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페어는 갤러리(또는 작가)가 모여 만드는 장터이다. 갤러리 한 개가 단독으로 전시할 때보다 여러 갤러리가 모였을 때, 더욱 많은 작가와 작품을 볼 수 있기 때문에 그 시기를 맞춰 국내외 주요 컬렉터들과 관계자를 포함한 많은 관람객이 모여든다. 이런 집적이익을 위해 갤러리는 아트페어에 참가한다. 아트페어는 결국 갤러리가 모이지 않으면 만들어질 수 없기 때문에 갤러리 릴레이션 담당자는 연간 쉬지 않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갤러리를 모으는 일에 주력한다.

하지만 갤러리를 많이 모으기만 한다고 아트페어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키아프(KIAF) 외부 운영위원으로 다년간 참가 갤러리를 심사하고 현장 평가와 함께 결과보고서를 책임 집필했던 강남대학교 경제학과 서진수 교수는 “아트페어의 퀄리티는 참가한 상위 갤러리의 수준보다 최하위 갤러리의 수준이 결정한다.”고 말했다.

같은 아트페어에 참가하는 갤러리들은 서로 같은 등급으로 컬렉터들에게 규정지어 인식될 수 있기에 상위 갤러리들이 참여하는 아트 바젤, 프리즈와 같은 글로벌 대형 아트페어에 참가하려고 노력한다. 때문에 중소형 아트페어들은 상위권 메이저 갤러리를 모으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는 것과 병행하여, 특색 있는 중소갤러리를 잘 관리하여 참가를 유도하고 수준 이하의 갤러리를 잘 걸러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리만 머핀, 스푸러스 마거스, 에스더 쉬퍼, 페로탕, 페이스갤러리(ㄱㄴㄷ순)를 비롯한 해외 메이저 갤러리들과 키아프에서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주던 갤러리신라, 갤러리바톤, 갤러리조선을 비롯한 국내 주요 갤러리 일부가 프리즈 서울에 참가하며 키아프를 빠져나갔지만, 여전히 키아프가 중요한 아트페어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은 디스위켄드룸, 띠오, 라흰갤러리, 스페이스 소,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초이앤초이, EM(에브리데이먼데이), LKIF를 비롯한 특색 있는 전시와 작가를 보여주고 있는 갤러리들이 새롭게 들어와 탄탄하게 빈자리를 채워주고 있기 때문이다.
2024 키아프에 처음 참가한 띠오에서 선보인 윤향로 작가의 8m 대형작품 / 사진. © 박준수
2024 키아프에 처음 참가한 띠오에서 선보인 윤향로 작가의 8m 대형작품 / 사진. © 박준수
이런 갤러리들을 잘 관리하는 것도 갤러리 릴레이션 담당자의 중요한 역할이다. 갤러리 릴레이션은 아트페어에만 있는 독특한 직무라 담당자가 가져야 할 기본적인 업무 소양에 대해 알아보자.

① 처음 보는 외국인과 미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외국어 능력

갤러리 릴레이션 담당자에게 외국어 능력은 필수이다. 영어는 기본이고, 중국어, 일본어, 불어, 이탈리아어까지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면 업무를 수행하는 데 매우 유리하다. 글로벌 대형아트페어의 경우, 대륙별로 담당자를 두고 갤러리들을 관리하지만, 중소형 아트페어인 경우 한, 두 명의 소수 인원이 그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적어도 영어는 필수이다.

기본적인 회화를 할 수 있다고 해도 미술과 관련된 용어를 모르면 난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우리말로 설명하기도 어려운 박서보의 묘법이나 이우환의 <점으로부터>를 외국인에게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해외 갤러리스트들이 말하는 컨템포러리 아트와 관련된 단어가 무엇인지 알아야 그들과 말문을 트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하지만 꼭 유학을 다녀오고, 전공을 해야 이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은 갤러리스트의 대선배인 17대 한국화랑협회 회장을 역임한 박우홍 동산방화랑 대표는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신문에서 문화면을 찾아 읽으면 좋은 갤러리스트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갤러리스트를 직접적으로 대하는 갤러리 릴레이션 담당자도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관련 기사와 아티클을 찾아 읽으며 미술 시장의 주요한 이슈를 챙기면 된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매일 아침 일어나 당장 시작해보자.

영어 공부에 도움이 되는 관련 사이트는 아래와 같다.

