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현행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각 지방자치단체 자율에 맡겨 시행하기로 결정했다. 전국으로 보증금제를 의무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사실상 백지화한 것이다. 보증금제는 시장과 현실을 무시한 채 준비 없이 도입된 전형적인 탁상행정의 실패 사례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완섭 환경부 장관은 24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종합감사에 출석해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획일적으로 전국으로 확대하는 것보다는 단계적이고 점진적으로 이행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이어 “국회 및 지자체, 업계 등과 협의한 뒤 방안을 확정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보증금제를 전국에 확대한다는 현행 기조는 유지하되 각 지자체 자율에 맡기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일회용컵 보증제는 일회용컵 회수 및 재활용을 활성화하기 위해 판매업자가 정부가 정한 보증금을 제품 가격에 반영해 판매하고, 소비자는 일회용컵을 반환할 때 지급한 보증금을 전액 돌려받는 제도다. 통상 카페에서 일회용컵에 음료를 받을 때 내는 보증금은 300원이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20년 5월 국회에서 자원재활용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본격 도입됐다.

당초 개정안 공포 2년 후인 2022년 6월부터 전국적으로 시행할 계획이었지만,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환경부는 시행을 12월로 미뤘다. 소상공인들이 보증금 부과와 반환, 컵 회수 등 업무와 비용을 모두 떠안아야 했고, 소비자들도 컵 반납기를 찾아다녀야 하는 등 비판 여론이 거셌기 때문이다. 대국민 홍보가 부족했다는 지적도 많았다. 이에 환경부는 같은 해 12월부터 제주와 세종에서만 시범 운영 형태로 일회용컵 보증제를 시행했다.

그동안 야당과 환경단체는 당초 계획한 대로 전국 시행을 의무화해야 한다며 주장했지만 환경부는 논의 끝에 지자체와 소비자 자율에 맡기는 방향으로 보증금제를 시행하기로 이번에 최종 결론을 내렸다. 정책에 대한 국민의 수용성이 낮고, 소비자가 불편을 감수하는 비용에 비해 일회용컵이 재활용되는 비율이 높지 않은 상황에서 의무화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 장관은 이날 국정감사에서 “보증금제를 일괄적으로 전국으로 확대하면 디지털 취약계층의 이용 제약, 농어촌 등 이동거리가 긴 지역의 접근성 및 매장의 업무 부담 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