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사들이 한강 대신 노벨상 받는다고 베팅했던 작가의 첫 한국어 번역 소설 [서평]
"나의 책은 주로 풍경에 관한 것이다. 내게 세계는 주로 풍경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영어권 작가'(뉴욕타임스)로 불리는 제럴드 머네인은 이같이 말했다. 머네인은 올해 노벨문학상 발표를 앞두고 도박 사이트에서 유력한 후보로 꼽힌 작가다. 그의 대표작 <평원>(1982)이 국내에 처음으로 번역 출간됐다. 그의 책이 한국어로 번역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소설은 한 젊은 영화 제작자가 서술자로 등장한다. 그는 영화를 찍기 위해 호주 대륙 해안가 지역에서 머나먼 내륙 평원의 한 마을을 찾은 적이 있다. 20년 전 이 평원에서 머무른 경험을 회상하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화자는 마을 호텔의 술집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그곳에 사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평원의 부유한 지주 가문들은 광활한 영지를 바탕으로 풍요롭고 독특한 문화를 보존해왔다. 자신들의 역사와 땅에 집착하며 각종 장인과 작가, 역사가 등을 후원하는 방식으로 그들을 둘러싼 자연을 세밀하게 기록해왔다. 화자도 한 지주의 후원을 받아 영화 준비에 돌입한다.

"예술 형식 중 오로지 영화만이 꿈의 머나먼 지평선이 실제로 거주할 수 있는 지역임을 보여줄 수 있다고, 또 동시에 익숙한 풍경을 오로지 꿈에나 어울릴 모호한 풍경으로 바꿀 수 있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거기에서 더 나아가 영화는 평원인의 모순된 충동을 만족시킬 수 있을 유일한 예술 형식이라고 주장했다."(71쪽)
도박사들이 한강 대신 노벨상 받는다고 베팅했던 작가의 첫 한국어 번역 소설 [서평]
평원을 프레임 안에 완벽히 담아낼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에 넘쳤던 화자는, 시간이 흐를수록 그것의 깊이를 온전히 포착하는 것은 불가능하단 사실을 깨닫는다.

"단순한 이미지 하나로 표현될 수 있을 평원이 어딘가 있긴 한 건가? 어떤 어휘가 혹은 어떤 카메라가 내가 지난 몇 주 동안 그리도 자주 들었던 그 평원 안의 평원을 드러낼 수 있을까?" (75쪽)

평원을 카메라 렌즈에 담으려다 그 광활함에 압도당하는 작품 속 화자의 모습은 작가 본인과도 닮아 있다. 머네인은 책장에 평원의 풍경 그 자체를 묘사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평원을 배경으로 발을 딛고 있는 인물의 내면에 천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독자의 해석과 사색의 방향에 따라 평원의 풍경은 다르게 펼쳐진다. 머네인은 작품 속에서 "풍경을 찾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 따로 있다고 말한다. "한 사람을 타인과 구별되게 하는 것은 그가 마침내 자신을 발견한 풍경"이란 것이다.

평원이란 공간적 배경 속에서 미묘하게 전개되는 서사의 움직임이 아름답고 완결성있게 느껴진다. 작가의 고향인 호주에서도 호불호가 갈릴 만큼 독특한 형식과 내용의 소설이지만, 문학적 경험의 확장을 위해 일독을 권할만한 작품이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