변수에 영향을 미친다. 거버넌스(G)는 이 모두를 관통함과 동시에 배당과 직결된다. 환경(E)은 기후 위험을 재무제표에서 수치로 표현하는데 컨센서스(국내 투자자만 부지불식간에)를 찾아가고 있다.
하물며 산업재해, 정보보호, 공급망 관리가 포함되는 사회(S) 부문도 비재무로만 볼 게 아니라 재무적으로도 간주해야 할 변화가 감지된다. 마침 ESG를 비판하던 지점인 ‘기업가치에 반영할 보편적이고 객관적 합의 결여’도 이제는 ESG 공시 의무화를 계기로 저물어갈 참이다.
정책 당국이 밸류업을 강화하려 한다면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시장의 ESG를 어떻게 생각할지가 매우 중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9월과 10월에 공개된 한국 ESG 공시에 대한 글로벌 운용사들의 의견은 소중하다. 기후변화 대응 때문에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가중되어 밸류업의 발목을 잡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지윤 서스틴베스트 전무
이 운용사들의 참여가 한국회계기준원이 선별적으로 보낸 서신에 회신한 게 아닌 자발적이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자산운용사와 함께 금융투자업계의 기후변화 대응을 촉진하는 유엔환경계획(UNEP), 책임투자원칙(PRI), 아시아 기후변화 투자자 그룹(AIGCC) 같은 파트너십 성격의 6개 기관도 목소리를 냈다.
특히 AIGCC는 의견을 제출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AIGCC는 8개 자산운용사와 10월 초 김병환 금융위원장에게 조속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시 의무화 일정 확정을 촉구하는 공개서한을 보냈다. 이들 운용사의 운용자산 규모 합계는 4700조 원에 달한다. KSSB 공개초안 의견도 제출했던 브리티시 콜롬비아 자산운용(BCI)과 LGIM이 공개서한 발송에 함께했다. 한국 리테일 펀드시장에도 진출한 피델리티 자산운용, 슈로더가 서명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한국의 지속가능성 정보공개 기준과 도입 방법, 시기 같은 쟁점에 대한 이들의 의견이었지만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즉,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를 최대한 수용하고 “가급적 의무화 시기를 2026년(2025 회계연도)으로 당기고, 도입 일정도 빨리 확정하라”는 것이다. 2023년 6월 ISSB 최종안이 공개된 이후 국내 기관투자자의 주장과 거의 일치했다. 그러나 의문이 남는다. 왜 글로벌 연기금과 대형운용사들은 포트폴리오에서 크지 않은 비중인 한국 기업의 지속가능성 정보공개 기준 도입에 적극적인 관심을 표명하는 것일까.
투자자들의 ‘이유’ 있는 공시 요구
첫째, 운용사 본연의 수탁자 책임원칙(스튜어드십 코드)을 충실히 이행하는 과정으로 보인다. AIGCC의 공개서한은 “고객 최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고 수탁자 책임을 다하기 위해 지속가능성 관련 중요한 정보도 요구해야 하는 게 의무”라고 적고 있다. 이러한 활동이 스튜어드십 코드 이행이라고 보는 것이다. 지속가능 투자를 유독 강조하는 미국 캘리포니아 교직원연금(CalSTRS)을 비롯한 유수의 연기금 등이 목록에 속해 있는 이유다.
둘째, 한국 기업의 주가수익률이 부진해 자신들의 운용수익률이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예를 들어 한국 기업 보유 규모를 살펴보면 NBIM은 29조 원, APG는 15조 원, CPPIB는 11조 원에 달한다. 한국이 지속가능 정보공개의 첫 단추인 기후 공시를 소홀히 하면 한국 증시 저평가(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심화될 것이란 게 이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포트폴리오에 속한 회사 하나둘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다.
셋째, 펀드운용 과정에서 한국만 이례적으로 다루기 불편해서다. 실제 외국 투자자 일부는 한국 기업만 유독 지속가능 정보 전산화, 표준화가 더뎌 관련 정보를 찾을 때 두꺼운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일일이 찾아 읽고 회사에 확인하는 것에 상당한 피로감을 호소하곤 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멀리 있지 않다.
2024년 11월 현재 한국 주식시장의 화두인 삼성전자 위기와 함께 밸류업이 꼽힌다. 사실 밸류업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에 대한 논의는 2024년 내내 진행됐다. 주주환원 방식 선진화, 이사의 의무와 관련한 상법 개정과 이어지는 대기업 분할 합병 논란, 일본의 밸류업 프로그램의 벤치마크 등이다.
밸류업의 본질, ESG
‘밸류업 지수’는 자기자본이익률(ROE)과 주가순자산비율(PBR)로 자를 대듯 분류해 종목이 편입됐다.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간 이해충돌 소지가 있던 회사들도 포함됐다. 초과수익과 섹터 배분을 고려하다 정체성을 잃었다는 비판도 이어지고 있으나 벤치마크를 보강한다고 했으니 걱정은 잠시 내려둘 일이다.
이보다 걱정스러운 점은 밸류업의 본질과 ESG에 대한 생각이 미진하다는 것이다. 밸류업이 엄연히 ‘내재 가치 상승’을 의미하기에 한국의 밸류업은 ESG를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작금의 시대에는 ESG가 내재 가치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친다. ESG는 개념상으로 위험을 낮춰 자본비용에 반영된다. 그래서 ESG 투자는 장기 위험조정수익률을 지향한다.
재무학에서 내재 가치를 계산할 때 주로 사용하는 현금흐름 할인법의 변수들은 자본비용, 미래 현금흐름, 이익과 배당의 성장률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ESG가 이 모든 변수에 영향을 미친다. 거버넌스(G)는 이 모두를 관통함과 동시에 배당과 직결된다. 환경(E)은 기후 위험을 재무제표에서 수치로 표현하는데 컨센서스(국내 투자자만 부지불식간에)를 찾아가고 있다.
하물며 산업재해, 정보보호, 공급망 관리가 포함되는 사회(S) 부문도 비재무로만 볼 게 아니라 재무적으로도 간주해야 할 변화가 감지된다. 마침 ESG를 비판하던 지점인 ‘기업가치에 반영할 보편적이고 객관적 합의 결여’도 이제는 ESG 공시 의무화를 계기로 저물어갈 참이다.
정책 당국이 밸류업을 강화하려 한다면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시장의 ESG를 어떻게 생각할지가 매우 중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9월과 10월에 공개된 한국 ESG 공시에 대한 글로벌 운용사들의 의견은 소중하다. 기후변화 대응 때문에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가중되어 밸류업의 발목을 잡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지윤 서스틴베스트 전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