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연의 시적인 순간] 꽃집아줌마
어느덧 동대문구답십리도서관 에세이 수업 마지막 날이다. 평소처럼 사람들은 별명이 쓰인 이름표를 책상 앞에 두고 둘러앉았다. 이제야 이름표를 보지 않고도 부를 수 있게 되었는데 마지막이라니. 폴링업님, 따이님, 펠리치따스님, 샤우팅님, 불빛님, 나보님, 꽃집아줌마님…. 이름표를 눈으로 하나하나 쓸어보며 애틋해졌다. 한 사람 한 사람 자신의 가장 귀한 이야기를 꺼내주시지 않았다면 우리가 나눌 수 있는 것들이 그만큼 줄어들었을 것이다. 서로를 토닥이고 의지하며 지나온 시간이 가슴에 잔뜩 엉기었다.

우리는 마지막을 기념하며 삼삼오오 우산을 받쳐 들고 식당으로 향했다.

“이쪽이에요. 식당이 도로 건너편에 있잖아요.”

등 뒤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꽃밭 쪽으로 가요. 얼른 이리로 와요. 얼른.”

꽃집아줌마도 소리쳤다.

사람들이 횡단보도를 도로 건너왔다. 비에 젖기보다는 빨리 식당으로 들어가고 싶었을 텐데도 꽃밭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꽃집아줌마의 마음을 헤아린 것이다. 비가 오지 않았다면 몰랐을 마음이다. 무엇인가를 무릅쓰고 서로의 마음을 읽어내려 애쓰는 사람들 사이에서 맑게 웃었다. 비가 오니까 젖은 옷이 몸을 비추듯 마음이 잘 보인다.

우리가 찾은 ‘지혜의 꽃밭은’ 언젠가 서울시 최대 도서관이 들어설 부지라고 한다. 사라짐이 예정된 꽃밭인 것이다. 나는 꽃집아줌마 덕분에 사라지기 전 꽃밭을 본 사람이 되었다.

게다가 점심값을 꽃집아줌마가 냈다. 좋은 일이 있어 베풀고 싶다고 했다. 쉬는 시간에 꽃집아줌마가 보여준 종이가 생각났다. 숫자들이 프린트된 종이였다. 뭔지 몰라 골똘해지는데 중간쯤 ‘100’이라는 숫자가 연속해서 보였다.

“제가 살면서 이런 적은 처음이에요. 100점을 맞았어요.”

100이라는 숫자 끝에 꽃집아줌마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꽃집아줌마가 지난주에 써온 글이 받아쓰기 100점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는 초등학교 때 이야기였는데 100점을 이렇게나 많이 받았다니.

“오늘 이걸 프린트하느라 지각했어요. 지각을 하더라도 꼭 작가님께 보여드리고 싶어서.”

꽃집아줌마의 직업은 꽃집 사장이 아니라 꽃을 좋아하는 보험상담사다. 2년 동안 상담 실적으로 1등을 했다고 한다. 자신이 쓴 글이 무엇인가를 예언한 것 같다며 놀라워했다. 우리는 100점을 맞은 꽃집아줌마에게 박수를 보냈다. 함께 기뻐할 일이 차고 넘친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고 노래한 함민복의 ‘꽃’이 떠오른다. 단풍이 고산지대에서 내려오고 사람은 단풍을 만나러 산에 올라가는 가을, 우리의 꽃밭에는 버들마편초와 코스모스가 가득하다.

월요일과 화요일엔 새벽부터 움직였다. 새벽을 모르고 산 내가 새벽의 얼굴을 바라봤다. 새벽도 외투를 껴입고 있다. 이렇게 가을도 가는가 보다. 가을이 왜 이렇게 짧은가 했더니, 가을은 바라보고 느끼는 자의 내부에 있었다. 사람이 늙어간다는 것은 기억을 꺼내 보는 일 같다. 기억은 잊히는 것이 아니라, 꺼내 보기 위해 숨겨두는 것인지도. 사십 대로 접어드니까 계절감이 더 잘 읽힌다. 내가 예민한 것도 있겠지만 이제는 바라보는 것보다 듣는 것이 더 좋아진다. 올가을에 입을 옷을 조금 샀다. 내 것만 잔뜩 샀더니, 문득 아들이 입고 있는 옷들이 눈에 들어온다. 복사뼈 위로 올라간 바지가 보인다. 가을비는 겨울 쪽으로 흘러간다. 아니 겨울의 몸을 입고 섰을지도 모른다. 목요일엔 아침 기온이 더 떨어진다고 한다. 이제 두툼한 외투를 꺼내 입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