[The Art newspaper] : https://www.theartnewspaper.com/
[Artnet] : https://news.artnet.com/
[Ocula] : https://ocula.com/
[e-flux] : http://www.e-flux.com/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하나씩 읽는 e-flux의 크리틱 / 사진. © 박준수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하나씩 읽는 e-flux의 크리틱 / 사진. © 박준수
② 닫힌 갤러리 문을 두드릴 수 있는 용기

아무리 영어를 잘 할 수 있다고 해도 갤러리를 만날 수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모든 갤러리는 처음부터 아트페어 담당자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지금처럼 아트페어가 많아져 아트페어 참가 권유가 갤러리에게도 부담스러운 시기에는 더욱 그렇다. 각각의 아트페어를 서로 비교하고, 아트페어 참가에 따른 손익을 예민하게 판단하여 참가 여부를 결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다소 냉정하게 대하는 갤러리에게 선뜻 다가갈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2019년도 키아프에 함께 근무했던 이용희 담당자는 나와 함께 도쿄를 방문했을 때 ‘스카이 더 배스하우스(SCAI THE BATHHOUSE)’를 찾아가 당당히 명함을 내밀었다. 일본어를 할 줄 안다고 해서 일본어를 곧잘 하는 줄 알았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음식점에서 주문하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하지만 높은 리셉션 뒤에서 고개 한 번 내밀지 않던 ‘스카이 더 배스하우스’의 갤러리스트는 당당하게 명함을 내밀며 키아프를 소개하는 이용희 담당자에게 활짝 웃어 보였다. 키아프에 좋은 갤러리를 유치하고자 했던 그에게 언어의 장벽은 큰 장애물이 아니었다. 아쉽게도 2020년 코로나로 인해 ‘스카이 더 배스하우스’는 키아프에 참여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용희 담당자처럼 국내 많은 아트페어의 갤러리 릴레이션 담당자들이 용기를 내며 전 세계 갤러리 문을 노크하고 다니며 애써준 덕분에 한국 미술 시장이 국제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었고, 추후 키아프와 프리즈의 동시 개최를 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도쿄의 대표적인 갤러리 '스카이 더 바스하우스'. 처음에 찾아갈 때는 아트페어 담당자를 만나볼 수도 없었지만, 지금은 아리사 사이토와 연락을 주고 받는 사이가 되었다. / 사진. © 박준수
도쿄의 대표적인 갤러리 '스카이 더 바스하우스'. 처음에 찾아갈 때는 아트페어 담당자를 만나볼 수도 없었지만, 지금은 아리사 사이토와 연락을 주고 받는 사이가 되었다. / 사진. © 박준수
그렇다면 아트페어에서는 갤러리들을 어떻게 모집할까? 모집의 형태를 알면 갤러리나 아티스트들도 아트페어에 참여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아트페어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 형태로 갤러리를 모집한다. 참가 신청을 받아 공개 모집을 하거나 특정 갤러리를 별도로 초청하는 형식이다.

① 참가 신청 접수

가장 많은 아트페어가 일반적으로 진행하는 방식이다. 참가신청서를 만들어 배포하거나 참가 신청 웹사이트를 열어 신청을 받는다. 참가를 원하는 갤러리라면 누구나 양식에 맞게 신청서를 작성해서 참가 신청을 할 수 있다. 아트페어의 인지도가 어느 정도 올라가 있는 아트페어들은 이런 방식을 통해 보다 많은 갤러리를 모집한다. 이런 공모 방식은 직접 컨택 할 수 없었던 많은 갤러리에 참가 기회를 열어두어 새로운 갤러리들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신청서를 제출한 불특정 다수의 갤러리는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엄격한 심사를 통한 검증이 필요하다.

새롭게 생겨난 신생 아트페어의 경우에도 직접 불러 모을 수 있는 갤러리 수가 한정적이기 때문에 불특정 다수의 갤러리를 모집하여 숫자를 채우기 위해 이런 방식을 택하기도 한다. 이때 갤러리 릴레이션 담당자들은 다양한 홍보를 통해 아트페어의 참가 신청을 유도해야 한다. 많은 신생 아트페어들은 이 과정에서 갤러리를 모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참가 신청을 하는 갤러리는 이 과정에서 아트페어가 정말 성과를 낼 수 있는지 갤러리 릴레이션 담당자들과 긴밀하게 소통하고 판단하여 신청을 해야 한다.

