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별 후 30년 혼자였는데"…어르신판 '나는 솔로'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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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솔로' 어르신 커플 매칭 행사
34명의 참가자들 대화 나누며 '인연 찾기'
최종 커플 6쌍 탄생…"첫눈에 반했다"
34명의 참가자들 대화 나누며 '인연 찾기'
최종 커플 6쌍 탄생…"첫눈에 반했다"
"30년 전에 아내를 잃고 지금까지 혼자 살아왔는데 외로워도 어디 외롭다고 말도 안 하고 다녔어. 그런데 복지관에서 좋은 행사가 있다고 다녀와 보라고 그러더라고. 이번 기회에 좋은 인연 한번 찾아보려고."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운현궁 앞마당에 남성 16명, 여성 18명 총 34명의 어르신이 모였다. 구청에서 개최한 '어르신 솔로 프로젝트'에 참가한 65세 이상 '솔로' 참가자들이다. 이날 만난 70대 조모 씨는 "미팅하러 나왔다 하면 좀 부끄럽다. 그냥 이 나이대 좋은 친구를 사귀러 나왔다"며 멋쩍게 웃었다.
고령화 시대에 많은 노인들이 외로움을 호소하고 있는 가운데 혼자 거주하는 이들을 위한 어르신판 '나는 솔로' 행사가 열렸다. 인기 커플 매칭 예능 프로그램과 유사한 구성으로, 행사에 참여한 노인들은 "젊은 사람만 미팅하란 법 있냐"고 입을 모았다. 행사에 앞서 마이크를 잡은 정문헌 종로구청장은 "요즘은 '99세까지 88하게 살다가 2~3일 만에 벌떡 일어선다'는 '9988231' 시대다. 삶의 질도 올라가고, 어르신 분들도 즐기셔야 하지 않겠나"라면서 "오늘 좋은 이성 친구 만드셔서 청춘을 불살라보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가 진행된 운현궁 앞마당은 추운 날씨에도 좋은 인연을 찾기 위해 모인 어르신들의 긴장과 설렘으로 가득했다. 행사의 첫 순서는 경직된 분위기를 풀기 위한 '자기소개'였다.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남성 참가자들이 쭈뼛거리며 앞으로 나갔다. 이곳에서 참가자들은 이름이 아닌 '닉네임'으로 불렸다. 닉네임이 '끔이'인 참가자는 자신을 "워낙 깔끔 떤다고 해서 별명이 '깔끔이'다. 여기에서 '깔'자를 뗐다"고 소개했다. 그는 은회색 정장 외투에 멋들어진 모자도 써 눈길을 끌었다. 사회자가 "닉네임대로 좋은 냄새가 나신다"고 하자 테이블 곳곳에선 웃음이 터져 나왔다.
38세에 사별했다는 한 60대 여성 참가자는 "인생이 너무 억울해서 죽을 때까지 150개국을 여행해보자는 목표를 세웠다. 지금 30개국 정도 다녀왔는데, 앞으로 목표를 같이 이룰 '여행 파트너'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신 비용은 각자 '더치페이'"라고 덧붙였다. 참가자들은 이어진 '자유 대화' 순서에서 본격적으로 행사를 즐기기 시작했다. 이들은 현장에서 임의로 배정된 숫자에 따라 1~5번 테이블에 맞춰 앉아 대화를 이어 나갔다. 시간이 지나면 남성 참가자가 다음 테이블로 이동하는 식이었다. 처음엔 다소 어색해하던 어르신들은 이내 편안한 모습으로 적극적으로 대화를 나눴다.
70대 참가자 박모 씨는 건너편에 앉은 참가자와 시종일관 웃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는 "세 번째 자리 이동인데 지금 앉은 분이 가장 대화가 잘 통하는 것 같다"며 "우리 둘 다 산악회 활동에 푹 빠져 있는 게 비슷하더라. 공통점이 있으니 대화하기 편하다"고 말했다.
인연을 적극적으로 찾으려는 참가자들도 눈에 띄었다. '나인'이라는 닉네임의 참가자는 "경상도 남자로서 매력을 보여주고 싶은데 (대화) 시간이 너무 짧다"며 "여성분이 사랑을 먼저 주면, 나도 몇 배로 되돌려 줄 수 있다. 일단 기회를 좀 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모든 대화가 다 자연스럽게 진행된 것은 아니다. 80대 황모 씨는 "워낙 이 동네에 오래 살았다 보니 참가자 중 반은 아는 사람"이라고 불평했다. 그는 "알던 사람들이 여기서 목소리에 힘주고 말하는 모습이 웃기고 어색하다"며 "그래도 행사 끝까지 자리를 지키려고 한다"고 전했다.
