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새하얀 공간? 갤러리는 그런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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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임지영의 예썰 재밌고 만만한 예술썰 풀기
갤러리는 아름다운 시공간의 정점 같다. 이토록 정교하게 기획되고 섬세하게 설계된 미감이라니. 여백의 공간에 가공된 아름다움은 자연의 그것과는 또 달랐다. 하얀 벽, 알맞은 눈높이, 그림 앞에 가만히 서보는 것만으로 나는 멋있어지는 것 같았다.
실제 아이를 키우며 자존감이 낮아졌을 때 우리를 건져 올린 것도 예술이었다. 기가 죽은 아이를 미술관에 데리고 다니며 속삭였다. 이 근사한 공간을 누비는 우리, 멋진 그림을 누리는 우리, 정말 멋지지 않니. 특별하지 않니. 가스라이팅인가.
하지만 직접 갤러리를 10년쯤 운영해보며 공간에 대한 환상은 와장창 깨졌다. 절대 미감 같던 시공간은 거의 텅 빈 채 무거웠고, 무거워진 공기만큼 마음도 불편했다. 아무리 아름다운 그림이 전시되어 있어도, 보고 누리는 사람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갤러리는 고독한 섬 같았다.
예술 교육을 하면서 섬에서 나와 많은 사람을 만났다. 사람들이 예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알아서 선입견을 깨는 데 집중했다. 마음이 열린 사람들은 금세 관점을 바꾸고 예술을 재밌어했다. 그때부턴 자기만의 취향이 생기고 시야가 확장됐다. 사람들의 변화와 성장을 보면서 나도 달라졌다. 어른의 삶과 기여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됐다. 문래동에 문을 연 작은 공간, 한점갤러리도 예술의 아름다움을 전시하는 공간은 아니다. 오히려 경험하는 공간이고 그것은 체험에 가깝다. 단 한 번도 배우거나 해보지 못했던 예술 향유. 나만의 한점 찾아 오렌지 스티커 붙이기. 그리고 기록하기. 첨엔 몹시 당황스럽지만, 이 경험은 또렷한 기억으로 남게 된다. 그림 이렇게 보면 되네, 재밌네!
얼마 전 청주 손병희 선생 유허지에서 '찾아가는 갤러리와 가족 예술 수업' 행사했다. 한점 오픈식날 와주신 신항서원 선생님의 제안으로 흔쾌히 이루어진 행사였다. 그날 선생님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전시를 꼭 갤러리 가야지만 볼 수 있는 건 너무 아쉬워요. 우리 동네로, 사람들 곁으로 예술이 먼저 찾아오면 안 될까요?"
함께 눈이 반짝했다. 왜 안 되겠어요. 하면 되죠! 그리하여 찾아가는 전시회 프로젝트를 하게 됐다. 하지만 야외라는 변수는 생각보다 큰 문제가 있었다. 바로 예측불가능한 날씨. 그리고 가장 걱정하던 그것, 예상치 않았던 큰비가 내렸다. 원래 행사하려던 생가는 땅이 질퍽해져 사용하지 못하게 됐다. 기념관 앞으로 장소를 옮기고 천막을 치고 모든 스텝이 착착 움직여주셨다. 기념관 처마 아래 이젤을 세우고 눈높이에 맞춰 그림들이 전시됐다. 하늘이 도와 행사 시작 전에 비도 딱 그쳤다. 지역의 마을 어르신들, 가족들, 아이들이 그림 앞에 모였다. 천천히 그림들 앞을 걷고 멈추고 들여다봤다. 그리고 다 함께 나만의 한점 찾기를 했다. 아빠도 엄마도 아이들도 전부 내가 좋아하는 그림을 골랐다. 이후에 나의 취향을 모두 발표했다.
서로에게 놀라고 찡하고 미처 몰랐던 마음을 알아차리는 시간이 됐다. 히어로가 되고 싶은 아빠 마음도 들었다. 좋은 것만 주고 싶은 엄마 마음도 알았다. 추상화에서 희망을 찾아낸 아이의 마음엔 다 같이 큰 박수와 감탄이 터졌다. 어른들도 어려워하는 우제길 작가의 <빛으로부터>를 보고 ' 이 그림은 희망이다. 어둠 속에서 희망이 빛이 되어 찾아오고 있다. 절망 뒤에는 이렇게 희망이 있다.'라고 써주었다. 아이의 직관적 감상이 우리 어른들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그림은 그렇게 보는 것이다. 예술이 멋진 공간에만 있어야 한다는 건 편견이다. 예술 자체가 아름다운 게 아니라 그를 보는 사람이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다. 청주의 처마 밑, 흐린 날의 야외 전시회를 사람들은 한껏 향유했다. 그림 앞에서 많이 웃었고 서로를 들었고 토닥토닥 안아줬다. 예술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이고 유일한 일 같다. 지나다니는 길거리에도 공공미술은 넘친다. 눈 크게 뜨고 예술로 인식하기만 한다면 향유는 언제 어디서든 가능합니다.
