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와 포항, 강릉, 목포 등 지방 주요 도시의 아파트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이 80%를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 거래시장 침체가 이어지면서 전셋값보다 매매가격이 더 빠른 속도로 하락하고 있어서다. 통상 전세가율이 80%를 넘으면 ‘깡통전세’(전세금과 담보대출이 매매가를 웃도는 현상) 리스크가 있다고 본다. 비수도권 세입자의 주거 불안도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지방 전세가율 '껑충'…청주·포항 80% 웃돌아

○울진은 전세가율 90% 넘어

23일 한국부동산원 임대차시장 사이렌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아파트 전세가율이 80% 이상인 지역은 총 19곳으로 집계됐다. 최근 1년간 동일 단지의 매매·전세 실거래 데이터를 바탕으로 산출한 값이다. 전세가율이 10% 미만이거나 200% 이상인 ‘아웃라이어’(평균치에서 크게 벗어난 이상치)는 계산에서 제외했다. 19곳 중 경기 이천(81.1%)을 제외한 18곳이 비수도권 지역이었다. 전북 익산(84.9%)과 충북 청주 서원구(83.2%), 강원 강릉(82.1%), 전남 목포(82.0%), 경북 포항 남구(81.9%) 등 지방 거점 도시도 포함됐다. 경북 울진(90.8%)은 전세가율이 90%를 넘었다.

서울의 평균 전세가율은 57.9%에 불과하다. 용산구(45.9%), 강남구(46.5%) 등 서울 고가 지역과 비교하면 차이가 더 벌어진다. 일반적으로 전셋값은 사용가치를 바탕으로 형성되고, 매매가에는 미래가치가 반영되는 경향이 있다. 지방의 전세가율이 높은 건 해당 단지의 가격 상승 호재 등 미래가치 수준(분모)이 현재의 실거주가치(분자)와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실거주하기 불편하지만, 투자가치가 높다고 평가받는 재건축 아파트의 전세가율이 낮게 나타나는 것과 반대 구조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비수도권 아파트 매매가격은 10개월 연속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9월 기준 매매가 하락률(-0.06%)이 전세가 하락률(-0.01%)보다 크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비수도권에선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가 낮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매수 대비 전세 수요가 크고, 전세가율이 높은 수준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반면 서울 아파트는 지난달 기준 매매가(0.79% 상승)가 전세가(0.58% 상승)보다 더 크게 올라 대조를 이뤘다.

○전셋값>매매가 사례도

높은 전세가율은 자칫 임차인(세입자)의 전세보증금 미반환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방에선 아파트 ‘몸값’보다 전세보증금이 더 비싼 사례도 발견할 수 있다. 예컨대 목포 상동주공4단지 전용면적 38㎡는 이달 4600만원(5층)에 손바뀜했다. 반면 같은 면적 6층 물건은 지난 6월 보증금 4935만원에 전세 세입자를 들였다. 청주와 포항 등 대도시 10년 내 아파트 가운데에서도 ‘갭’(매매가와 전세가 차이) 크기가 1억원 미만인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전세가율이 80%라는 건 세입자가 담보가치를 뛰어넘는 수준의 보증금을 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비수도권 전세가율 평균이 올해 하반기 들어 조금씩 낮아지다가 8월 72.5%에서 지난달 72.8%로 반등 추세를 보인 것도 전세 사고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세가율이 올라가면 갭 투자가 늘어나 매매가를 끌어올리는 현상도 나타나곤 한다. 하지만 서울 강남권 등 선호 지역이 아니라 지방에서 이 같은 흐름은 보기 힘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갭 투자는 기본적으로 시세차익을 노린 수요다. 지방 부동산 시장은 침체 장기화 등으로 시세차익을 기대하기 쉽지 않아서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