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이 '채식주의자' 표지로 에곤 실레 그림 고른 이유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대표작 '채식주의자' 표지 15년간 장식한
에곤 실레의 '네 그루의 나무'
다음달 30일 전시 앞두고 재조명
에곤 실레의 '네 그루의 나무'
다음달 30일 전시 앞두고 재조명
스산한 하늘 아래, 낮게 뜬 해가 희미한 온기를 전하는 벌판에 나무 네 그루가 서 있다. 나뭇잎을 거의 떨구고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 한 그루가 유독 눈에 밟힌다. 스물여덟 살에 요절한 천재 화가 에곤 실레(1890~1918)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 그린 풍경화 ‘네 그루의 나무’다.
문화예술계 전반에 ‘한강 신드롬’이 거세게 이는 가운데, 소설가 한강(54)의 대표작 <채식주의자> 표지를 2007년부터 2022년까지 15년간 장식했던 이 그림도 함께 조명을 받고 있다. 해당 작품은 가로 141cm, 세로 110.5cm의 대형 풍경화로 현재 오스트리아 빈 벨베데레 궁전에 소장돼 있다.
그림은 책 표지 앞뒷면에 걸쳐 있다. 출판사 관계자는 “작가가 실레 작품을 직접 표지 이미지로 골랐다”며 “2022년 개정판을 내며 이옥토 작가의 사진으로 표지를 바꾸긴 했지만, 이 표지일 때 작품이 맨부커상을 받았던 만큼(2016년) 문학 애호가들에게는 ‘채식주의자’ 하면 여전히 떠오르는 이미지”라고 말했다. 한강이 실레의 그림을 선택한 이유는 뭘까. 실레의 삶과 작품세계 전반을 알면 그 이유를 추측해볼 수 있다. 실레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작가다. 강렬한 선으로 고독이나 욕망 등 청춘의 감정들을 표현해 ‘청춘의 아이콘’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젊은 나이에 요절한 탓에 화가로서 활동한 경력은 10년 남짓에 불과하지만, 그 짧은 기간 동안 누구보다도 강렬하고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이룩했다는 평가다. 사후 100년이 지난 그가 지금도 전 세계인의 열렬한 사랑을 받는 이유다.
실레의 작품 중 대중적으로 유명한 건 대표작인 ‘꽈리 열매가 있는 자화상’을 비롯한 자화상과 초상화 작품들. 하지만 눈 밝은 이들은 그의 식물 그림과 풍경화에도 강한 끌림을 느낀다. 자연을 그릴 때도 실레는 자신만의 철학과 화법을 담았다. 그는 1913년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적었다.
“자연을 그대로 베끼는 데생은 아무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한 영혼의 울림을 듣고, 우수(憂愁)의 느낌을 그리고 싶습니다.”
그가 1912년작 ‘시들어 버린 해바라기’에서 꽃을 앙상한 노인처럼, 1911년작 ‘가을 나무 1’에서는 고통받는 인간을 연상시키는 형태로 나뭇가지들을 그린 이유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그림 속 나무들은 소설의 주인공 영혜의 변화를 비추는 상징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미술사학자인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한강이 악뮤(AKMU)의 노래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를 듣고 눈물을 흘렸던 것처럼, 실레가 그린 ‘네 그루의 나무’가 담고 있는 정서적인 고통과 시적인 서정성에 공감한 것으로 보인다”며 “작중 영혜는 채식을 하며 점차 나무처럼 육체와 영혼이 말라간 끝에 나무 그 자체가 되려고 하는데, 그 모습을 연상시키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간의 근원적인 고독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한강의 소설과 실레의 그림은 공통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실레의 마음을 울리는 그림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전시가 다음달 30일부터 시작된다.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개막하는 ‘비엔나 1900:꿈꾸는 예술가들’이다. 자화상 등 대표작은 물론 가을 나무나 마을의 모습을 비롯해 실레의 다양한 풍경화들이 나와 있다. 전시는 내년 3월 3일까지. 성수영/신연수 기자 syoung@hankyung.com
문화예술계 전반에 ‘한강 신드롬’이 거세게 이는 가운데, 소설가 한강(54)의 대표작 <채식주의자> 표지를 2007년부터 2022년까지 15년간 장식했던 이 그림도 함께 조명을 받고 있다. 해당 작품은 가로 141cm, 세로 110.5cm의 대형 풍경화로 현재 오스트리아 빈 벨베데레 궁전에 소장돼 있다.
그림은 책 표지 앞뒷면에 걸쳐 있다. 출판사 관계자는 “작가가 실레 작품을 직접 표지 이미지로 골랐다”며 “2022년 개정판을 내며 이옥토 작가의 사진으로 표지를 바꾸긴 했지만, 이 표지일 때 작품이 맨부커상을 받았던 만큼(2016년) 문학 애호가들에게는 ‘채식주의자’ 하면 여전히 떠오르는 이미지”라고 말했다. 한강이 실레의 그림을 선택한 이유는 뭘까. 실레의 삶과 작품세계 전반을 알면 그 이유를 추측해볼 수 있다. 실레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작가다. 강렬한 선으로 고독이나 욕망 등 청춘의 감정들을 표현해 ‘청춘의 아이콘’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젊은 나이에 요절한 탓에 화가로서 활동한 경력은 10년 남짓에 불과하지만, 그 짧은 기간 동안 누구보다도 강렬하고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이룩했다는 평가다. 사후 100년이 지난 그가 지금도 전 세계인의 열렬한 사랑을 받는 이유다.
실레의 작품 중 대중적으로 유명한 건 대표작인 ‘꽈리 열매가 있는 자화상’을 비롯한 자화상과 초상화 작품들. 하지만 눈 밝은 이들은 그의 식물 그림과 풍경화에도 강한 끌림을 느낀다. 자연을 그릴 때도 실레는 자신만의 철학과 화법을 담았다. 그는 1913년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적었다.
“자연을 그대로 베끼는 데생은 아무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한 영혼의 울림을 듣고, 우수(憂愁)의 느낌을 그리고 싶습니다.”
그가 1912년작 ‘시들어 버린 해바라기’에서 꽃을 앙상한 노인처럼, 1911년작 ‘가을 나무 1’에서는 고통받는 인간을 연상시키는 형태로 나뭇가지들을 그린 이유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그림 속 나무들은 소설의 주인공 영혜의 변화를 비추는 상징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미술사학자인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한강이 악뮤(AKMU)의 노래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를 듣고 눈물을 흘렸던 것처럼, 실레가 그린 ‘네 그루의 나무’가 담고 있는 정서적인 고통과 시적인 서정성에 공감한 것으로 보인다”며 “작중 영혜는 채식을 하며 점차 나무처럼 육체와 영혼이 말라간 끝에 나무 그 자체가 되려고 하는데, 그 모습을 연상시키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간의 근원적인 고독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한강의 소설과 실레의 그림은 공통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실레의 마음을 울리는 그림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전시가 다음달 30일부터 시작된다.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개막하는 ‘비엔나 1900:꿈꾸는 예술가들’이다. 자화상 등 대표작은 물론 가을 나무나 마을의 모습을 비롯해 실레의 다양한 풍경화들이 나와 있다. 전시는 내년 3월 3일까지. 성수영/신연수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