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2년10개월 만에 첫 ‘무죄’ 선고가 나왔다. 재판부는 공사비 규모로 중대재해법 적용 여부를 판단할 때 자재비 등을 제외한 계약서상 금액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판결했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구지방법원 영덕지원 김선역 판사는 지난 16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산업재해치사) 혐의로 기소된 건설업체 A사 대표 B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A사 소속 화물차 운전기사 C씨는 2022년 7월 경북 영덕군의 한 지방상수도 정비공사 현장에서 폐콘크리트 상차 작업 도중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다. 당시 C씨는 화물차의 시동을 켠 상태로 운전석을 이탈했고, 차량이 움직이면서 그를 덮쳤다. 검찰은 회사 대표인 B씨와 함께 현장소장 D씨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및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법원은 D씨에게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지만 B씨는 죄가 없다고 판단했다. 무죄 판결의 근거가 된 것은 사고가 발생한 사업장의 공사금액이었다. B씨는 공사금액이 50억원 미만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는데, 법원이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2022년 1월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은 시행 후 3년까지 ‘상시 근로자 50명 이상 또는 공사금액 50억원 이상 사업장’에만 적용하도록 한다.

실제 A사가 발주처인 한국수자원공사와 계약한 공사비는 42억2000만원이었다. 검찰은 “공사금액은 (발주처인 수자원공사 측이 구매해 조달한) ‘관급자재대’ 10억원까지 포함하는 게 타당하다”며 이렇게 되면 총 공사비가 52억여원에 달한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영세사업자의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준비기간을 충분히 두기 위해 유예기간을 두기로 한 입법 취지를 고려하면, 공사 금액은 1차적으로 당사자 사이의 계약금액을 기준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공사금액 산정 시 관급자재비를 포함한다는 규정이 없음에도 입법 목적을 앞세운 해석을 통해 처벌 대상을 확대함으로써 그 규제 목적을 달성하려는 것은 형사법상 엄격해석의 원칙, 죄형법정주의의 정신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이번 사건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1심 판결이 나온 27건 가운데 첫 번째 무죄 판결이다. 전체 사건 가운데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20건으로 가장 많았고, 벌금형은 2건이었다.

실형이 나온 사건은 총 4건으로, 최고 형량은 징역 2년이었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