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당진시 시청사거리의 차량 신호등 보조장치(빨간 점선 원 안).  당진시 제공
충남 당진시 시청사거리의 차량 신호등 보조장치(빨간 점선 원 안). 당진시 제공
지방 소도시들이 교차로에 차량 신호등 보조장치인 ‘한 줄 신호봉’을 앞다퉈 설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신호등을 긴 LED등으로 이어 운전자 인식률을 높이겠다는 취지지만 개당 수천만원에 달해 예산 낭비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도 ‘한 줄 신호봉이 운전자의 주의를 분산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22일 경찰에 따르면 전북 김제시는 최근 신풍동 한 초등학교 앞 삼거리에 차량 신호등 보조장치를 설치했다. 원형 3색 교통신호등을 지탱하는 깃대에 7m 길이의 가로 LED 장치를 덧대는 방식이다. 이 보조장치는 운전자가 안개 폭우 등으로 정면을 보기 어렵거나 차체가 높은 버스·화물차를 맞닥뜨렸을 때 시야를 확보하도록 돕는다는 취지로 지난 8월 강원 삼척시가 처음 도입했다. 아이디어를 지역 LED등 생산업체가 내고 지방자치단체가 받아들인 사례다.

이후 이 보조장치가 전국에 알려지면서 다른 지자체도 도입을 서둘렀다. 충남 당진시와 김제시가 설치했고 다른 지자체도 설치를 문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신호봉 1개에 2200만원에 달하는 가격이다. 전국 차량 신호등 47만여 곳 중 10%만 설치해도 1조원이 넘게 들고 유지·관리비는 별도다. 신호봉이 설치된 세 곳은 평소 통행량이 많은 지역도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제시 관계자는 “미관상 뛰어나다는 의견이 많아 내년에 추가 설치를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무사항이 아닌 신호 보조장치를 다는 데 지자체가 앞장서는 건 예산 낭비이자 포퓰리즘 행정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경찰 교통 전문가들은 한 줄 신호봉이 오히려 교통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삼거리 이상 교차로는 야간에 LED등이 교차로에 진입하는 다른 차량 운전자의 시야를 방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호봉 설치를 둘러싼 논란은 개당 1000만원을 넘는 보행자용 ‘바닥 신호등’과 비슷한 면이 있다. 2019년 3월 도입된 바닥 신호등은 스마트폰을 보고 걷는 보행자 문제를 해결한다는 취지로 전국 지자체가 경쟁적으로 설치했다. 당시에도 경찰은 “보행자에게도 주의 의무가 있는데 마구 설치하는 건 문제”라는 의견이 나왔다. 바닥 신호등은 5년간 약 2200억원이 투입돼 전국에 1만1000여 개 설치됐다.

경찰청 관계자는 “신호등 보조장치를 설치할 땐 시·도경찰청 교통안전심의위원회 의결을 거쳐야 한다”며 “면밀하게 효과를 검토한 후 설치를 승인하겠다”고 말했다.

박시온/조철오 기자 ushire90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