자리를 이동하는 중 틈틈이 진행된 레크에이션에 대한 호응도 높았다. 특히 각 테이블에서 가장 춤을 잘 추는 여성 참가자들을 앞으로 불러 벌인 '댄스 배틀'에 현장 진행 요원들마저 폭소를 터뜨렸다. 해당 참가자들은 가수 김연경의 '아모르 파티'에 맞춰 다양한 '막춤'을 보여줬다.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일대일 대화' 시간. 현장엔 두 명만 앉을 수 있도록 별도 테이블이 마련됐다. 먼저 여성 참가자가 자리에 앉아있으면 남성 참가자 가장 마음에 들었거나, 대화를 더 이어 나가고 싶은 이성의 자리에 앉았다. 이 방식으로 총 세 번 자리를 바꾼다. 앞선 박모 씨 자리엔 그와 가장 대화가 잘 통했다는 해당 남성 참가자가 자연스럽게 착석했다. 박씨는 기자가 다가가자 "대화 시간도 몇 분 안 되는데 방해하지 말아 달라"며 저리 가라는 손짓을 보이기도 했다. 곳곳에 있는 스피커에서 클래식 선율이 흐르는 분위기 속 박씨는 상대방과 오순도순 대화를 이어 나갔다.
대화 시간이 끝난 후 참가자들은 배부된 종이에 이날 가장 마음에 들었던 상대방의 닉네임 세 개를 적었다. 종이를 비교해 서로를 지목했을 경우 커플이 매칭된다.
이날 매칭된 커플은 총 6쌍이었다. 사회자가 닉네임을 부를 때마다 곳곳에서 박수와 함성이 쏟아졌다. 닉네임 '장미'인 여성 참가자와 커플로 매칭된 참가자 '미남'은 사회자가 "첫눈에 반했나"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며 환한 미소를 보여줬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무조건 연애하라는 의미가 아닌 어르신들이 좋은 친구를 만나 외로움을 극복하길 바라는 마음에 기획한 행사"라며 "반응도 좋고, 매칭된 커플 수도 기대 이상이다. 올해 일회성으로 기획했지만, 내년 추가 행사를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성진우 한경닷컴 기자 politpeter@hankyung.com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운현궁 앞마당에 남성 16명, 여성 18명 총 34명의 어르신이 모였다. 구청에서 개최한 '어르신 솔로 프로젝트'에 참가한 65세 이상 '솔로' 참가자들이다. 이날 만난 70대 조모 씨는 "미팅하러 나왔다 하면 좀 부끄럽다. 그냥 이 나이대 좋은 친구를 사귀러 나왔다"며 멋쩍게 웃었다.
고령화 시대에 많은 노인들이 외로움을 호소하고 있는 가운데 혼자 거주하는 이들을 위한 어르신판 '나는 솔로' 행사가 열렸다. 인기 커플 매칭 예능 프로그램과 유사한 구성으로, 행사에 참여한 노인들은 "젊은 사람만 미팅하란 법 있냐"고 입을 모았다. 행사에 앞서 마이크를 잡은 정문헌 종로구청장은 "요즘은 '99세까지 88하게 살다가 2~3일 만에 벌떡 일어선다'는 '9988231' 시대다. 삶의 질도 올라가고, 어르신 분들도 즐기셔야 하지 않겠나"라면서 "오늘 좋은 이성 친구 만드셔서 청춘을 불살라보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가 진행된 운현궁 앞마당은 추운 날씨에도 좋은 인연을 찾기 위해 모인 어르신들의 긴장과 설렘으로 가득했다. 행사의 첫 순서는 경직된 분위기를 풀기 위한 '자기소개'였다.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남성 참가자들이 쭈뼛거리며 앞으로 나갔다. 이곳에서 참가자들은 이름이 아닌 '닉네임'으로 불렸다. 닉네임이 '끔이'인 참가자는 자신을 "워낙 깔끔 떤다고 해서 별명이 '깔끔이'다. 여기에서 '깔'자를 뗐다"고 소개했다. 그는 은회색 정장 외투에 멋들어진 모자도 써 눈길을 끌었다. 사회자가 "닉네임대로 좋은 냄새가 나신다"고 하자 테이블 곳곳에선 웃음이 터져 나왔다.
