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자가 가슴에 억만금을 품고 그림 사는 꿈을 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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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이보름의 내가 사랑했던 모든 유물들
백련 지운영 <동파선생적벽유도>
백련 지운영 <동파선생적벽유도>
9월 초의 부산했던 아트페어 기간을 되돌아본다. 여러 관점이 있을 수 있겠지만, 누군가 내게 ‘아트페어란 무엇인가요?’라고 묻는다면, ‘조용하지만 뜨거운, 안목 대결의 현장’이라고 답하고 싶다.
갤러리들은 그들의 축적된 안목으로 부스를 꾸몄다. 그 안에는 대한민국을, 아시아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슈퍼 컬렉터들의 안목도 녹아있을 것이다. 격조 있는 모습으로 백조처럼 앉아 있지만 이미 그 자체로 치열한 안목 경쟁 중이다. 그 결과물은 배우기 좋아하고 트렌드에 민감한 한국인들에게 일종의 모범답안으로 작용한다. 사람들은 와서 가격이 얼마냐고 묻고, 자신이 고른 작품이 친구가 고른 작품보다 비싸다는 사실에, 혹은 벌써 이미 팔렸다는 사실에 기뻐한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 가격이 올라가고, 점점 구하기 어려워지는 상황을 자기 일처럼 좋아한다. 지금 당장 내가 작품을 살 수 없더라도, 나의 안목은 높다는 것을 확인하고 인정받고 싶어 한다. 안목이란 무엇일까? 뭐길래 대체 다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일까? 안목은 마치, 성공한 자라면 응당 가지고 있어야 하는, 미덕 같은 취급을 받는다. 어쩌면 안목은, 취향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하지만, 안목이 좋은 사람들은 자기 취향이 아니더라도 그중에서 좋은 작품을 가려내는 초능력이 있다. 그래서 취향과는 다르다. 편하게 말해보자면, ‘볼 줄 안다’ 그런 건데, 우리가 훨씬 더 많이 쓰는 ‘먹을 줄 안다’ 같은 정도의 느낌 아닐까 싶다. 소위 ‘먹을 줄 아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다가 그 묘미를 알게 된 걸까? 그걸 안다면, ‘볼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도 그대로 따라 하면 될 일 아닐까?
나름대로 답을 내보자면, 다른 방법은 몰라도 확실한 것 하나가 있다. 많이 봐야 한다. 먹을 줄 아는 사람들의 비결이 대부분 많이 잘 먹어 본 경험치에서 나온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절대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런 말은 나도 하겠다!’ 싶겠지만, ‘많이’와 ‘본다’ 사이에 숨겨진 말들이 많다. 보통 많이 봐야 가능한 일이 아니고, 눈이 떠져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써야 한다. 실물이든 사진이든 가리지 않고 봐야 한다. 볼 때도 그냥 봐서는 안 된다. 열심히 봐야 하고, 다 외워야 한다.
정말 가지고 싶었던 그림이 있었다. 새집에 갓 이사했을 즈음이라 ‘집 어디에 걸어야지’하고 달뜬 상상까지 했었다. 꼭 우리 집에 들이고 싶었기에 예상치 이상으로 예산도 여유 있게 잡았다. 그래서 무리 없이 내 것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아무래도 관심도가 낮은 한국 근대 동양화 작품이었고, 작가도 그렇게 유명하진 않았으니까.
화면의 절반에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부각시킨 파격적인 구도가 눈에 띄는 작품이다. 1922년, 백련 지운영(白蓮 池雲英, 1852-1935)이 71세 때 그린 그림이다. 고종 어사진(御寫眞)을 최초로 촬영한 한국인으로 유명한 바로 그 지운영이다. 백련은 소동파에 대해 남다른 관심이 있었던 것 같다. 삿갓을 쓰고 나막신을 신은 소동파의 모습을 그린 <동파입극도> 작품도 많이 남겼고, 소동파가 적벽에서 뱃놀이하는 광경을 담은 <적벽유도> 역시 여러 점 그렸다.
