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멀지 않은 마을에 옛날식 즉석우동을 파는 포장마차가 있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2차선 도로변에서 혼자만 덩그러니 우동을 팔고 있는 집이다.

삐거덕거리는 쪽문을 열고 들어서면 수동식 기계로 면을 뽑는 소리가 끽, 끽 들리고 가마솥에서는 육수 냄새가 모락모락 김을 피운다. 밀가루 면에 멸치 국물을 붓고 유부와 쑥갓을 얹어주는 정도지만 요즘은 보기 힘든 집이라 일부러 자주 찾는다. 노란 단무지와 함께 먹으면 달달하고 쫄깃한 식감이 추억 돋는 맛이다.

지난 여름, 더위를 피해 밤 산책을 나서게 되면서 이 우동집을 알게 되었다. 낮이 었다면 아마도 무심코 지나쳤을 것이다. 시골길에 종종 볼 수 있는 농막인데다 입간판도 없고 실제 장사를 하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로 몹시 낡았다.

그런데 사방 캄캄한 밤중에는 전구를 밝혀놓아 비로소 눈에 들어온다. 그 모습이 너무나 고독해 보여 그냥 지나칠 수가 없을 정도다. 한적한 길이라 손님도 많지 않다. 혼자 우동을 먹을 때도 있고 어디서들 왔는지 서너 명이 앉아있을 때도 있다. 들어보니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도 아는 사람만 아는 ‘삼성리 우동집’이었다.
삼성리 우동집 / 그림. ⓒ남무성
삼성리 우동집 / 그림. ⓒ남무성
그런데 이 포장마차에는 엄청난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계산은 오직 현금만 된다는 점이다. 나도 현금이 없을 때는 동전 저금통을 털어서 챙겨나간다. 사전에 이 정보를 모르고 간다면 6000원짜리 우동 한 그릇 때문에 낭패를 보게 된다. 근처에 편의점도 없고 현금인출기를 찾는다면 5킬로쯤 차로 다녀와야 한다. 카드 불가, 계좌이체도 불가다. 그런 안내 문구조차 붙어있지 않아서 우동을 다 먹고 난 뒤 난감해하는 손님을 종종 보게 된다.

주인아주머니에게 타협이란 없다. 오직 현금을 내놓아야 하고 방법은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꺾이지 않을 신념이다. 그러다 보니 진풍경이 벌어진다. 친구를 볼모로 잡혀놓고 차를 몰아 현금을 구해오는가 하면 손님끼리 현금을 빌려주고 바로 계좌이체로 갚아서 해결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맘씨 좋은 손님이라도 옆 테이블에 있으면 다행이겠지만 만약 현금 없이 혼자만 갔다면...? 큭큭, 웃음만 나온다.

그러고 보니 현금 구경하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스마트폰에 결재기능이 있어 지갑도 안 가지고 다닌다. 그런데 몹시 궁금하다. 우동집은 왜 계좌이체까지 받지 않는 걸까? 얼마 전에 나도 친구들과 갔다가 현금이 부족한 지경에 이르렀고 사정사정해서 어렵게 계좌번호를 받을 수 있었다. 스마트폰으로 이체 내역을 보여드렸지만 이렇게 하면 입금한 게 맞는지 재차 물어본다. 우동 맛도, 계산방식도 진심 옛날 그대로인 포장마차다.
우동집 벽에 걸려있는 사장님 사진 / 그림. ⓒ남무성
우동집 벽에 걸려있는 사장님 사진 / 그림. ⓒ남무성
우동집 한쪽 벽에 주인아주머니의 젊은 시절 사진이 걸려있다. 화사한 꽃밭에서 멋들어진 선글라스를 쓰고 있다. 큼직한 액자로 걸어둔 걸 보니 아주 마음에 드는 사진인가보다. 언제쯤이었을까 궁금해진다. 그래, 누구에게나 인생의 화양연화가 있다. 누구에게나 붙잡고 싶은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세월은 무심하게 흐르고 세상은 따라잡기 힘들게 변한다. 문득 다시 생각해보니 우동 한 그릇 값으로 카드를 내미는 게 어울리는 그림은 아닌 것 같다. 그 시절 포장마차 우동집에서도 현금을 냈다. 맞다, 그래야 추억이 완성이다. 한밤중에 동전까지 챙겨야 하는 건 불편하지만 혹시 그게 재미있어서 자꾸만 가게 되는 걸까?

P.S. 오래된 블루스 노래 중에 ‘I Need Some Money(존 리 후커)’라는 게 있다. 기타를 퉁기면서 투덜투덜 넋두리를 풀어내는 심상이 당장 현금이 필요한 삼성리 우동집에 어울릴 만하다.

[추천 음악] ▶ John Lee Hooker - I Need Some Money


남무성 재즈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