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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1기 신도시의 초등학교는 학생 수가 학교당 1000명을 웃돌았다. PC방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학원가 앞은 매일 학생들로 붐볐다. 집값은 2000년대만 해도 서울 웬만한 동네보다 높았다. 2006년께 평촌신도시나 산본신도시 전용면적 84㎡가 5억원 정도였다. 서울 서초구 신반포2차나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 강남구 은마아파트 같은 평수가 10억원으로 지금만큼 큰 차이가 나진 않았다.
그 시절 신혼부부는 이제 은퇴를 앞둔 시기가 됐다. 산본신도시의 초등학교는 학생 수가 그때의 절반가량으로 줄었다. 집값은 산본신도시 7억원, 신반포2차는 39억원으로 벌어졌다. 신도시는 나이에 비례해 집값 오름폭도 갈수록 줄고 있다. 아파트의 노후화, 인구 고령화 등 여러 원인을 짚을 수 있을 것이다.

1기 신도시 ‘마의 15㎞’에 걸렸다
지난 4월 유토 마사아키 도쿄도시대 도시생활학부 교수는 한반도 미래인구연구원 세미나에서 '인구 감소가 부동산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흥미로운 자료를 발표했다. 인구 고령화 때문에 도쿄 도심 주변 신도시의 주택 가격이 하락한다는 일반적인 내용처럼 보이지만 수치를 구체적으로 내놓은 게 특징이다.도심으로부터 '15㎞'. 이 지점부터 베드타운의 주택 가격 하락세가 뚜렷하다는 내용이다. 2018년을 100으로 보면 2045년 15㎞ 바깥부터는 60까지 하락한다고 봤다. 15㎞인 이유는 자녀가 있거나 자녀를 가질 예정인 맞벌이 가구는 30분 미만 출퇴근 거리를 이상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일명 '파워 커플'로 불리는 고소득 부부는 30분 이내를 선호하는 경향이 더 강했다. 유토 교수는 "자녀가 응급 상황에 처했을 때 바로 데리러 갈 수 있는 지역에 사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일산신도시는 광화문에서 20㎞, 산본신도시는 강남과 여의도에서 18㎞, 평촌신도시는 강남과 여의도에서 15㎞, 분당신도시는 강남에서 14㎞, 중동신도시는 여의도에서 12㎞(강남에선 22㎞) 거리다. 고령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돼 인구 감소 국면에 접어들면 1기 신도시의 희비가 엇갈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젊은 ‘평촌’ 늙은 ‘산본’ … 이유는 학원가
각 신도시의 고령인구 비중은 어떨까. 지금도 젊은 사람이 모인다면 향후 고령화에도 집값 하락세는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더 나은 입지에 최근 들어선 2기 신도시보다 대부분의 경우 고령인구 비중이 확연히 높았다. 가령 동탄의 경우 고령인구 비율이 5%를 조금 웃도는 수준이다. 수원 광교는 7%, 그나마 높은 하남 미사도 10% 정도다. 서울 노원구(20.1%), 은평구(20.9%), 강동구(18.7%)처럼 '베드타운' 기능을 하는 서울 내 자치구보단 고령화 수준이 덜 진행됐지만 입지 차이에서 서울은 '논외'다.그럼에도 2기 신도시 수준으로 고령 인구 비중이 낮은 곳이 1기 신도시 중에도 있다. 지난달 말을 기준으로 보면 만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평촌신도시가 11.6%로 1기 신도시 중에 가장 낮다. 특히 학원가(323개)가 몰려있는 호계1동과 귀인동은 각각 8.9%, 10.4%로 1기 신도시 모든 행정동 중에 가장 젊은 것으로 나타났다. 귀인중 인근 공인중개사는 "산본뿐만 아니라 과천에서도 유입되는 인구가 많은 편"이라며 "중학교까지는 괜찮지만 고등학교부터는 이곳으로 수요가 몰린다"고 말했다.
집값도 만만치 않다. 평촌중앙공원과 학원가에 인접한 향촌롯데 전용 84㎡는 지난달 24일 11억3000만원에 거래됐다. 2006년 6억원을 웃돌았던 것을 고려하면 오름폭은 서울에 비해 작지만, 다른 신도시 아파트에 비해선 비싼 축이다.
반면 평촌에서 가까운 산본신도시의 고령 인구 비중은 18.9%로 가장 높았다. 저층주택가가 집중된 산본1동(25%), 아파트와 빌라촌이 혼재된 재궁동(21.5%)과 수리동(22.1%)이 높게 나왔다. 아파트로만 구성된 궁내동은 14.2%로 낮은 편에 속했다.
평촌과 지하철로 겨우 두 정거장 차이지만 집값 차이가 크다. 산본동 대림솔거아파트 전용 84㎡는 2006년 5억원에서 지난달 4일 7억4500만원으로 49% 오르는 데 그쳤다. 새 아파트인 래미안 하이어스 같은 면적도 9억8000만원으로 평촌에 못 미친다.
분당·일산·중동은 신도시 안에서도 최대 ‘두 배’
1기 신도시 전반은 꾸준히 고령화가 진행되는 것으로 보인다. 10%대였던 고령인구 비율이 분당·일산에선 16%를 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1기 신도시가 조성될 때 입주했을 신혼부부는 아직 10년 더 지나야 고령인구에 진입한다.다만 30년 된 1기 신도시를 1년 된 2기 신도시만큼 젊게 유지해주는 건 학원가의 존재다. 강남에서 신분당선을 타고 5개역(23분)만 지나면 갈 수 있는 분당신도시는 16.5%로 평균에 가까웠다. 중심지인 수내동(12.5%), 서현동(14.2%), 정자동(15.4%)은 인구 연령이 젊은 편이다. 3개 동의 공통점은 지하철 역도 가깝고, 분당 학원가(290개)를 품고 있다는 점이다. 정자역 인근 정자동 상록우성 전용 84㎡는 1층이 지난달 22일 15억3500만원에 팔렸다.
집값에서 분당과 가장 희비가 엇갈렸다고 평가받는 일산도 고령 인구 비율에서 분당과 거의 비슷(16.7%)했다. 일산의 특징은 호수공원 근처 새 아파트가 많은 장항동과 구시가지인 주엽동·정발산동의 격차가 컸다는 점이다. 장항동은 12.5%, 주엽동과 정발산동은 20% 수준이다.
부천 중동신도시(15.2%·상동지구 포함)는 이런 경향이 더 심했다. 호수공원을 둘러싼 상2동과 상3동은 모두 고령인구 비율이 10.7%에 불과해 1기 신도시를 통틀어 가장 낮은 축에 속했다. 호수공원과 떨어진 상1동은 17%, 더 거리가 먼 상동은 20.6%로 높아진다. 서울 지하철 7호선 부천시청역과 신중동역을 끼고 있는 중1동은 고령인구 비율이 12.4%로 낮았다. 마찬가지로 학원가(232개)가 위치한 곳이다.
참고로 1기 신도시 전반의 고령인구 비율은 강남구나 서초구와 차이가 없다. 강남구는 16.2%, 서초구는 16.6%여서다. 하지만 압구정동, 반포동으로 좁혀보면 각각 21.5%, 39%로 고가 아파트가 밀집한 곳의 고령인구 비중이 크게 높았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