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입국한 필리핀 가사관리사들이 서울 역삼동 교육장에서 비전문 외국인력(E-9) 특화훈련을 받고 있다.(왼쪽) 국내 한 직업전문학교에서 용접 교육을 받고 있는 외국인 직업연수생.(오른쪽)
지난 8월 입국한 필리핀 가사관리사들이 서울 역삼동 교육장에서 비전문 외국인력(E-9) 특화훈련을 받고 있다.(왼쪽) 국내 한 직업전문학교에서 용접 교육을 받고 있는 외국인 직업연수생.(오른쪽)
①교육훈련비 2억2184만원 ②임금 1억8931만원. ①+②=4억1115만원.

지난 8월 입국한 100명의 필리핀 가사관리사를 4주간 교육하는 데 들어간 비용이다. 가사관리사 한 명당 약 411만원이다. 이 돈은 고용노동부가 전액 지원했다. 고용보험기금에서 나온 나랏돈이다. 가사관리사 교육은 고용부가 올해 시범 사업으로 도입한 ‘비전문 외국인력(E-9) 특화훈련’에 따른 것이다. 이 같은 외국인 근로자 교육 시스템을 두고 고비용 저효율 구조라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 1명당 최고 500만원 지원

첫 단추 잘못 끼운 '외국인력 훈련'…고비용·저효율 늪에 빠지다
첫 번째 쟁점은 임금이다. 필리핀 가사관리사들이 근무하기 전인데도 왜 임금을 지급하느냐는 것이다. 고용부에 따르면 E-9 외국인 근로자는 국내 기업과 고용계약을 맺고 들어온다. 입국 후 바로 근로계약의 효력이 발생하는 만큼 교육 기간이라도 임금을 지급해야 하는 구조다. 고용부가 정한 임금 지급 기준은 올해 최저임금(시간당 9860원)과 주휴수당을 합친 금액이다. 입국 후 바로 교육에 투입된 필리핀 가사관리사 임금이 이렇게 책정됐다.

조선업과 제조업 분야의 E-9 특화훈련 임금 기준은 조금 다르다. 이는 지난해 7월 1일 이후 입국해 이미 산업 현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가 대상이다. 고용부는 최저임금을 통상임금으로 보고 그 150% 이내를 지원한다. 최저임금 외에 수당 등이 포함된 실질 금액을 인정하려는 취지다. 보통 최저임금과 주휴수당을 합치면 월 200만원 선인 만큼 300만원 한도까지 정부가 지원할 수 있는 셈이다.

교육훈련비 부담도 만만치 않다. 고용부에 따르면 조선업종 근로자에게는 국가직무능력표준(NCS) 단가에 따라 특화훈련 기간 4주간 1인당 평균 약 242만원의 훈련비가 지급된다. 필리핀 가사관리사(약 222만원)보다 더 많은 금액이다. 일반 제조업의 경우 200만~300만원에 이르는 임금을 고려하면 E-9 특화훈련 정부 지원금이 1인당 500만원을 넘을 수도 있다.

필리핀 가사관리사 교육에는 기본적인 교육 프로그램 외에 강연장 대관료에 수천만원이 들었다. 식비 역시 고용부가 책정한 기준(1000만원)의 두 배인 2000만원이 들어갔다. 당시 교육을 맡은 전국고용서비스협회 관계자는 “주변 음식점 가격이 비싼 데다 간식까지 제공하느라 실제 들어간 비용은 더 많다”고 말했다.

“입국 전 교육 강화해 비용 줄여야”

E-9 특화훈련은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은 외국인 근로자의 직무능력과 한국어 실력 향상을 위해 마련됐다. 업종 특성에 따라 1~8주간 교육할 수 있다. 고용부에 따르면 현재 가사관리사, 조선업 등에서 835명의 외국인 근로자가 교육을 마쳤거나 진행 중이다. 고용부는 올해 특화훈련을 위해 144억원(4000명 기준)을 편성했다. 내년에는 6000명으로 늘릴 방침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말이 안 통하고 직무가 서툴러 안전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만큼 교육훈련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교육 대상을 늘릴수록 너무 많은 세금이 들어간다는 점이다. 가사관리사도 더 증가할 전망이다. 최저임금이 높아 일본보다 한국 취업을 선호하는 외국인에게 무상 교육까지 제공하는 건 지나친 행정 지원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임금까지 지급할 수밖에 없는 입국 후 교육 대신 입국 전 교육이 예산 낭비를 줄일 대안으로 꼽힌다. 이기중 중소기업중앙회 외국인력지원실장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입국 전 행정절차로 두 달 정도 대기하는 기간을 교육에 활용하면 적어도 임금은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 만큼 비용과 세금을 절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건설 근로자 파견이 많은 우즈베키스탄은 쿼터만 늘려주면 한국에서 요구하는 실무교육을 얼마든지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박광배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 정부가 외국인 근로자 송출국의 쿼터를 조정할 수 있어 인력 수출 의지가 높은 국가에 필요한 직무, 한국어 교육 강화를 요구할 수 있다”며 “현지에서도 가능한 교육 성과를 굳이 정부 예산을 들여 해결하려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외국인 근로자도 교육에 따른 혜택을 보는 만큼 일정 부분 편익자 부담 원칙을 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입국 전 교육을 강화하면 한국에서 은퇴한 현장 실무자나 한국어 강사 등이 현지에 파견돼 새로운 일자리를 얻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중소기업중앙회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미얀마, 인도네시아 출신 외국인 근로자 중 입국 전 한국인으로부터 한국어를 배운 사례는 응답자의 0.85%에 불과했다.

40여 개국에 교육 인프라를 구축한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을 활용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기존의 다양한 교육연수 프로그램에 용접, 선박수리 등 직무와 한국어 교육을 추가하자는 것이다. 오성수 KOICA 사업전략처장은 “산업계에서 외국인 근로자 교육 수요가 늘어나고 있어 베트남 등을 대상으로 맞춤형 직업훈련 프로그램 신설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직업훈련생·유학생 활용 늘려야

일반 제조업에 대한 E-9 특화훈련의 효율성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필리핀 가사관리사처럼 입국과 동시에 교육을 받지 않는 한 전국의 산업 현장에 흩어진 외국인 근로자를 모으는 과정부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김남경 서울현대교육재단 이사장은 “업무 공백을 우려해 교육을 꺼리는 기업인이 많은 데다 사업장이 몰려 있는 조선업을 제외하곤 외국인 근로자의 출퇴근, 숙소 비용 등의 문제가 있어 교육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직업 연수생(D4-6)과 유학생(D-2)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한국어 소통과 직무능력을 이미 갖추고 있어서다. 그러나 법무부는 불법체류를 의식해 이들에게 취업비자를 거의 발급해주지 않고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D-2 비자 외국인 중 숙련비자로 전환한 사람은 지난해 576명에 그쳤다. 2017년 도입된 D4-6 비자 외국인의 취업비자 발급 실적은 제로다. 이태희 대구한의대 진로취업처 특임교수(전 대구고용노동청장)는 “연간 1000만원 이상의 자비를 들여 직업훈련학교나 대학에 다니는 이들에게 E-9 취업 경로를 열어주면 특화훈련 재정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서광석 인하대 이민다문화정책학 교수는 “이민정책 관련 업무가 법무부, 고용부 등 여러 부처에서 분산 집행되고 부처 간 협업체계가 구축되지 않아 총괄기획 및 조정 능력이 미흡하다”며 “이민정책 컨트롤타워 설치가 시급하지만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어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이정선 중기선임기자 leew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