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남자들이 사라진다면… 연극 ‘지상의 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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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김상우의 아주 사적인 연극일기
극단 돌파구 <지상의 여자들>
극단 돌파구 <지상의 여자들>
어느 날 갑자기 남자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필리핀에서 온 신부에게 손찌검하던 남자가 가장 먼저 사라졌다. 그 후로도 가족에게 윽박지르고 화를 참지 못하는 등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는 남자들이 주로 사라진다. 남자의 몸이 하늘로 붕 뜨더니 점점 하얀색 빛으로 뒤덮이다 갑자기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다. 여자들만 남은 그 도시 ‘구주’는 어떻게 됐을까?
박문영 작가의 SF소설 ‘지상의 여자들’을 전인철 연출과 극단 돌파구가 연극으로 만들어 무대에 올렸다. 이 극단의 연극 ‘키리에’는 개인적으로 지난해 가장 감명 깊게 본 작품이다. 특이하게도 집을 의인화하여 주인공을 맡긴 ‘키리에’는 그 해 제60회 동아연극상 작품상, 연기상, 신인연기상 등을 휩쓸었다.
데이트 폭력과 살해, 묻지마살인 등 최근 여성을 대상으로 한 남성의 범죄가 부쩍 많아졌다. 이유 없이 힘 약한 여성을 대상으로 한 남성의 범행 기사를 접하면 나도 저런 남자들은 사회에서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최근 우리나라는 정치적 성향을 두고 세대 갈등 못지않게 성별 갈등이 첨예하기도 하다. 온라인 공간에서도 남성과 여성이 자주 서로를 비판하고 공격한다. 그런데 나쁜 남자들이 사라진다면 남겨진 여자들은 행복해질까?
일견 구주에서는 그래 보인다. 들들 볶고 때리던 남자들이 없어지자 여자들은 강가에 모여 함께 수영하고 즐겁게 얘기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남자 따위는 생각나지도 않는다. 그런데 그중에는 사라진 남편과 아버지를 기다리는 여자들도 있다. 남자를 기다리지 않는 여자들은 그녀들을 욕하고 무시한다. 배신자 딱지를 붙이고 조롱하기도 한다. 개중에는 아직 사라지지 않은 남자와 여자 커플도 있다. 이들은 더한 배척을 받는다. "어이~남자 녀석, Fuck You!" 극단 돌파구의 이전 작품 ‘키리에’, ‘고목’ 등에서도 아무 장치 없는 무대를 선보였던 박상봉 무대 디자이너는 이번에도 온통 회색빛 벽만을 세워두었다. 아무것도 없는 무대이다 보니 오히려 무엇이든 될 수 있기도 하다. 객석을 통해 동시에 입장한 배우들은 제각기 일인다역을 맡아 쉴 새 없이 여러 인물, 심지어 개, 물고기, 돌 등을 연기하기도 하는데 무대는 그에 따라 물속이 되기도 하고 우주가 되기도 한다. 전인철 연출의 무대는 늘 관객의 상상을 자유롭게 확장한다. ‘지상의 여자들’에서는 배우들이 중요한 국면마다 벽에 낙서를 한다. 우스꽝스럽게 쓰인 낙서 문구는 하나의 화두가 되어 관객의 뇌리에 쉽게 박힌다. 여러 주제가 얽혀 다소 복잡할 수 있는 극을 정리해 주는 역할을 한다.
성연은 남은 여자들끼리 편이 나뉘고, 그 안에서 또 소수를 억압하는 상황이 되자 참았던 목소리를 낸다. 이러면 우리가 그들(남자)과 다른 것이 무엇이냐고. 여자가 여자를 폭력적으로 대한다면 다음엔 그녀들이 사라질 것이고, 나중에는 동물을 폭력적으로 다루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하늘로 사라져버릴 것이라고. 사람들은 성연을 비아냥댄다. “저 여자는 아직도 남자를 못 잊는구먼.”
연극 ‘지상의 여자들’은 ‘폭력’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이 사회에서 그 혐의는 대개 남자에게 있지만 그것은 성별의 문제는 아니다. 약자라고 무조건 선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피해자 집단에서도 비주류를 용인하지 않고 폭력적으로 대하는 상황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사람을 가해자와 피해자, 선악의 이분법으로만 구분하는 것은 너무 단순할 뿐만 아니라 그것 자체가 폭력적일 수도 있다. 성연과 함께 이 사태가 달갑지만은 않은 선미는 친구 윤에게 말한다. “미워할 사람을 미워하는 건 너무 쉬워. 사람이 가장 빨리, 잘 할 수 있는 일이니까.” 윤은 동의하지 않고 반대의 낙서를 한다. “사람을 미워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하지만 나는 선미에게 동의한다. 미운 사람을 미워하고 하다못해 마음속으로 응징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다. 나도 하루에 몇 번씩이나 한다. 정말 어려운 것은 미움 너머에 세워야 할 포용과 조화의 마음이다. 모든 종류의 폭력에 대한 거부 선언이며, 나와 남을 함께 사랑하는 것이다. 쉽지 않아도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방향은 그쪽이다.
