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입장곡을 무슨 곡으로 할지 고민했다. 자연스레 사랑에 관련된 영화들이 떠올랐다. 들을 때마다 매번 눈물짓게 만드는 <결혼 이야기>의 ‘Being alive’도 후보에 있었지만, 이 영화는 두 사람이 이혼하고 헤어지는 이야기이기에 선택지에서 탈락했다. 머릿속에서 무수한 영화 음악들을 재생시킨 끝에 딱 마음에 드는 곡을 찾았다. 바로 ‘House of Woodcock’, <팬텀 스레드>의 오프닝 시퀀스에 흐르는 음악이다.

[팬텀 스레드 'House of Woodcock']


레이놀즈 우드콕은 아주 까다로운 드레스 디자이너다. 낭만적인 음악과 함께 시작되는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는 그의 강박적이고 편집증적인 성격을 잘 보여준다. 레이놀즈는 정갈하게 면도를 하고 코털을 정리하고 매일의 루틴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하루를 시작한다. 우드콕 저택에 출근하는 봉제사들은 숙련된 군대처럼 움직이고, 레이놀즈는 그들의 이름을 한 명씩 부르며 인사를 나눈다. 그는 저택에서 누구보다도 그를 잘 아는 누나 시릴과 살고 있다.
영화 '팬텀 스레드'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영화 '팬텀 스레드'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레이놀즈는 아침 식사 자리에서 먹을 때 소리를 내는 애인이 거슬린다. “조한나는 이제 내보낼 때가 됐다”라고 말하는 시릴의 대사를 통해 이런 일이 이미 여러 차례 반복됐음을 알 수 있다. 그에게는 드레스를 만드는 ‘일’이 무엇보다도 더 중요하다. 그 일에 조금이라도 방해가 된다면 그는 언제든 다시 혼자로 되돌아갈 것이며, 스스로 평생 독신으로 살 운명이라고 여긴다.

머리를 식히러 교외의 작업실에 가던 길, 레이놀즈는 식당에서 일하고 있는 훤칠한 키의 웨이트리스 알마를 만나 데이트를 신청한다.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고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나 그런 시간도 잠시, 우드콕의 저택에 새롭게 들어온 알마는 자신의 의견을 쉽사리 굽히지 않으며 레이놀즈와 부딪히기 시작한다. 이 흐름대로라면 늘 그래왔던 대로 둘의 관계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자명하다. 일에 방해가 된다고 여기면 레이놀즈는 다시 혼자로 돌아갈 것이다.
영화 '팬텀 스레드' 스틸컷 / 사진출처. 다음영화
영화 '팬텀 스레드' 스틸컷 / 사진출처. 다음영화
그러나 과로를 한 레이놀즈가 유약해진 몸으로 알마의 간호를 받는 일이 있고 난 뒤 알마는 두 사람 관계의 실마리를 찾는다. ‘독특한 묘책’으로 그에게 휴식을 선사하기로 한 것이다. 이 묘책 때문에 영화를 한없이 낭만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기괴한 공포로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얼마나 괴팍한 사람이건 결국 알맞은 짝이 존재한다는 이야기가 위안을 준다.

연출뿐만 아니라 각본과 촬영까지 도맡은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은 이 이야기가 자신의 자전적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라 한다. 그가 아플 때 부인과의 관계의 역학이 변했고, 어쩐지 그녀가 그것을 즐기는 것 같더라는 것이다. 그가 영화를 통해 전하는 결혼 생활의 은유, 관계에 대한 통찰에 경의를 보낸다. ‘House of Woodcock’, 조니 그린우드의 꿈결 같은 음악을 들으며 늘 그 은유를 떠올릴 것이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 / 사진출처. 다음영화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 / 사진출처. 다음영화
정대건 소설가·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