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10일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10일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국회에선 시급한 글로벌 이슈에 대한 논의는 없이 각 정당이 특정인들의 이름만 외치고 있으니 답답합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 1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팰로앨토 스탠퍼드대에서 한국경제신문과 만나 최근 한국이 처한 가장 큰 리스크로 ‘여야 대립’을 꼽으며 이같이 말했다. 그가 이사장으로 있는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반기문 재단’과 월터 쇼렌스틴 아시아태평양연구소(APARC)는 이날 스탠퍼드대에서 ‘환태평양 지속 가능성 대화’ 콘퍼런스를 열었다.

반 전 총장은 “국회가 국내 정치 갈등에 매몰돼 국제 정세 흐름을 따라가는 데 뒤떨어져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 미국, 일본 등 주요국의 지도자가 한꺼번에 바뀌는 지금 같은 시기에 한국이 장기적인 외교·안보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국 외교사의 산증인으로 꼽히는 반 전 총장은 윤석열 정부의 외교적 성과를 묻는 말에 한·일 관계 개선을 꼽았다. 두 전임 정부 시절 악화한 한·일 관계가 단순히 양국 관계 악화로 끝나는 게 아니라 한국 외교의 근간인 한·미 동맹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봐서다.

그는 “문재인 정부는 북한에는 지나치게 우호적이었고, 한·일 관계는 너무 안 좋다 보니 미국과도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며 “한국은 식민 통치를 겪고도 선진국 반열에 오른 거의 몇 없는 국가인 만큼 한·일 관계를 보다 대승적인 차원에서 미래지향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남북 관계에 대해선 북한의 태도 변화가 우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 전 총장은 “윤석열 정부 들어 남북 관계가 많이 안 좋아진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정부 잘못보다는 북한의 태도가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북한의 전체 수출 상당분을 해킹이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거론하며 “현재 집단 탈북 사태나 북한 정권의 행태를 보면 북한 정권이 오래가지 못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 야권 일부에서 제기된 ‘영구 분단론’에 대해 “정치인으로서는 절대 해서는 안 될 말”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반 전 총장은 “남북이 통일되지 않을 수 있더라도 통일을 지향한다는 헌법적 가치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며 “한국이 전 세계적으로도 찾기 힘든 단일 민족 국가라는 점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반 전 총장은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을 총장 재임 시절 최고 성과로 꼽는다. 선진국에만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부여하던 교토의정서와 달리 195개 당사국 모두에 구속력 있는 첫 기후 합의였기 때문이다.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반기문 재단 이사장을 맡은 그는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각국 정상과 세계 청년들을 만나 기후 변화 문제 해결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그는 기후위기 상황에서 여야 정치권이 정파 싸움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반 전 총장은 “현재 국회의 싸움은 상대에 대한 존중도 없고 전혀 정상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단임 대통령제를 채택한 한국은 정치 지도자가 기후변화와 같은 의제를 밀어붙일 수 있는 여지가 비교적 크다”며 “시스템을 잘 갖췄더라도 결국 정치적인 동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팰로앨토=송영찬 특파원/이유정 기자 0fu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