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가을이 되면 전 세계 오페라하우스에서 앞다투어 올리는 오페라가 있다. 특히나 음악의 본고장 빈에서 이 작품이 없는 오페라 시즌은 감히 상상하기도 힘들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 Der Rosenkavalier>이다. 위대한 극작가 휴고 폰 호프만스탈이 대본을 쓰고, 슈트라우스가 은빛 찬란한 음악을 붙인 이 작품은 ‘완벽한 빈 스타일 오페라’의 정수로 손꼽힌다.

오페라의 배경은 마리아 테레지아 시대의 빈이다. 오스트리아 육군 대원수부인, 즉 먀살린은 남편이 없는 틈을 타 꽃미남 청년 귀족 옥타비안 백작과 은밀한 사랑을 나누고 있다. 이때 시골에서 올라온 먼 친척 옥스 남작이 나타나 청혼의 전령이 필요하다며 추천을 부탁한다. 옥스는 군납 사업으로 졸부가 된 파니날 집안의 딸 조피와의 결혼을 도모하고 있다. 먀살린은 고민 끝에 자신의 연인 옥타비안을 조피에게 보내기로 한다.
2024 빈 국립 오페라극장에서 '장미의 기사' 공연 / 사진. © 빈 국립 오페라 극장
2024 빈 국립 오페라극장에서 '장미의 기사' 공연 / 사진. © 빈 국립 오페라 극장
그리하여 어느 날 조피의 저택 문 앞에 숨길 수 없는 고고한 기품을 지닌, 그림 같은 외모의 젊은 귀공자가 나타난다. 그의 이름은 옥타비안 로프라노 백작. 당시엔 신랑 측이 청혼의 예를 다하기 위해 전령을 통해 신부에게 은으로 만든 장미를 전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사실은 오페라에서 지어낸 이야기지만) 이를 로젠카발리어, 즉 장미의 기사라 불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장미를 들고 온 청혼의 전령 옥타비안 백작과 예비신부 조피가 그만 첫눈에 반해버리고 만 것이다.
2024 빈 국립 오페라극장에서 '장미의 기사' 공연 / 사진. © 빈 국립 오페라 극장
2024 빈 국립 오페라극장에서 '장미의 기사' 공연 / 사진. © 빈 국립 오페라 극장
결국 두 사람은 그저 돈과 물욕에만 눈이 먼 옥스 남작을 물리치기로 마음을 모은다. 이 젊은이들의 결합에 의외로 마샬린이 힘을 보탠다. 사실 그녀도 고민이 있었다. 눈부신 미모의 꽃미남인 옥타비안이 조피와 만난다면 둘 사이에 금방 사랑이 싹트지는 않을까? 마샬린도 그런 가능성을 일찌감치 예감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또한 감내한다.

‘세월의 흐름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겠지. 차라리 아름답게 흐르는 저 왈츠처럼 거기에 순응해서 살아가는 것이 맞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면서. 바로 이 장면에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감각적인 음악과 호프만스탈의 정밀한 대본은 실로 도취적인 ‘비엔나적 우아함’의 진수를 보여준다. 결국 마샬린은 옥타비안과 조피 커플을 도와 욕심 많은 옥스 남작을 가까스로 물리치고 젊은 두 남녀가 사랑의 결실을 맺도록 도와준다.
2024 빈 국립 오페라극장에서 '장미의 기사' 공연 / 사진. © 빈 국립 오페라 극장
2024 빈 국립 오페라극장에서 '장미의 기사' 공연 / 사진. © 빈 국립 오페라 극장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죽음과 변용>, <가정교향곡>, <알프스교향곡> 등 교향시와 교향곡으로 유명했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사실 바그너 이후 독일 오페라를 완성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로도 손꼽힌다. 특히 입체적인 음향효과와 현란하고 세련된 오케스트레이션 위에 로코코 스타일의 고고한 우아함이 덧입혀진 <장미의 기사>는 오스트리아 사람들에게 영원한 동경과 아련한 노스탤지어를 상징하는 오페라이기도 하다.
2024 빈 국립 오페라극장에서 '장미의 기사' 공연 / 사진. © 빈 국립 오페라 극장
2024 빈 국립 오페라극장에서 '장미의 기사' 공연 / 사진. © 빈 국립 오페라 극장
특히 우아하고 매혹적인 자태를 지녔으나,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 속에 서서히 망각 속으로 사라지게 되는 중년부인 마샬린은 그 자체로 오스트리아 제국을 상징하고 있기도 하다. 올가을에도 빈의 어느 오페라하우스와 콘서트홀에서는 어김없이 <장미의 기사> 속 왈츠 선율이 풍요롭게 울려 퍼지고 있을 것이다.

황지원 오페라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