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들' 뺏기면 완전 '폭망'…삼국지 전쟁 시작 됐다 [정영효의 산업경제 딱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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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 모시려 법까지 바꾼다..외국인 유치 경쟁 삼국지
한국, 외국인 근로자 상한 대폭 상향하자
일본, 육성취업 제도 도입으로 대응
'인구블랙홀' 중국의 외국인 쟁탈전 가세 임박
한국, 외국인 근로자 상한 대폭 상향하자
일본, 육성취업 제도 도입으로 대응
'인구블랙홀' 중국의 외국인 쟁탈전 가세 임박
일본은 지난 6월 14일 한국에 ‘외국인 근로자 쟁탈전’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일본 국회는 이날 본회의를 열어 출입국관리·난민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지금까지 외국인 근로자를 받아들이는 통로였던 기능실습 제도를 폐지하고 육성취업 제도를 신설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1993년 도입한 기능실습제의 당초 목적은 국제 공헌이었습니다. 외국인 근로자들을 일본으로 불러들여 선진 기술을 전수한다는 명목이었지만, 일본의 저출산·고령화가 가속화하면서 만성 인력난에 시달리는 중소 제조업체와 서비스 업계에 비숙련 외국인 근로자를 싼값에 공급하는 수단으로 변질됐습니다.
열악한 처우를 받더라도 이직을 금지하는 등 근로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조항이 많아 ‘현대판 노예제도’란 비판을 받았습니다. 일본 국회는 기능실습제를 대체하는 육성취업 제도의 목적이 ‘인력 확보’임을 명시했습니다. 국제 공헌 같은 명분을 벗어던지고 인력 쟁탈전에 필사적으로 뛰어들 각오를 분명히 한 것입니다. 대만도 지난해 6월부터 저숙련 외국인 근로자를 늘리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편했습니다. 2030년까지 저숙련 외국인 근로자를 8만 명 더 유치할 계획입니다.
전문가들은 합계출산율 1명 붕괴가 임박한 중국도 조만간 쟁탈전에 가세할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2022년 중국의 출산율은 1.09명까지 떨어졌습니다. 일본과 대만에 이어 중국까지 뛰어들면 외국인 근로자 쟁탈전은 동아시아 지역 전체의 국제전으로 확산할 것입니다. 주변국들이 잇따라 전시 체제를 가동하는 것은 한국이 외국인 근로자 시장을 빠르게 선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2020년 5만6000명이었던 저숙련 외국인 근로자(E-9비자) 상한을 올해 16만5000명으로 늘렸습니다. 체류 기간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고, 가족을 동반할 수 있는 숙련 외국인 근로자(E-7-4비자) 상한은 2018년 600명에서 올해 3만5000명으로 60배 가까이 높였습니다.
한국의 급여 수준이 일본과 대만을 월등히 앞서는 점도 주변국들을 조바심 나게 하는 이유입니다. 미쓰비시UFJ리서치앤컨설팅에 따르면 2022년 엔화로 환산한 한국의 저숙련 외국인 근로자 급여는 평균 27만1000엔(약 237만원)이었습니다. 일본과 대만의 저숙련 외국인 근로자(기능실습생) 평균 급여는 21만2000엔과 14만3000엔이었습니다.
2022년 말 기준 일본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는 182만3000명이었습니다. 한국과 대만은 각각 84만3000명과 70만7000명이었습니다. 세 나라 모두 지난 10년 새 외국인 근로자가 2~3배씩 늘었습니다.
그런데도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력난이 심각해지고 있어 세 나라 모두 외국인 근로자에 목말라 합니다. 일본국제협력기구(JICA)에 따르면 일본이 2040년 경제활동을 유지하려면 675만 명의 외국인 근로자가 필요합니다. 지금보다 500만 명을 추가로 확보해야 합니다.
한국 감사원은 2035년 국내 산업계에 37만 명의 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대만도 앞으로 40만 명의 외국인 근로자가 추가로 필요하다는 분석입니다. 아시아개발은행연구소에 따르면 급여를 더 많이 주는 주변국에서 일하는 아시아 신흥 10개 국의 외국인 근로자는 총 464만 명입니다. 아시아 최대 외국인 근로자 수출국인 방글라데시의 근로자 114만 명은 대부분 중동 국가를 선택합니다.
나머지 350만 명을 놓고 한국과 일본, 중국, 대만이 경쟁하게 됩니다. 저출산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가장 확실한 인력난 해소 방안은 이민입니다. 하지만 동아시아 국가들은 대체로 이민에 소극적입니다.
