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지난 2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에서 열린 영풍과 MBK와의 경영권 분쟁 관련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지난 2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에서 열린 영풍과 MBK와의 경영권 분쟁 관련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법원이 21일 영풍이 고려아연 측을 상대로 낸 자사주 공개매수 중지 가처분 신청을 또다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로써 고려아연 측은 오는 23일까지 진행하는 자사주 공개매수를 예정대로 진행할 수 있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민사50부(재판장 김상훈)는 이날 영풍이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박기덕·정태웅 대표이사를 상대로 낸 자기주식 취득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이번 가처분은 고려아연이 지난 4일부터 오는 23일까지 자사주를 주당 89만원에 공개매수한다고 하자 영풍 측이 회사에 손해를 끼치는 배임 행위에 해당한다며 이를 막아달라는 취지로 신청한 것이다.

앞서 같은 재판부는 지난 2일에도 영풍이 고려아연을 상대로 제기한 자사주 취득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1차 가처분으로 고려아연이 자사주를 매입해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게 되자, 영풍이 다시 한번 가처분 신청을 낸 것이다.

이번 결정의 영향으로 시장은 고려아연 주가가 자사주 공개매수 가격으로 최종 제시한 89만원 안팎까지 뛸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고려아연이 오는 23일까지 주식을 자사에 팔면 89만원을 보장해주기 때문에 세금 등을 제외하더라도 시세차익을 고려하면 시장 논리에 따라 가격이 뛸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 이날 고려아연 주가는 가처분 리스크에 장 초반 7%대 급락하기도 했지만 법원 기각 소식 이후 6%대 급반등한 87만원대에서 거래되고 있다. 장 초반 9%대 급락세였던 영풍정밀 주가도 9%대 반등한 상태다.
고려아연이 이사회를 연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고려아연 본사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고려아연이 이사회를 연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고려아연 본사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이날 법원이 영풍 측의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면서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은 장기전으로 흘러가게 됐다.

영풍·MBK파트너스 연합은 궁극적으로 이사회를 장악해 최 회장의 해임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다음 달 임시주주총회를 열어 새로운 이사진을 선임해 이사회 과반을 장악하면 고려아연 경영권을 가져올 수 있다.

하지만 최 회장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은 올해 3월 임기 만료로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으나, 현재 이사회 의장이자 사내이사로 재임 중이다. 사내이사 임기는 오는 2026년 3월까지다.

현재 고려아연 이사진은 13명으로 장형진 영풍 고문을 제외한 나머지 12명이 모두 최 회장 측 인물이다. 임시 주총은 이사회 결의 사항이어서 만약 이사회가 임시 주총 개최를 거부하면 영풍·MBK 연합은 법원에 주총 소집 허가를 신청해야 한다.

향후 의결권 과반을 누가 확보할지를 두고 장기전이 이어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경영권을 차지하려면 주주총회 표 대결을 통해 이사회 구성을 결정해 의결권을 확보하는 것이 핵심이다.

영풍·MBK 연합의 공개매수 종료 이후 고려아연의 지분 구조는 현재 △MBK·영풍 38.47% △최 회장 및 우호지분 33.9% △국민연금 7.83% △자사주 2.4% △기타주주 17.4%로 구성됐다. 영풍·MBK 연합과 최 회장 측 지분, 자사주, 국민연금 등을 제외하고 자사주 청약 가능 물량은 15% 안팎으로 줄었다.

최 회장 측이 추후 공개매수를 통해 의결권을 가지고 있는 베인캐피탈의 최대 취득 물량 2.5%를 확보한다면 최 회장 측 및 우호 지분은 36.4%로 오르게 된다. 이 경우에도 MBK·영풍 연합의 지분이 좀 더 앞서게 된다.

문제는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기 때문에 고려아연 측이 자사주를 사들이더라도 주주총회 표 대결에서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다. 고려아연은 공개매수로 사들인 자기주식을 전량 소각할 예정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그렇게 되면 영풍·MBK 측과 최 회장을 포함한 모든 주주의 지분율이 함께 상승한다.

만약 자사주 공개매수를 통해 10%를 사들여 소각하는 경우 의결권 기준 영풍·MBK 연합의 지분은 42.74%, 최 회장 측은 베인캐피털 우호 지분까지 합해 40.27%로 각각 높아진다.

확실한 승자가 없는 만큼 7.83% 지분을 가진 국민연금이 자연스럽게 '캐스팅보터'로 떠오르게 된다.

국민연금은 지난 3월 고려아연의 정기주총에서 현 경영진에 대한 힘을 실어줬던 만큼 현재로서는 최 회장 측에 힘을 실어줄 거란 전망이 나온다. 당시 국민연금은 올라온 17건의 안건에 모두 찬성표를 던졌다.

2022년에는 현재 MBK와 함께하는 장형진 영풍 고문의 사내이사 선임에 대해 "과도한 겸임으로 충실의무 수행이 어려운 자"라며 반대표를 던지기도 했다.

국민연금은 말을 아끼고 있다. 김태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지난 1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고려아연 의결권 행사 여부에 대한 질의에 "장기적 수익률 제고 측면에서 판단해야 한다"고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