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객잔(茶馬客棧)
윤효

설산에
마지막 마방이 걸어두고 간
조각달 아래
하룻밤
내내
가쁜
숨소리,

그곳에도
아침은
와서
보니
앉은뱅이
도라지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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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샹그릴라는 어디 있을까 [고두현의 아침 시편]
시의 제목에 나오는 차마객잔(茶馬客棧)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교역로인 차마고도(茶馬古道)의 고산 지역에 있는 숙소입니다. 기원전부터 중국의 차(茶)와 티베트의 말이 오가던 곳이지요.

차마고도의 길이는 약 5000㎞에 이릅니다. 평균 해발고도 4000m 이상인 높고 험준한 길이지만, 눈에 덮인 설산과 수천㎞의 협곡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꼽힙니다. 협곡이 얼마나 깊은지 절벽 아래로 고개를 내밀고 내려다보면 몸이 그대로 오그라들고 말 정도이지요.

이 길을 따라 물건을 교역하던 상인 조직을 마방이라고 합니다. 수십 마리 말과 말잡이가 차와 소금, 약재, 금은, 버섯류 등을 싣고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다녔지요. 요즘은 이 길을 따라 도로가 많이 건설되어 트레킹 코스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윤효 시인은 2018년 동료 문인들과 함께 10일간 이 길에서 ‘고난의 행군’을 하고 왔습니다. 쿤밍에서 호도협, 샹청, 야딩을 거쳐 샹그릴라까지 이어지는 여정이었습니다. 해발 6740m의 만년설이 덮인 매리설산에서는 눈앞에서 거대한 빙하가 무너지는 장관을 보았습니다. 백마설산을 넘을 때는 고산병 때문에 심한 구토와 울렁거림에 시달렸고, 산사태로 도로가 막혀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하기도 했지요.

이 시는 그때의 경험에서 건진 것입니다. 간결하면서도 깊은 깨우침을 담은 작품이어서 2021년 유심작품상 시 부문 수상작으로 뽑혔습니다. 최근에 출간한 시집 <시월(詩月>의 2부에 실려 있어 더욱 반가웠습니다.

길이 워낙 험하고 산이 높아서 사람과 말이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걷는 긴 여정. 숙소에 몸을 누인 사람뿐만 아니라 ‘마지막 마방이 걸어두고 간/ 조각달’까지 밤새 가쁜 숨소리를 내며 몸을 뒤척이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렇게 어둡고 힘든 밤이 지나고 아침이 오자 공기가 청결해지고 두 눈이 맑아집니다.

그 순간 시인의 눈에 도라지꽃 한 송이가 들어옵니다. 산소가 부족한 고산지대여서 키가 작은 것일까요. 꽃을 피우기 위해 스스로 키를 낮춘 것일까요. ‘앉은뱅이/ 도라지꽃’의 자태가 설산의 높은 산봉우리와 대조를 이룹니다. 짧은 시행으로 자연과 우주, 인생의 단면을 이렇게 잘 드러낸 시인의 내공이 놀랍습니다.

이 시에 이어지는 다른 시를 한 편 볼까요.

샹그릴라

설산을 한 발 한 발 올려붙이면서도 긴가민가했다.

자꾸 돌부리에 걸렸지만 그러려니 했다.

헉헉 숨통이 차올랐으나 산이 높아 그런 줄 알았다.

결국 벼랑 아래로 고꾸라지고 나서야 어렴풋이 헤아릴 수 있었다.

몇 걸음 너머 거기, 거기였던 것이다.

샹그릴라는 엄격한 입국심사로 속물의 접근을 막고 있었다.

샹그릴라는 이상향을 가리키는 말이지요. 영국 소설가 제임스 힐턴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 1933)에 등장하는 ‘지상낙원’입니다. 쿤룬산맥 서쪽 끝자락의 숨겨진 장소에 있는 신비롭고 평화로운 계곡,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고 외부로부터 단절된 히말라야의 유토피아로 묘사돼 있습니다.

소설 속의 장소는 북인도와 티베트 사이에 있는 히말라야의 몇 군데라고 하는데, 중국이 윈난성의 디칭장족자치주에 있는 중뎬(中甸)을 2001년 샹그릴라로 바꾸고 국제적인 관광도시로 개발했지요.

그러나 샹그릴라의 실제 모델은 그 옆에 있는 나시족의 근거지 리장(麗江)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미국 식물학자가 1924년에 리장을 방문한 뒤 27년간 거주하면서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이 도시에 관한 글을 기고했고, 제임스 힐턴이 이 글을 보고 영감을 얻어 소설을 썼다고 하지요.

이렇게 깊은 곳에 숨어 있는 낙원이 곧 샹그릴라이니, 그곳을 찾는 사람의 발길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헉헉 숨이 막히고 돌부리에 차이면서 겨우겨우 설산을 오르다가 시인은 아뿔싸! 발을 헛디뎌 천 길 낭떠러지 쪽으로 미끄러졌습니다. 가까스로 두 손을 뻗어 벼랑 끝을 붙잡았지만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지요.

그때 그는 번갯불처럼 깨달았다고 합니다. “몇 걸음 너머 거기, 거기였던 것”이라고 말이지요. “결국 벼랑 아래로 고꾸라지고 나서야 어렴풋이 헤아릴 수 있었다”는 구절이 그렇게 해서 나왔던 것입니다. 샹그릴라는 먼 곳에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바로 “몇 걸음 너머 거기, 거기”, 생과 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접점에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고 보니 ‘샹그릴라’는 ‘차마객잔’과 함께 짝을 이루는 시입니다. 시집에도 연이어 배치해놓았군요. 그 뒤로 이어지는 ‘다시, 샹그릴라’ ‘여강고성(麗江古城)에서’ 등의 연작 또한 설산의 달빛처럼 환하게 읽히는 작품입니다.


■ 고두현 시인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 등 출간. 김달진문학상, 유심작품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