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서울 구로동 구로기계공구상가의 모습. 물건을 실은 트럭이 쉴 새 없이 드나들었다.  안정훈 기자
21일 서울 구로동 구로기계공구상가의 모습. 물건을 실은 트럭이 쉴 새 없이 드나들었다. 안정훈 기자
21일 새벽 서울 구로동 구로기계공구상가에는 건자재와 철물을 실은 트럭 수십 대가 분주히 움직였다. 국내 최대 규모의 철물 도소매 상가인 이곳의 점포 수는 2019년 1920개에서 최근 2119개로 늘었다. 공석조 상가 조합장은 “구로공구상가는 수요에 맞춰 신제품을 출시할 수 있는 생태계가 강점”이라며 “오래 영업한 사장들은 수십억원대의 자산가가 된 사례도 많다”고 설명했다.

경기 불황으로 자영업이 침체한 가운데 철물점은 ‘나 홀로 호황’을 보인다. 유통기한이 없고 경기를 덜 타는 건자재, 공구 등을 다루는 데다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전기 설비와 욕실 수리 등 생활 서비스 수요는 더 늘었기 때문이다.

매년 느는 철물점 ‘나 홀로 호황’

"2000만원으로 年 2억 번다"…요즘 뜨는 '평생 직업'
21일 국세청의 ‘100대 생활업종 사업자 현황’에 따르면 지난 7월 말 기준 전국 철물점 수는 9107개로 지난해 같은 기간(9043개) 대비 64곳 증가했다. 철물점 수는 2020년 8786개에서 2021년 8880개, 2022년 8969개 등으로 매년 늘었다.

비교적 경기를 덜 타는 업종이란 점이 알려져 안정된 직업을 찾는 중장년층의 창업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서다. 철물점 평균 존속 연수는 15년10개월로 100대 주요 업종 평균(8년9개월)의 두 배에 육박한다. 업계 관계자는 “주택이 있는 곳이면 스위치, 전구, 문고리, 각종 공구 수요가 꾸준하다”고 설명했다.

국세청에 따르면 철물점의 2022년 평균 매출은 1억9313만원으로, 다른 100대 업종인 자동차 수리점(1억8700만원)이나 실내 스크린골프점(1억4700만원)보다 높았다. 종업원 없이 사장이 운영하는 철물점이 많은 데다 제품 마진율도 30~40%대에 달한 점이 주요 요인으로 분석된다.

과거 철물점은 초기 투자가 많이 필요한 대표적 업종으로 꼽혔다. 건자재, 공구 등의 구색을 갖춰야 해서다. 하지만 물류 시스템이 개선되고, 온라인 판매도 활발해지면서 창업 비용이 크게 낮아졌다. 충남 부여군에서 동네 철물점을 운영하다가 온라인 판매, 철물점 창업 상담 등을 해주는 신창수 춘봉이네 철물상 대표(51)는 “매달 15건 이상 창업 문의가 들어올 정도”라며 “평생직업을 갖고자 하는 50~60대가 2000만~3000만원으로도 창업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재고 관리 쉽고 ‘겸업’도 활발

철물상은 타일, 페인트 등 인테리어 용품부터 전기전선, 철사 같은 잡화까지 다루지 않는 게 없다. 대부분 유통기한이 없다시피 한 제품이다. 일부 수리 부속 및 희귀 공구 등은 시간이 지나면서 희소성에 가격이 크게 오를 때도 있다. 경기 남양주시의 철물상인 박모씨(52)는 “신제품이 생산되지 않아 구하기 어려운 물품은 마진율이 서너 배 뛰어 100%를 넘기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철물점 종사자는 평소엔 제품을 판매하고, 인테리어업과 각종 생활 속 출장 수리를 병행해 수입을 올린다.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출장 수리로 벌어들이는 수입 비중이 높아졌다. 과거엔 가정에서 자체 해결하던 문고리와 전구 교체, 비데 설치 등의 생활 서비스를 전문가에게 맡기는 사람이 늘어서다. 이 때문에 철물업에선 여전히 오프라인 매장이 중요하다. 서울에 사는 박모씨(48)는 “다이소에서도 철물을 팔지만, 철물점에선 꼭 필요한 물품을 바로 찾아주고 상담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철물업계도 최근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중국 e커머스 업체에서 국산보다 3분의 1 수준의 싼 가격에 주방 철물과 조명류, 공구 등을 판매하고 있어서다. 산업용재협회장을 지낸 송치영 소상공인연합회장은 “중국발 저가 공세를 넘어서려면 제품 경쟁력을 더 끌어올려야 한다”고 했다.

안정훈 기자 ajh632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