이 작품과 거의 유사한 작품이 한 점,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고, 국립중앙박물관 유리건판 사진 자료에도 오른쪽에 절벽을 두고 원경에 아스라이 산월을 그린 비슷한 작품들을 찾아볼 수 있다. 아마 전에 없던 과감하고 시원한 구도가 스스로도 만족스러웠던 것이 아닐까 싶다. 이 작품은 경매 시작가 200만 원, 높은 추정가 500만 원이었다. 백련 지운영의 작품 가격으로는 적당한 평가였으나, 백련의 작품 중에서는 수작으로 꼽을만해서 경합을 예상하긴 했다. 그래서 넉넉하게 높은 추정가 500만 원에서 조금 더 쓰면 무난히 낙찰받을 수 있겠다고 생각한 거다. 하지만 결과는 낙찰가 1,150만 원! 오버페이스로 600만 원, 700만 원, 열심히 따라가 보았지만, 뱁새는 용을 써봤자 뱁새일 뿐, 황새를 따라갈 수 없다는 걸 또 느꼈다. 뭐, 어차피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었다. 최종 낙찰자가 국립현대미술관이었으니.
이런 경험을 여러 번 하면, 어쩌면 아직도 섣부를지 몰라도, 스스로 제 안목에 대한 신뢰가 생긴다. 되팔아서 돈이 될 작품도 아닌데 누가 저렇게 따라오냐고 애먼 직원들한테 짜증을 내고 응찰 도중에 전화를 확 끊기도 했는데, 나중에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손꼽히는 컬렉터랑 붙었다는 걸 알게 될 때, 또, 차근차근 따라가고 있었는데 상대편이 이번처럼 국립현대미술관이나 국립중앙박물관이라는 걸 알고 중도에 포기할 때, 그림을 못 사서 서운하긴 해도 내심 뿌듯하고 기분이 좋다. 어쩌면 이젠 그 만족감마저 수집의 대상이 된 것 같다. 그림 모으기 취미를 끊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 어느 날, 옛날에 읽은 책의 한 페이지가 불현듯 떠올랐다. 야나기 무네요시(일본 미술평론가)의 글이다. 같이 한번 읽어보시면 좋겠다. 나는 어쨌든 그런 인물이 한번 되어보겠다고 마음먹었다. ‘돈으로 안 되는 게 있다면 돈이 부족해서가 아닐까 생각해 보라’는 어이없는 말이 받아들여지는 웃픈 세상이지만, 이 글을 보면, 글쎄. 돈이 없어 작품은 놓친다고 하더라도, ‘안목’이 있는 능력자가 무시당할 일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이보름 가나문화재단·가나아트 기획총괄
갤러리들은 그들의 축적된 안목으로 부스를 꾸몄다. 그 안에는 대한민국을, 아시아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슈퍼 컬렉터들의 안목도 녹아있을 것이다. 격조 있는 모습으로 백조처럼 앉아 있지만 이미 그 자체로 치열한 안목 경쟁 중이다. 그 결과물은 배우기 좋아하고 트렌드에 민감한 한국인들에게 일종의 모범답안으로 작용한다. 사람들은 와서 가격이 얼마냐고 묻고, 자신이 고른 작품이 친구가 고른 작품보다 비싸다는 사실에, 혹은 벌써 이미 팔렸다는 사실에 기뻐한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 가격이 올라가고, 점점 구하기 어려워지는 상황을 자기 일처럼 좋아한다. 지금 당장 내가 작품을 살 수 없더라도, 나의 안목은 높다는 것을 확인하고 인정받고 싶어 한다. 안목이란 무엇일까? 뭐길래 대체 다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일까? 안목은 마치, 성공한 자라면 응당 가지고 있어야 하는, 미덕 같은 취급을 받는다. 어쩌면 안목은, 취향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하지만, 안목이 좋은 사람들은 자기 취향이 아니더라도 그중에서 좋은 작품을 가려내는 초능력이 있다. 그래서 취향과는 다르다. 편하게 말해보자면, ‘볼 줄 안다’ 그런 건데, 우리가 훨씬 더 많이 쓰는 ‘먹을 줄 안다’ 같은 정도의 느낌 아닐까 싶다. 소위 ‘먹을 줄 아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다가 그 묘미를 알게 된 걸까? 그걸 안다면, ‘볼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도 그대로 따라 하면 될 일 아닐까?
나름대로 답을 내보자면, 다른 방법은 몰라도 확실한 것 하나가 있다. 많이 봐야 한다. 먹을 줄 아는 사람들의 비결이 대부분 많이 잘 먹어 본 경험치에서 나온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절대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런 말은 나도 하겠다!’ 싶겠지만, ‘많이’와 ‘본다’ 사이에 숨겨진 말들이 많다. 보통 많이 봐야 가능한 일이 아니고, 눈이 떠져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써야 한다. 실물이든 사진이든 가리지 않고 봐야 한다. 볼 때도 그냥 봐서는 안 된다. 열심히 봐야 하고, 다 외워야 한다.
