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이 22일 브릭스(BRICS) 정상회의 참석차 러시아 연방 타타르스탄공화국 카잔을 방문한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이 22일 브릭스(BRICS) 정상회의 참석차 러시아 연방 타타르스탄공화국 카잔을 방문한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러시아·중국 주도의 신흥 경제국 협의체인 브릭스(BRICS)가 미국 달러화가 지배하는 현행 국제 금융 결제망의 대안을 모색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암호화폐 같은 디지털 통화를 사용하는 방안을 제안할 방침이다. 브릭스 회원국은 ‘개방적·포용적 글로벌 경제’를 내세워 ‘탈달러화’를 추진해 미국 및 유럽이 주도하는 무역 질서와 경제 제재에 맞대응한다는 전략이다. 22일부터 오는 24일까지 러시아 타타르스탄공화국 카잔에서 열리는 브릭스 회의에 36개국과 6개 국제기구가 참여하며, 참가국 중 22개국은 국가원수가 참석했다. 푸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등이 양자 회담도 할 예정이다.

스위프트 결제망 대체 시도

달러패권 흔드는 푸틴 "브릭스, 암호화폐 쓰자"
22일 타스통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동료 국가에 핵심 투자에서 디지털 통화를 사용하는 진지한 제안을 할 것”이라며 “이미 중국, 인도와 협의하고 있고 브라질과도 방금 협의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암호화폐 등 디지털 통화를 사용한 지급·결제 인프라 구축의 첫 단계를 논의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브릭스 회원국은 지난해 정상회의에서 달러화 사용을 줄이는 등의 원칙과 국제통화기금(IMF)을 대체할 자체 기구를 설립하는 데 합의했다.

현재 글로벌 무역과 투자 지급·결제는 달러, 유로 등 서방국 통화를 중심으로 구축된 스위프트(SWIFT) 결제망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200개국의 1만1000여 개 기업이 연결돼 있어 미국의 지구 반대편에 있는 두 이웃 국가가 거래할 때도 인터넷망으로 미국을 거치도록 만들어졌다. 러시아는 2022년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달러 결제망에서 퇴출돼 밀수출과 위안화 결제 등으로 버티고 있다. 브릭스의 암호화폐 플랫폼이 구축되면 스위프트를 우회할 수 있다.

중국도 적극 동참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왕유밍 중국 싱크탱크 국제문제연구원 소장도 관영 매체 글로벌타임스를 통해 “정상회의에서 대안적 결제 시스템이 논의될 가능성이 있다”며 “특정 서방국가가 자주 이용하는 ‘결제 메커니즘 정치화·무기화’에 대항해 기존 국제 금융 틀을 보완·강화하는 게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다음달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 중국 등이 거센 압력을 받고,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높은 다른 브릭스 회원국의 위기감도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美·러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인도

다만 인도가 탈달러화에 적극적으로 동의할지는 미지수다. 서방 진영과 러시아·중국 간 갈등에 중립적 태도를 취했을 때 얻는 반사이익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블룸버그통신이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유엔총회 결의안 투표 이력을 토대로 각국을 분류해 분석한 결과 미국이 주도하는 친서방 블록과 러시아·중국이 이끄는 친러시아 블록 사이에 이른바 ‘신중립국’이 최소 101개국에 달했다. 이들은 양쪽 진영에서 투자를 유치하고 있다. 대표적인 국가가 인도와 멕시코다. 인도는 서방의 투자를 받아 중국을 밀어내고 글로벌 제조 기지로 올라서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반대로 멕시코는 서방의 보호무역 조치를 피하기 위한 중국 기업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있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자료에 따르면 신중립국이 받은 외국인 신규 직접투자는 2010~2019년 평균을 100으로 봤을 때 2020년엔 65였다가 2023년엔 세 배 수준인 192로 뛰었다. 친서방 블록 국가 투자는 같은 기간 102에서 192로 약 두 배가 됐고, 친러시아 블록은 53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2022년 26으로 떨어졌다가 이듬해 64로 올라갔다. 블룸버그통신은 “지정학적 요인이 투자와 교역 흐름을 이끌면서 경제 형태를 바꾸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