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전 세계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분야 인재를 빨아들이는 비자 정책을 펴고 있다. 이민에 비교적 부정적인 보수정권도 핵심 인재를 받아들이는 정책의 근간은 흔들지 않는다. 20~30년 새 유럽연합(EU)과 경제력 격차를 벌린 미국의 핵심 경쟁력은 이 같은 이민제도에서 비롯됐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27일 미국 이민국(USCIS)에 따르면 고학력자 독립이민(EB-2)은 석사(AD) 이상의 ‘뛰어난 능력(exceptional ability)’을 보유한 사람이 대상이다. EB-2 비자는 원칙적으로 현지 채용이 확정됐다는 고용주의 증명이 필요하지만 ‘미국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국익 면제(NIW) 인증을 거치면 이를 생략해준다. ‘경제 발전’ 및 ‘미국 노동자의 임금과 근무조건 향상’ 등에 기여할 능력을 갖췄거나 ‘미국 정부기관의 요청’이 있을 때다.

이민 컨설팅 기업들은 항바이러스제를 개발한 연구원, 아스팔트 내구성을 개선한 토목기사, 유명 오페라 가수, 인기 작품에 기여한 애니메이터 등을 NIW를 받은 사례로 꼽는다.

EB-1 비자는 글로벌 수준의 능력자 및 학자, 다국적 기업 임원 등에게 발급된다. 고용주 증명이 필요 없다.

미국은 특히 STEM 영역의 인재 유치에 EB-1·2비자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민국에 접수된 지난해 EB-2 신청자 9만3000여 명 중 STEM 인재가 5만3960명으로 58%를 차지했을 정도다.

미국은 1990년 이민법을 통해 고숙련 인재를 분류하는 EB-1·2를 갖췄다. 이후 최고급 인재 우대 정책을 일관되게 유지했다.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쌓겠다”던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코로나19가 터진 2020년 모든 이민 비자 발급을 막았을 때도 NIW만큼은 건들지 않았다. 오히려 NIW 절차를 간소화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매년 미국은 인도, 중국, 브라질, 한국 등에서 최고급 인재와 그 가족 10만 명을 받아들인다. 2019~2023년 4년 동안 56만 명이 영주권을 받았다. 지난 10년간 펼쳐진 ‘미국만 성장하는 시대’도 STEM 인재가 이끌었다는 분석이 많다. 1995년 비슷한 규모이던 미국과 유로존의 경제력은 현재 1.4 대 1 정도로 벌어졌다.

한국은행은 지난 2월 발간한 ‘미국과 유럽의 성장세 차별화 배경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미국의 고숙련 인재가 기술혁신을 이끄는 반면 유로존은 이민자 중 저숙련 인력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고 지적했다.

박시온 기자 ushire90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