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 일본에서 유학을 떠났다가 현지에서 취업해 일하고 있었어요. 당시 에어비앤비로 부업으로 운영하고 있었는데, 잘나가다 '민박법' 규제에 막혔죠. 애써 이뤄놓은 것들이 하루아침에 쓸모가 없어지자 우울감에 빠졌어요. 사업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오니 깊은 우울감에 빠졌죠. 사람과의 만남도 두렵고 싫었던 시기를 벗어나게 해준 것은 '모임'(소셜링) 이었죠. 누군가 저처럼 우울함에 빠진 이들에게 힘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저의 강점을 살려 '사케 모임'을 열게 됐죠. 다양한 사람들이 사케라는 주제도 이야기하면서 저도 자신감을 되찾았죠. 어느새 인기 모임도 됐고, 많으면 한 달에 400만원 부수입도 얻을 수 있게 됐습니다. (웃음)"
소셜링 플랫폼 '문토'에서 사케 모임을 운영하고 있는 '디자이너에리카 사케리카' 씨가 일본 전통주 니혼슈를 들어보이고 있다.
소셜링 플랫폼 '문토'에서 사케 모임을 운영하고 있는 '디자이너에리카 사케리카' 씨가 일본 전통주 니혼슈를 들어보이고 있다.
사케(酒)는 일본의 전통적인 발효주다. 일본에서는 사케를 '니혼슈(日本酒)'라고 부르며, 한국에서 흔히 '청주'라고도 불린다. 최근 한국에서도 일본 사케와 위스키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관세청 수출입 통계에 따르면 올해 1∼7월 일본 청주 수입액은 사상 최대인 1434만달러로 작년 동기(1388만달러)보다 3.3% 증가했다. 위스키와 함께 수입 금액은 물론 중량에서도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사케에 대한 스토리로 인기 모임에 오른 이가 있다. 소셜링 플랫폼 문토에서 호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디자이너에리카 사케리카'씨의 이야기다.

Q. 자기소개 먼저 부탁드립니다.
"사케 모임을 운영하는 '디자이너에리카 사케리카'(닉네임·33) 입니다. 저는 일본 유학 후 교토와 도쿄에서 마케터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근무했고, 현재는 서울에서 한일광고대행사 대표로 일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사무실을 업무공간뿐만 아니라 술을 즐기기 좋은 아지트로 꾸며놓고 저와 취향이 맞는 사람들을 모으는 호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Q. 어떻게 처음 호스트를 하시게 됐나요.
"일본에서 생활하면서 에어비앤비를 부업으로 운영했었어요. 그러다 2018년 6월부터 일명 '민박법'(주택숙박사업법·住宅宿泊事業法)이 시행되면서 규제가 심해졌죠. 결국 사업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10년 가까이 해외에 살다 와서 그런지 한국 사회에서 적응이 힘들었죠. 그러다 사람들의 모임을 여는 플랫폼을 알게 됐어요. 평소 관심이 많았던 ‘사케’를 주제로 사람들과 가치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모임을 열기로 결심했습니다. 마침 전 직장 동료가 위스키에 일가견이 있어 함께 의기투합해 첫 모임을 시작하게 됐죠. (웃음)"
'디자이너에리카 사케리카' 씨가 모임에서 즐겨 사용하고 있는 니혼슈들.
'디자이너에리카 사케리카' 씨가 모임에서 즐겨 사용하고 있는 니혼슈들.
Q. 호스트 일과를 소개해주세요
"평소에는 광고대행사 본업에 집중하고 있어요. 업무 외적인 시간에 모임을 준비하거나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죠. ‘사케 모임’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사케에 대한 스토리’인데요. ‘지적으로 마시고 진솔하게 교류하는 것’이 제 모임의 컨셉이기 때문에, 취하기 위한 알코올이 아닌 이해가 넓어지는 스토리를 마신다고 생각하며 준비하고 있습니다."

Q. 모임은 어떻게 준비하나요.
"파트너가 좋은 사케를 구해서 오고, 저는 콘텐츠 제작을 맡고 있어요. 사케에 대한 정보가 한국에는 많이 없어서 일본어로 된 자료들을 수집해서 한국어로 번역해야 합니다. 참여자분들이 사케를 어렵지 않게 즐길 수 있도록 양조장의 히스토리와 사케 이름의 뜻, 탄생비화 등을 자세하게 조사하여 제작하고 있습니다.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모임의 30분간은 제가 사케 기초 클래스와 본 콘텐츠를 진행하며 참여자분들의 교류를 돕고 파트너가 사케에 페어링할 음식들을 만들어 서빙합니다."
소셜링 플랫폼 '문토'에서 사케 모임을 운영하고 있는 '디자이너에리카 사케리카' 씨가 진행하고 있는 모임 모습.
소셜링 플랫폼 '문토'에서 사케 모임을 운영하고 있는 '디자이너에리카 사케리카' 씨가 진행하고 있는 모임 모습.
Q. 초기에 애로사항이 있었나요
" 아무래도 공간 대여와 운영 시간에서 고민이 있었습니다. 초기에는 취향이 잘 맞는 사람들과의 만남이 즐거워서 모임을 12시간이나 진행하기도 했는데요(웃음). 대신 건강이 안 좋아지더라고요(눈물). 현재는 본업과 모임 운영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무실을 구해서 공간 비용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모임을 지속해서 운영하기 위해 시간은 평균 5시간으로 조정하고 있죠."

Q. 월 매출은 어느 정도 발생하시나요
"지난 1년간의 매출은 약 1500만원이었습니다. 매달 2~4번 정도의 모임을 진행하고 있죠. 월 수익은 최대 약 400만원 정도입니다. 장점은 제 스케줄에 맞춰서 모임을 오픈하는 횟수만큼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점이죠. 사케, 안주, 세금 등을 제외하면 순수익이 될 것 같습니다."

Q. 초기 비용은 어느 정도 들었나요.
"초기 비용은 공간대관료와 인쇄비 정도 들었던 것 같습니다. 제 공간을 마련하기 전에는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대여해야 했고, 사케의 정보를 담은 자료를 게스트들에게 드리기 위한 인쇄비도 필요했습니다. 처음에는 적자였지만 점차 회복해서 3개월 후부터 순수익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Q. 본업에 지장을 주지 않나요.
"호스트로서 모임을 주도했던 경험이 본업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소상공인 대표님을 열 분 정도 모셔놓고 한국의 웹디자인과 일본 웹디자인의 차이 및 쇼핑몰 제작에 대한 강의를 진행했는데, 모임을 운영하면서 쌓인 능숙함 덕분에 더욱 수월하게 끝마칠 수 있었죠. 20대를 일본에서 보냈다 보니 귀국 후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는데, 플랫폼을 통해 좋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신감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웃음)"

Q. 마지막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인생에서 가장 우울했던 밑바닥으로 가라앉았던 시기에 모임을 알게 됐어요. 방황에 빠진 채 온종일 천장만 바라봤었죠. 그때 가장 나다운 것, 내가 잘하는 것, 사케에 대한 정보를 타인과 나누면서, 오히려 저라는 사람에 대해 잘 알게 됐죠. 앞으로 지금처럼 본업에도 충실하면서 틈틈이 사케의 대중화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웃음)"
평생직장이 사라진 시대, 여러 직업을 가지는 'N잡'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습니다. 경제적 자유를 찾는 '프로 N잡러'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엮은 책 <나는 회사 밖에서 월급보다 많이 법니다>는 서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면 기사를 놓치지 않고 받아볼 수 있습니다. 좋아요는 큰 힘이 됩니다.

방준식 기자 silv000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