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위기론’에 불을 지핀 외국계 투자은행 모건스탠리가 “단기적 관점에서 SK하이닉스에 대한 우리의 평가가 틀렸다”며 12만원으로 대폭 낮췄던 목표주가를 13만원으로 찔끔 올렸다. 목표가 하향 후 하이닉스가 3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내놓고 주가도 20만원을 넘어서자 불과 한 달여 만에 마지못해 입장을 바꾼 모양새다. 앞서 모건스탠리는 지난달 15일 ‘겨울이 곧 닥친다’는 제목의 보고서를 내고 26만원이던 하이닉스 목표가를 12만원으로 반토막 쳐 증시에 충격을 던졌다. 이 여파로 하이닉스 주가는 6% 넘게 곤두박질쳤고 투자자들은 패닉(공황)에 빠졌다.

모건스탠리는 ‘반도체 저승사자’라고 불릴 만큼 국내 반도체 종목과 악연이 깊다. 2021년 8월에도 ‘반도체의 겨울이 온다’는 보고서를 내놓으면서 삼성전자 목표주가를 9만8000원에서 8만9000원으로, SK하이닉스 목표가는 15만6000원에서 8만원으로 대폭 하향했다. 이후 두 종목은 연일 하락세를 보였다. 개인투자자 사이에선 외국계 증권사가 막강한 시장 영향력으로 주가를 흔들려는 의도를 갖고 비관적 리포트를 반복한다는 의구심이 만만치 않다. 이번에도 매도리포트 공개 직전 모건스탠리 서울지점 창구에서 100만 주가 넘는 하이닉스 주식 매도 주문이 체결돼 금융당국이 ‘선행매매’ 의혹을 조사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심을 잡아야 할 국내 증권사들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오히려 휘둘렸다. “해외에 근무하는 애널리스트가 국내 반도체 업황을 세세히 알기 어렵다”면서도 목표가를 줄줄이 낮추며 모건스탠리를 추종했다. 그러다 하이닉스 호실적이 발표되고 모건스탠리가 태도를 바꾸자 이젠 일제히 목표가를 상향 중이다. 줏대라고는 찾아보기 어렵다.

외국계 리포트에 국내 증시가 휘청거리는 현상은 자초한 측면이 크다. 여기에는 국내 증시의 허약한 체질과 함께 ‘매수 일색’인 국내 증권사의 후진적 행태와 의심스러운 실력이 자리 잡고 있다. 올 들어 지난달 말까지 1만5000건에 달하는 국내 증권사 종목 보고서 중 ‘매도 의견’은 4건(0.02%)에 불과하다. 10% 넘게 매도 의견을 제시하는 외국계 증권사와 대조적이다. 이러니 증권사 신뢰도는 추락하고 외국계 리포트 영향력은 커질 수밖에 없다. 눈치만 보면서 우왕좌왕하는 증권사 행태도 한국 증시 밸류다운의 주요 요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