38세에 사별했다는 한 60대 여성 참가자는 "인생이 너무 억울해서 죽을 때까지 150개국을 여행해보자는 목표를 세웠다. 지금 30개국 정도 다녀왔는데, 앞으로 목표를 같이 이룰 '여행 파트너'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신 비용은 각자 '더치페이'"라고 덧붙였다. 참가자들은 이어진 '자유 대화' 순서에서 본격적으로 행사를 즐기기 시작했다. 이들은 현장에서 임의로 배정된 숫자에 따라 1~5번 테이블에 맞춰 앉아 대화를 이어 나갔다. 시간이 지나면 남성 참가자가 다음 테이블로 이동하는 식이었다. 처음엔 다소 어색해하던 어르신들은 이내 편안한 모습으로 적극적으로 대화를 나눴다.
70대 참가자 박모 씨는 건너편에 앉은 참가자와 시종일관 웃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는 "세 번째 자리 이동인데 지금 앉은 분이 가장 대화가 잘 통하는 것 같다"며 "우리 둘 다 산악회 활동에 푹 빠져 있는 게 비슷하더라. 공통점이 있으니 대화하기 편하다"고 말했다.
인연을 적극적으로 찾으려는 참가자들도 눈에 띄었다. '나인'이라는 닉네임의 참가자는 "경상도 남자로서 매력을 보여주고 싶은데 (대화) 시간이 너무 짧다"며 "여성분이 사랑을 먼저 주면, 나도 몇 배로 되돌려 줄 수 있다. 일단 기회를 좀 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모든 대화가 다 자연스럽게 진행된 것은 아니다. 80대 황모 씨는 "워낙 이 동네에 오래 살았다 보니 참가자 중 반은 아는 사람"이라고 불평했다. 그는 "알던 사람들이 여기서 목소리에 힘주고 말하는 모습이 웃기고 어색하다"며 "그래도 행사 끝까지 자리를 지키려고 한다"고 전했다.
자리를 이동하는 중 틈틈이 진행된 레크에이션에 대한 호응도 높았다. 특히 각 테이블에서 가장 춤을 잘 추는 여성 참가자들을 앞으로 불러 벌인 '댄스 배틀'에 현장 진행 요원들마저 폭소를 터뜨렸다. 해당 참가자들은 가수 김연경의 '아모르 파티'에 맞춰 다양한 '막춤'을 보여줬다.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일대일 대화' 시간. 현장엔 두 명만 앉을 수 있도록 별도 테이블이 마련됐다. 먼저 여성 참가자가 자리에 앉아있으면 남성 참가자 가장 마음에 들었거나, 대화를 더 이어 나가고 싶은 이성의 자리에 앉았다. 이 방식으로 총 세 번 자리를 바꾼다. 앞선 박모 씨 자리엔 그와 가장 대화가 잘 통했다는 해당 남성 참가자가 자연스럽게 착석했다. 박씨는 기자가 다가가자 "대화 시간도 몇 분 안 되는데 방해하지 말아 달라"며 저리 가라는 손짓을 보이기도 했다. 곳곳에 있는 스피커에서 클래식 선율이 흐르는 분위기 속 박씨는 상대방과 오순도순 대화를 이어 나갔다.
대화 시간이 끝난 후 참가자들은 배부된 종이에 이날 가장 마음에 들었던 상대방의 닉네임 세 개를 적었다. 종이를 비교해 서로를 지목했을 경우 커플이 매칭된다.
이날 매칭된 커플은 총 6쌍이었다. 사회자가 닉네임을 부를 때마다 곳곳에서 박수와 함성이 쏟아졌다. 닉네임 '장미'인 여성 참가자와 커플로 매칭된 참가자 '미남'은 사회자가 "첫눈에 반했나"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며 환한 미소를 보여줬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무조건 연애하라는 의미가 아닌 어르신들이 좋은 친구를 만나 외로움을 극복하길 바라는 마음에 기획한 행사"라며 "반응도 좋고, 매칭된 커플 수도 기대 이상이다. 올해 일회성으로 기획했지만, 내년 추가 행사를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성진우 한경닷컴 기자 politpe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