‘지상의 여자들’은 SF소설의 설정을 통해 남자와 여자, 주류와 비주류, 인간과 동물 등의 경계를 묘사하며 환경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제를 제기하지만, 무엇이 가장 중요하다고 명확하게 강조하진 않는다. 한 가지 주제에 천착하는 대신 여러 문제를 건드리다 보니 다소 산만하고 수박 겉핥기식의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관객은 어느 쪽에도 관성적으로 속하지 않고 본인이 숙고하고 결심한 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성연을 보며 많은 것을 느끼게 된다. 우리도 늘 생각하고 고민해야 한다. 나는, 혹은 내가 속해 있는 우리는 지금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을 두둔하고 있진 않은지. 그 ‘우리’는 남자일 수도, 여자일 수도 있고 사람일 수도 있다.
데이트 폭력과 살해, 묻지마살인 등 최근 여성을 대상으로 한 남성의 범죄가 부쩍 많아졌다. 이유 없이 힘 약한 여성을 대상으로 한 남성의 범행 기사를 접하면 나도 저런 남자들은 사회에서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최근 우리나라는 정치적 성향을 두고 세대 갈등 못지않게 성별 갈등이 첨예하기도 하다. 온라인 공간에서도 남성과 여성이 자주 서로를 비판하고 공격한다. 그런데 나쁜 남자들이 사라진다면 남겨진 여자들은 행복해질까?
일견 구주에서는 그래 보인다. 들들 볶고 때리던 남자들이 없어지자 여자들은 강가에 모여 함께 수영하고 즐겁게 얘기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남자 따위는 생각나지도 않는다. 그런데 그중에는 사라진 남편과 아버지를 기다리는 여자들도 있다. 남자를 기다리지 않는 여자들은 그녀들을 욕하고 무시한다. 배신자 딱지를 붙이고 조롱하기도 한다. 개중에는 아직 사라지지 않은 남자와 여자 커플도 있다. 이들은 더한 배척을 받는다. "어이~남자 녀석, Fuck You!" 극단 돌파구의 이전 작품 ‘키리에’, ‘고목’ 등에서도 아무 장치 없는 무대를 선보였던 박상봉 무대 디자이너는 이번에도 온통 회색빛 벽만을 세워두었다. 아무것도 없는 무대이다 보니 오히려 무엇이든 될 수 있기도 하다. 객석을 통해 동시에 입장한 배우들은 제각기 일인다역을 맡아 쉴 새 없이 여러 인물, 심지어 개, 물고기, 돌 등을 연기하기도 하는데 무대는 그에 따라 물속이 되기도 하고 우주가 되기도 한다. 전인철 연출의 무대는 늘 관객의 상상을 자유롭게 확장한다. ‘지상의 여자들’에서는 배우들이 중요한 국면마다 벽에 낙서를 한다. 우스꽝스럽게 쓰인 낙서 문구는 하나의 화두가 되어 관객의 뇌리에 쉽게 박힌다. 여러 주제가 얽혀 다소 복잡할 수 있는 극을 정리해 주는 역할을 한다.
성연은 남은 여자들끼리 편이 나뉘고, 그 안에서 또 소수를 억압하는 상황이 되자 참았던 목소리를 낸다. 이러면 우리가 그들(남자)과 다른 것이 무엇이냐고. 여자가 여자를 폭력적으로 대한다면 다음엔 그녀들이 사라질 것이고, 나중에는 동물을 폭력적으로 다루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하늘로 사라져버릴 것이라고. 사람들은 성연을 비아냥댄다. “저 여자는 아직도 남자를 못 잊는구먼.”
연극 ‘지상의 여자들’은 ‘폭력’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이 사회에서 그 혐의는 대개 남자에게 있지만 그것은 성별의 문제는 아니다. 약자라고 무조건 선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피해자 집단에서도 비주류를 용인하지 않고 폭력적으로 대하는 상황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사람을 가해자와 피해자, 선악의 이분법으로만 구분하는 것은 너무 단순할 뿐만 아니라 그것 자체가 폭력적일 수도 있다. 성연과 함께 이 사태가 달갑지만은 않은 선미는 친구 윤에게 말한다. “미워할 사람을 미워하는 건 너무 쉬워. 사람이 가장 빨리, 잘 할 수 있는 일이니까.” 윤은 동의하지 않고 반대의 낙서를 한다. “사람을 미워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하지만 나는 선미에게 동의한다. 미운 사람을 미워하고 하다못해 마음속으로 응징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다. 나도 하루에 몇 번씩이나 한다. 정말 어려운 것은 미움 너머에 세워야 할 포용과 조화의 마음이다. 모든 종류의 폭력에 대한 거부 선언이며, 나와 남을 함께 사랑하는 것이다. 쉽지 않아도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방향은 그쪽이다.
‘지상의 여자들’은 SF소설의 설정을 통해 남자와 여자, 주류와 비주류, 인간과 동물 등의 경계를 묘사하며 환경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제를 제기하지만, 무엇이 가장 중요하다고 명확하게 강조하진 않는다. 한 가지 주제에 천착하는 대신 여러 문제를 건드리다 보니 다소 산만하고 수박 겉핥기식의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관객은 어느 쪽에도 관성적으로 속하지 않고 본인이 숙고하고 결심한 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성연을 보며 많은 것을 느끼게 된다. 우리도 늘 생각하고 고민해야 한다. 나는, 혹은 내가 속해 있는 우리는 지금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을 두둔하고 있진 않은지. 그 ‘우리’는 남자일 수도, 여자일 수도 있고 사람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