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고려대 학생회관에 살았던 14살 소년 '정돌이' [서평]
14살,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무작정 서울에 올라왔다. 수돗물로 주린 배를 채우던 어느 날, 한 대학생을 만나 대학교 교정에서 살기 시작했다. 형누나들로부터 우연히 배운 풍물에 소질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결국엔 국내 최고 장구 전문가로 성장했다.

소설 <정돌이>는 '정돌이'란 별명을 가진 송귀철 씨(50)의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졌다. 송 씨는 1987년 봄부터 서울 안암동 고려대 캠퍼스 학생회관을 집 삼아 생활하기 시작했다. 정돌이란 별명도 당시 '정경대 학생들이 데리고 다니는 아이'란 뜻에서 지어졌다.

14살 가출 소년은 우연히 학생 운동의 생생한 현장을 목격한다. 최루탄이 난무하고 같이 어울린 형과 누나들이 사복 경찰에 의해 잡혀 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어린 소년은 어렴풋이 '정의란 무엇인가'를 떠올린다.
1987년 고려대 학생회관에 살았던 14살 소년 '정돌이' [서평]
이윽고 정돌이는 학생운동의 마스코트로 떠오른다. 각종 시위 현장에 참여해 북과 장구를 쳤다. 한때 '정돌이만 잡으면 운동권 조직 전체를 파악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돌았을 정도다. 어린 소년이 그들의 이념에 전적으로 동의했다기보다는, 같이 생활하던 형 누나들을 응원하는 마음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성인이 돼 홀로서기를 할 때도 정돌이는 형 누나들로부터 배운 '정의롭게 살아야 하고 어려운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철칙을 잊지 않는다. 아내와 함께 사물놀이패를 만들어 풍물 교습을 시작하고, 공연팀을 구성해 도움이 필요한 곳에 봉사활동을 나가고 있다.

가정폭력을 피해 도망친 가출 소년이 국가폭력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했다는 송 씨의 실화는 소설만큼 극적이다. 이른바 '586세대'(50대·80년대 학번·60년대 생)라면 과거의 향수를 떠올릴 수 있는 책이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