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우리는 서로의 버팀목이다
초등학교 6학년 봄 전교 어린이회장 선거 당일. 선생님의 갑작스러운 출마 요청에 당황한 채 단상에 올랐지만 결국 횡설수설하다가 내려왔다. 낙선은 당연했고, 엄마가 육성회장인 친구가 회장에 당선됐다. 선생님은 그 친구에겐 1주일 전부터 미리 준비하라고 일러줬다고 한다. 이 사건은 어린 마음에 깊은 상처로 남았다. 차별에 대한 서러움과 망신당했다는 부끄러움이었다. 오기가 생겼다.

매일 아침 개울가에 나가 큰 소리로 말하기 연습을 했다. 새벽 일찍 일어나 직접 쓴 원고를 외우고 반복해서 소리 내어 말했다. 그 결과 중학교에 입학해서는 학교 대표로 웅변대회에 참가했고, 횡성군 대표로 선발돼 강원 예선대회까지 출전했다. 다른 학생은 대부분 선생님이 써준 원고로 발표했지만, 나는 내가 직접 쓴 웅변 원고로 무대에 섰다. 이를 계기로 가난한 집 아이로 차별받은 상처가 자부심으로 바뀌었다.

무한 경쟁의 시대, 기울어진 세상에서 중심을 잡는 것은 쉽지 않다. 청소년기엔 더 그렇다. 나에겐 중학교 때 원장재단에서 받은 장학금이 든든한 버팀목이 돼줬다. 시골 중학생에게 그 장학금은 부족한 자존감을 받쳐주는 힘이었다.

세상이 기울어졌다고 주저앉아 탓하기만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세상이 우리에게 원하는 결과다. “이대로 세상에 지지 않겠다”는 마음이 삶의 중심 근육이 되고, 내면의 힘이 된다. 하지만 혼자만의 힘으로 중심을 잡는 건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에겐 주체적인 삶을 지지해 줄 버팀목이 필요하다.

그래서 고운세상코스메틱은 자립 준비 청년 지원 프로그램 ‘청자기’(청년들의 자립 이야기)를 후원하고 있다. 매년 약 2000명의 청년이 만 18세가 되면 보호시설을 떠나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청자기는 보호시설에서 성장한 청년들이 모여 만든 단체로, 사회에 홀로 설 동생들이 어려움 없이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발대식에서 만난 한 친구는 가정폭력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내 이야기를 듣고 희망을 찾았다고 했다. 고운세상은 그를 비롯한 열여섯 명의 청자기 청년에게 매달 장학금을 보내고 있다. 세상은 기울어져 있지만, 그렇다고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

버팀목은 청년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험한 세상을 온몸으로 부딪히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 기울어진 세상에서 각자도생을 위해 무한경쟁까지 벌인다면 결국 모두 중심을 잃고 쓰러지기 때문이다.

더 많은 인재가 어려운 환경이라는 강을 건널 수 있도록 우리 사회에 더 많은 다리가 생기길 바란다. 그리고 그 다리를 건너며 성장한 이들이 또 다른 이들의 버팀목이 되는 선순환이 이어지길 희망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버팀목이 돼주고, 든든한 다리가 돼주는 세상. 그것이 내가 그리고 고운세상이 꿈꾸는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