참가 신청을 시작했다고 갤러리들이 모두 참가 신청서를 제출하는 것은 아니다. 아트페어가 보여줄 수 있는 비전과 특성에 따라 참가했을 경우에 성공 여부를 예측하고 참가 신청서를 제출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같은 아트페어에 나온 갤러리들은 같은 수준의 등급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에 갤러리 릴레이션 담당자를 통해 어떤 갤러리들이 신청했는지 문의한다.

아트페어에서 준비하고 있는 프로그램과 특별전, 초청하는 VIP, 관련 협업 기관과 후원, 협찬사까지 아트페어에 참가해서 가져갈 수 있는 성과에 필요한 모든 요소를 예민하게 분석한다. 그에 대한 예민한 문의에 갤러리 릴레이션 담당자는 모두 응대해야 한다.

② 갤러리 초대 방법

아트 바젤 홍콩의 디렉터였던 매그너스 렌프루(Magnus Renfrew)가 '타이페이 당다이'를 열 때 많은 한국 갤러리들이 새롭게 생기는 이 아트페어에 어떻게 참가할 수 있는지 문의했다. 문의한 결과, 첫해에는 초대받은 갤러리만 참여가 가능하다고 회신받았다. 아트페어에서 특정 갤러리에게 초대를 통해 참가를 권유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이런 방식은 참가 신청을 권하는 과정에서 이미 아트페어의 커미티에서 검증된 갤러리에게 참가를 권하기 때문에 참가 갤러리의 수준이 보장되는 편이다. 참가 갤러리 수가 많지 않은 부티크 아트페어들이 이런 형태를 취한다. 이 경우에도 초대받은 갤러리가 모두 참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갤러리 릴레이션 담당자는 초대한 갤러리가 참가를 확정 지을 수 있게 사전에 갤러리들이 필요로 하는 요청 사항을 잘 체크하여 준비하고 제공해야 한다.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양자주 작가의 도움을 받아 베를린에서 좋은 갤러리의 상징인 바나나 그래피티가 그려진 모든 갤러리 문을 두드리고 다니던 시절 / 사진. © 박준수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양자주 작가의 도움을 받아 베를린에서 좋은 갤러리의 상징인 바나나 그래피티가 그려진 모든 갤러리 문을 두드리고 다니던 시절 / 사진. © 박준수
아트페어가 열리면 갤러리 릴레이션 담당자들은 숨 쉴 틈 없이 바쁘다. 온라인으로만 만나던 수많은 갤러리스트과 직접 만나 현장에서 그들의 요청 사항을 다 해결해 주어야 한다. 아트페어가 끝나고 모두가 수고했다는 칭찬을 받을 때도 갤러리 릴레이션 담당자들은 갤러리들의 컴플레인을 듣고, 다음 행사에 보완하기 위해 개선점을 찾아야 한다.

아트페어에 처음 참가한 갤러리는 판매 성과가 좋지 않았을 때 자신을 탓한다. 갤러리가 시장 조사를 잘 못 해서 작품을 잘 못 가져왔나보다 자책한다. 두 번째 참가한 갤러리가 판매 성과가 안 좋을 때 갤러리 릴레이션 담당자에게 가장 강하게 컴플레인을 한다. 이때도 개선점을 찾지 못해 세 번째 참가해도 성과가 안 좋으면 조용히 다음 아트페어 때 신청하지 않는다. 아트페어가 새로 생기면 못해도 3년은 간다는 말은 여기서 나왔다. 갤러리 릴레이션 담당자는 이 점을 알고 항상 갤러리들과 소통하며, 갤러리들이 아트페어에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하고 찾아야 한다.

갤러리 릴레이션은 참으로 고된 일이다. 예민한 갤러리스트들과 항상 좋은 유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또, 편파적으로 일부 갤러리에게 특혜를 줄 수 없기에 적당한 거리도 유지해야 한다. 잘했다는 칭찬보다 못했을 때 질책을 더욱 많이 받는 자리이다.

하지만 수많은 갤러리들과 직접적으로 소통할 수 있기 때문에 묵묵히 자리를 지킬수록 아트 페어의 중심이 되며, 아트 마켓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충분히 넓힐 수 있는 포지션이라 매력적이다.

박준수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