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의 정유·석유화학 중간지주사 SK이노베이션이 SK E&S와의 합병을 앞두고 계열사 사장단 인사를 24일 단행했다. 주력 자회사인 SK에너지는 1년도 안 돼 수장을 바꿨다. SK에코플랜트, SK스퀘어에 이어 12월 초로 예정된 그룹 전체 인사보다 한 달여 앞당겨 조직을 정비하는 것으로, 실적 부진에 시달리는 계열사의 본원 경쟁력 회복이 시급하다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신상필벌 원칙 따른 인사

SK이노, CEO 3명 교체…"본원 경쟁력 회복"
SK이노베이션은 계열사 SK에너지 사장에 김종화 SK에너지 울산콤플렉스(CLX) 총괄(57)을 선임했다. 석유화학 자회사인 SK지오센트릭은 최안섭 머티리얼사업본부장(52)을 사장에 임명해 내부 승진을 택했다. 배터리 소재인 분리막을 제조하는 SK아이이테크놀로지 사장엔 이상민 SK엔무브 그린성장본부장(49)이 낙점됐다.

세 신임 CEO(최고경영자)의 공통점은 이공계 출신이라는 것이다. 기술과 현장에 집중해 SK이노베이션의 ‘기초 체력’을 다시 쌓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SK이노베이션이 자회사별로 신사업 발굴에 집중하느라 미진해진 ‘본업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얘기다.

SK이노베이션 매출의 60%를 차지하는 핵심 계열사 SK에너지에 이공계 출신이 사장으로 선임된 건 2015년 퇴임한 박봉균 사장 이후 9년 만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선임한 사장을 1년도 채 안 돼 교체한 것은 쇄신 의지가 강하다는 뜻”이라며 “김 신임 사장이 울산 사정을 속속들이 아는 현장 엔지니어 출신인 만큼 정유 사업에서 활로를 모색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신상필벌 원칙을 분명히 한 점도 이번 인사의 특징이다. SK지오센트릭만 해도 상반기 영업이익이 490억원으로, 지난해(1243억원)보다 60% 감소했다. 연구개발(R&D) 출신의 신규 사장을 선임하며 주요 사업을 관장할 임원 세 명을 함께 발령낸 것도 사업의 기틀을 빠르게 잡아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SK지오센트릭은 이번 인사를 통해 해외 권역별 본부를 실 단위로 통합하고, 화학 사업에선 일부 본부를 없애는 등 전체 조직을 축소했다. 동시에 임원도 21명에서 18명으로 약 14% 줄였다.

SK아이이테크놀로지 역시 최대 고객사인 SK온의 공장 가동률이 떨어지며 함께 실적에 타격을 받고 있다. 40대인 이 신임 사장은 SK이노베이션의 첨단 기술 개발을 맡아온 R&D 출신으로, 분리막 사업의 기술 토대를 닦을 것으로 관측된다.

○실적 부진 계열사 ‘조직 다지기’

SK그룹 인사는 올해 초부터 진행한 ‘사업 리밸런싱’의 마지막 퍼즐이다. 향후 사업 방향을 전반적으로 조정한 터라 앞으로 이를 속도감 있게 실행할 인물을 주요 보직에 앉히고 있다는 것이 재계의 평가다. SK에코플랜트는 올 5월 사장 인사를 단행한 뒤 지난 17일 임원 인사까지 마쳤다. 투자 성적이 부진하던 SK스퀘어는 6월 사장을 교체했다. 사업구조를 빠르게 개편해야 할 계열사에 먼저 ‘매스’를 댄 것으로 해석된다.

SK그룹의 나머지 계열사 인사는 12월 첫째주로 예정됐다. 실적과 사업 재편의 필요도에 따라 기업별로 인사 폭이 크게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재계 관계자는 “이달 31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 열리는 SK그룹의 ‘CEO 세미나’가 전체 인사의 향방을 잡는 분수령이 될 것”이라며 “올 3분기에 역대급 실적을 낸 SK하이닉스 등을 제외한 다른 계열사의 임원 규모도 전체적으로 줄이는 기조”라고 관측했다.

김형규 기자 k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