임지영 예술 칼럼니스트·(주)즐거운예감 대표
실제 아이를 키우며 자존감이 낮아졌을 때 우리를 건져 올린 것도 예술이었다. 기가 죽은 아이를 미술관에 데리고 다니며 속삭였다. 이 근사한 공간을 누비는 우리, 멋진 그림을 누리는 우리, 정말 멋지지 않니. 특별하지 않니. 가스라이팅인가.
하지만 직접 갤러리를 10년쯤 운영해보며 공간에 대한 환상은 와장창 깨졌다. 절대 미감 같던 시공간은 거의 텅 빈 채 무거웠고, 무거워진 공기만큼 마음도 불편했다. 아무리 아름다운 그림이 전시되어 있어도, 보고 누리는 사람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갤러리는 고독한 섬 같았다.
예술 교육을 하면서 섬에서 나와 많은 사람을 만났다. 사람들이 예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알아서 선입견을 깨는 데 집중했다. 마음이 열린 사람들은 금세 관점을 바꾸고 예술을 재밌어했다. 그때부턴 자기만의 취향이 생기고 시야가 확장됐다. 사람들의 변화와 성장을 보면서 나도 달라졌다. 어른의 삶과 기여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됐다. 문래동에 문을 연 작은 공간, 한점갤러리도 예술의 아름다움을 전시하는 공간은 아니다. 오히려 경험하는 공간이고 그것은 체험에 가깝다. 단 한 번도 배우거나 해보지 못했던 예술 향유. 나만의 한점 찾아 오렌지 스티커 붙이기. 그리고 기록하기. 첨엔 몹시 당황스럽지만, 이 경험은 또렷한 기억으로 남게 된다. 그림 이렇게 보면 되네, 재밌네!
얼마 전 청주 손병희 선생 유허지에서 '찾아가는 갤러리와 가족 예술 수업' 행사했다. 한점 오픈식날 와주신 신항서원 선생님의 제안으로 흔쾌히 이루어진 행사였다. 그날 선생님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전시를 꼭 갤러리 가야지만 볼 수 있는 건 너무 아쉬워요. 우리 동네로, 사람들 곁으로 예술이 먼저 찾아오면 안 될까요?"
함께 눈이 반짝했다. 왜 안 되겠어요. 하면 되죠! 그리하여 찾아가는 전시회 프로젝트를 하게 됐다. 하지만 야외라는 변수는 생각보다 큰 문제가 있었다. 바로 예측불가능한 날씨. 그리고 가장 걱정하던 그것, 예상치 않았던 큰비가 내렸다. 원래 행사하려던 생가는 땅이 질퍽해져 사용하지 못하게 됐다. 기념관 앞으로 장소를 옮기고 천막을 치고 모든 스텝이 착착 움직여주셨다. 기념관 처마 아래 이젤을 세우고 눈높이에 맞춰 그림들이 전시됐다. 하늘이 도와 행사 시작 전에 비도 딱 그쳤다. 지역의 마을 어르신들, 가족들, 아이들이 그림 앞에 모였다. 천천히 그림들 앞을 걷고 멈추고 들여다봤다. 그리고 다 함께 나만의 한점 찾기를 했다. 아빠도 엄마도 아이들도 전부 내가 좋아하는 그림을 골랐다. 이후에 나의 취향을 모두 발표했다.
서로에게 놀라고 찡하고 미처 몰랐던 마음을 알아차리는 시간이 됐다. 히어로가 되고 싶은 아빠 마음도 들었다. 좋은 것만 주고 싶은 엄마 마음도 알았다. 추상화에서 희망을 찾아낸 아이의 마음엔 다 같이 큰 박수와 감탄이 터졌다. 어른들도 어려워하는 우제길 작가의 <빛으로부터>를 보고 ' 이 그림은 희망이다. 어둠 속에서 희망이 빛이 되어 찾아오고 있다. 절망 뒤에는 이렇게 희망이 있다.'라고 써주었다. 아이의 직관적 감상이 우리 어른들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그림은 그렇게 보는 것이다. 예술이 멋진 공간에만 있어야 한다는 건 편견이다. 예술 자체가 아름다운 게 아니라 그를 보는 사람이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다. 청주의 처마 밑, 흐린 날의 야외 전시회를 사람들은 한껏 향유했다. 그림 앞에서 많이 웃었고 서로를 들었고 토닥토닥 안아줬다. 예술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이고 유일한 일 같다. 지나다니는 길거리에도 공공미술은 넘친다. 눈 크게 뜨고 예술로 인식하기만 한다면 향유는 언제 어디서든 가능합니다.
임지영 예술 칼럼니스트·(주)즐거운예감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