한국과 일본의 경우 ‘적극적으로 이민을 받아들이는 데 반대한다’는 여론이 60~70%를 유지합니다. 이 때문에 한국, 일본, 대만 모두 꼭 필요한 외국인 인재만 눌러 앉히는 소극적인 이민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일본은 육성취업 3년, 특정기능 1호 5년 등 8년에 걸쳐 건설·조선 등 11개 분야의 전문 기술을 익힌 외국인 근로자에게 특정기능 2호 자격을 더 많이 주기로 했습니다. 특정기능 2호 자격은 가족을 동반하고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어 사실상의 이민으로 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특정기능 2호 자격을 인정받은 외국인 근로자가 20명에 불과했습니다. 한국이 올해 숙련 외국인 근로자(E-7-4 비자) 상한을 3만5000명으로 대폭 늘린데 대한 대응으로 평가됩니다.
국제노동기구(ILO)가 "아시아의 선진적인 이주관리 시스템"이라고 평가할 정도로 한국의 외국인 근로자 제도는 국제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한국은 정부가 외국인 근로자 선발부터 체류 기간 동안의 지원, 귀국까지 전 과정을 관리하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민간 브로커가 기업과 외국인 근로자를 연결해 주는 대신 비싼 수수료를 떼어갑니다. 하지만 외국인 근로자를 급격히 늘려야 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모든 과정을 도맡는 현재의 제도가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일본처럼 민간의 힘을 빌리는 한편 정부는 외국인 근로자의 생활 지원 등을 나눠 맡아 불법 체류자를 줄이고, 국가 이미지를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입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최장 10년간 외국인 근로자를 쓰고 나서 돌려보내는 현재의 정책을 꼭 필요한 근로자는 정주시키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간병 분야'는 외국인 근로자 쟁탈전의 최전선으로 꼽힙니다. 일본 5대 종합건설사 다이세이건설은 지난 5월부터 간병 유급휴가를 15일로 5일 늘렸습니다. 일본 5대 전자제품 대리점인 에디온은 4월부터 간병 단축근무제 사용 기간을 3년에서 ‘필요할 때까지’로 확대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아직 개념조차 생소한 간병 휴가가 일본에서는 법으로 보장된 권리입니다. 일본 정부는 2017년 간병휴업법을 제정해 가족 한 사람당 연간 5일(두 명 이상은 10일)까지 간병휴가를 쓸 수 있도록 했습니다.
저출산·고령화와 오랜 싸움을 벌이고 있는 일본으로서 ‘일과 간병의 양립’은 우리나라가 저출생 대책으로 공을 들이는 ‘일과 가정의 양립’ 만큼 중요한 과제가 됐습니다. 일본은 간병을 가정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제와 산업 활동을 좌우하는 문제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2025년이면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인 ‘단카이 세대’ 590만 명이 모두 75세 이상 후기 고령자가 됩니다. 65~74세 전기 고령자 가운데 간병이 필요한 것으로 인정되는 비율은 3%지만, 후기 고령자는 23%로 급증합니다.
2000년 218만 명이었던 간병이 필요한 고령자는 2030년 900만 명으로 늘어날 전망입니다. 이 때문에 2040년까지 일본은 지금보다 69만 명 증가한 280만 명의 간병인을 확보해야 합니다.
일과 간병의 양립은 간병 대란이 임박한 일본의 생존을 좌우하는 문제입니다. 간병 부담 때문에 직원이 일을 관두게 하느니, 일과 양립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낫다는 인재 확보 전략입니다. 일본 총무성이 5년마다 시행하는 취업구조기본조사에 따르면 2022년 가족을 간병하기 위해 일을 그만둔 ‘간병 이직자’가 10만6000명으로 처음 10만 명을 넘었습니다. 일본 정부가 눈을 돌린 분야가 외국인 근로자입니다. 일본은 2008년 경제연계협정(EPA)을 맺고, 외국인 간병인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현재 4만6000명의 외국인 간병인이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후생노동성은 외국인 간병 인력을 22만 명까지 늘릴 계획입니다.
대만도 외국인 간병인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일본과 대만이 서둘러 외국인 간병 인력을 확보해 두려는 것은 중국의 저출산·고령화 속도가 심상치 않기 때문입니다. 2022년 출산율이 1.09명까지 떨어지면서 중국도 간병과 육아 등 돌봄 인력이 크게 부족할 전망입니다.
‘인구 블랙홀’ 중국이 외국인을 빨아들이기 시작하면 동아시아의 간병 자원이 씨가 마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합니다. 지난 4월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중국 등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고령화가 가속화하고 있어 국제적인 간병 인력 쟁탈전이 시작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 따르면 한국도 2025년이면 간병이 필요한 고령자가 10만 명을 넘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미 치매환자와 독거노인은 각각 100만 명과 200만 명에 달합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32년 우리나라에서는 38만~62만 명의 간병 인력이 부족할 전망입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우리나라는 외국인 간병 인력 확보에 손을 놓고 있습니다. 한국은 서비스, 조선, 광업, 임업 등 8개 업종에서 외국인 근로자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간병 분야는 제외돼 있습니다.
정영효 기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