정말 가지고 싶었던 그림이 있었다. 새집에 갓 이사했을 즈음이라 ‘집 어디에 걸어야지’하고 달뜬 상상까지 했었다. 꼭 우리 집에 들이고 싶었기에 예상치 이상으로 예산도 여유 있게 잡았다. 그래서 무리 없이 내 것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아무래도 관심도가 낮은 한국 근대 동양화 작품이었고, 작가도 그렇게 유명하진 않았으니까.
화면의 절반에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부각시킨 파격적인 구도가 눈에 띄는 작품이다. 1922년, 백련 지운영(白蓮 池雲英, 1852-1935)이 71세 때 그린 그림이다. 고종 어사진(御寫眞)을 최초로 촬영한 한국인으로 유명한 바로 그 지운영이다. 백련은 소동파에 대해 남다른 관심이 있었던 것 같다. 삿갓을 쓰고 나막신을 신은 소동파의 모습을 그린 <동파입극도> 작품도 많이 남겼고, 소동파가 적벽에서 뱃놀이하는 광경을 담은 <적벽유도> 역시 여러 점 그렸다.
이 작품과 거의 유사한 작품이 한 점,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고, 국립중앙박물관 유리건판 사진 자료에도 오른쪽에 절벽을 두고 원경에 아스라이 산월을 그린 비슷한 작품들을 찾아볼 수 있다. 아마 전에 없던 과감하고 시원한 구도가 스스로도 만족스러웠던 것이 아닐까 싶다. 이 작품은 경매 시작가 200만 원, 높은 추정가 500만 원이었다. 백련 지운영의 작품 가격으로는 적당한 평가였으나, 백련의 작품 중에서는 수작으로 꼽을만해서 경합을 예상하긴 했다. 그래서 넉넉하게 높은 추정가 500만 원에서 조금 더 쓰면 무난히 낙찰받을 수 있겠다고 생각한 거다. 하지만 결과는 낙찰가 1,150만 원! 오버페이스로 600만 원, 700만 원, 열심히 따라가 보았지만, 뱁새는 용을 써봤자 뱁새일 뿐, 황새를 따라갈 수 없다는 걸 또 느꼈다. 뭐, 어차피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었다. 최종 낙찰자가 국립현대미술관이었으니.
이런 경험을 여러 번 하면, 어쩌면 아직도 섣부를지 몰라도, 스스로 제 안목에 대한 신뢰가 생긴다. 되팔아서 돈이 될 작품도 아닌데 누가 저렇게 따라오냐고 애먼 직원들한테 짜증을 내고 응찰 도중에 전화를 확 끊기도 했는데, 나중에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손꼽히는 컬렉터랑 붙었다는 걸 알게 될 때, 또, 차근차근 따라가고 있었는데 상대편이 이번처럼 국립현대미술관이나 국립중앙박물관이라는 걸 알고 중도에 포기할 때, 그림을 못 사서 서운하긴 해도 내심 뿌듯하고 기분이 좋다. 어쩌면 이젠 그 만족감마저 수집의 대상이 된 것 같다. 그림 모으기 취미를 끊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 어느 날, 옛날에 읽은 책의 한 페이지가 불현듯 떠올랐다. 야나기 무네요시(일본 미술평론가)의 글이다. 같이 한번 읽어보시면 좋겠다. 나는 어쨌든 그런 인물이 한번 되어보겠다고 마음먹었다. ‘돈으로 안 되는 게 있다면 돈이 부족해서가 아닐까 생각해 보라’는 어이없는 말이 받아들여지는 웃픈 세상이지만, 이 글을 보면, 글쎄. 돈이 없어 작품은 놓친다고 하더라도, ‘안목’이 있는 능력자가 무시당할 일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우리도 돈이 있으면 편하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돈이 있으면 있는 만큼 그 나름으로 최대한 돈을 움직여서 작품으로 보여줄 수 있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러나 가난한 자가 가슴에 억만금을 품는 꿈을 꿔본들 아무 소용이 없다. 뿐만 아니라 우리 입장에서는 ‘돈이 있어서 고가의 물품을 구입한다’는 것은 조금도 두려운 점이 없다. 그보다도 ‘돈도 없는 주제에 값싼 물건 중에서 그나마 쓸 만한 물건을 선별해 내는’ 능력 쪽이 더 무섭다. 그런 인물이 나타나 준다면, 그에게 경복하지 않을 수 없다. 대단한 상대라고 생각한다.
– 야나기 무네요시, 『수집이야기』, 「가난한 사람의 수집」(1943) 중에서
이보름 가나문화재단·가나아트 기획총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