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실내악으로"…피아니스트 조성진, 또 다른 세계를 보여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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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경남 통영국제음악당
‘조성진과 친구들’ 공연 리뷰
리게티, 버르토크 등 20세기 작품 연주
‘조성진과 친구들’ 공연 리뷰
리게티, 버르토크 등 20세기 작품 연주
조성진의 음악 세계는 끝없이 확장 중이다. 한국인 최초 쇼팽 콩쿠르 우승, 세계적 클래식 음반사 도이치그라모폰(DG) 전속 계약, 모차르트 미발표 작품 세계 초연,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상주 음악가 발탁 등 전례 없는 기록을 세워온 피아니스트지만 그에게 만족이란 없다.
지난 27일 경남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에서 그가 보여준 실내악 공연은 ‘독주(獨奏)뿐 아니라 합주(合奏)에도, 고전뿐 아니라 현대음악에도 도전을 멈추지 않을 것’이란 선언과도 같았다. 그가 손수 연주자 섭외부터 연습 일정 조율, 레퍼토리 선정까지 챙겼을 정도로 공들인 무대 ‘조성진과 친구들’ 얘기다.
이날 공연장 로비는 서울, 대전, 부산 등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인파로 북적였다. 국내에서 좀체 보기 힘든 조성진의 실내악 공연이라서다.
화려한 출연진도 한몫했다. 독일 바이에른방송교향악단의 동양인 최초 제2바이올린 악장인 이지혜, 독일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의 부악장인 박규민, 독일 NDR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비올라 수석 김세준, 아시아인 최초의 파블로 카살스 국제 첼로 콩쿠르 우승자인 문태국, 프랑스 파리 국립 오페라극장 클라리넷 수석 김한, 노르웨이 오슬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호른 수석을 지낸 김홍박이 함께 무대에 올랐다. 오후 5시 5분. 첫 작품은 브람스가 무료했던 노년기에 클라리네티스트 리하르트 뮐펠트의 연주를 듣고 신선한 영감을 얻어 작곡한 ‘클라리넷 삼중주’였다. 묵직하면서도 매끄럽게 흐르는 문태국의 첼로 선율에 스며들 듯 차분하게 소리를 얹어낸 조성진은 첫 소절부터 탁월한 몰입력을 선보였다. 섬세하면서도 우아한 터치와 격정적이면서도 세찬 타건을 넘나들면서 치밀하게 악상 전환을 이끌었고, 끊길 듯 끊기지 않는 유연한 프레이징으로 풍만한 양감을 선사했다.
클라리네티스트 김한은 견고한 아티큘레이션(각 음을 분명하게 연주하는 기법)과 애수 어린 음색, 유려한 기교 처리로 거대한 두 악기에 뒤지지 않을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세 연주자는 2, 3악장에서도 줄곧 안정된 호흡을 유지했다. 브람스의 클라리넷 삼중주는 서로 결투를 벌이기보단 상대의 소리를 감싸 안고 자신을 일부 희생하는 데서 진가를 발견할 수 있는데, 이들은 제한된 음량과 정제된 음색으로 기꺼이 후경을 도맡다가도 주선율일 땐 순식간에 싱그러운 에너지를 뿜어내며 전경에 자리했다. 브람스 특유의 정제된 아름다움과 입체감이 살아나는 순간이었다. 4악장에선 변화무쌍한 리듬에 기민하게 반응하면서도 장음과 단음, 연결과 단절, 고음과 저음 등의 대조를 강조하면서 대단한 추동력을 불러냈다. 다음 곡은 20세기 작곡가 리게티가 브람스에 대한 오마주 차원에서 작곡한 ‘바이올린, 호른, 피아노를 위한 삼중주’였다. 현악기와 금관악기, 건반악기란 독특한 편성 탓에 자칫하면 지저분하거나 산만한 인상만을 남기기 쉬운데, 조성진 이지혜 김홍박은 각자의 선율에 집요하게 파고들면서 이질적인 소리를 조화롭게 풀어냈다. 1악장에선 소리를 앞으로 길게 뻗어내는 바이올린의 수평선과 이를 중심으로 넓고 두터운 폭을 만드는 호른의 광활한 울림, 그 위로 음을 하나씩 떨어뜨리면서 만들어내는 피아노의 수직선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면서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2악장에선 쉼 없이 변하는 리듬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역동감을 불러냈고, 4악장에선 미묘한 음영의 변화를 예민한 감각으로 포착해내면서 ‘통곡’ ‘탄식’의 이미지를 생생하게 살려냈다. 감정을 배제한 듯한 날카로운 음향이 내내 유지되는 가운데 피아노의 거친 타건과 끝없이 치솟는 바이올린의 고음, 미동도 없이 작게 뽑아내는 호른의 저음이 날 선 대비를 이루면서 극도의 긴장감을 선사하다가 점차 음량을 줄여 탄식하듯 사라지는 연주는 깊은 여운을 남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마지막 무대도 20세기 현대음악으로 채워졌다. 버르토크가 20대 초반에 만든 초기작으로 고국인 헝가리의 음악적 요소와 독일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로부터 받은 영향이 혼재된 ‘피아노 오중주’였다. 조성진 이지혜 박규민 김세준 문태국은 시작부터 꿰맞춘 듯한 세기와 밀도, 같은 길이의 음형과 속도로 선율을 주고받으면서 긴밀한 호흡을 선보였다. 단순히 물리적인 힘으로 소리를 키운 것이 아니라 각 악기군의 음색을 켜켜이 포개가며 만들어내는 응축된 에너지와 풍성한 색채는 전체 악곡에서 일관성 있게 나타났다.
2악장에서는 싱커페이션(당김음)을 유연하게 주고받으면서 작품 특유의 경쾌한 맛을 제대로 살려냈고, 3악장에선 모티브 하나하나를 정밀하게 조형하면서 몽환적인 동시에 무게감 있는 악곡 본연의 색채를 완연히 펼쳐냈다.
4악장 초입에선 점차 연주 속도를 높이면서 청년 버르토크가 느꼈을 혈기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뚜렷한 방향성과 강한 추진력으로 모든 음을 앞으로 나아가도록 이끌면서도 아티큘레이션은 흔들리지 않았고, 명징한 리듬 표현으로 시종일관 헝가리 무곡의 자유로우면서도 유쾌한 심상을 그려냈다. 몸에 반동이 생길 정도로 세게 건반을 내려치면서 공연장 천장까지 울림을 퍼뜨리는 조성진과 활 전체를 넓게 사용하면서 묵직한 울림을 뿜어내는 4대의 현악기 사이에서 튀어 오르는 불꽃 같은 에너지는 청중의 환호를 이끌기에 충분했다.
통영=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
지난 27일 경남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에서 그가 보여준 실내악 공연은 ‘독주(獨奏)뿐 아니라 합주(合奏)에도, 고전뿐 아니라 현대음악에도 도전을 멈추지 않을 것’이란 선언과도 같았다. 그가 손수 연주자 섭외부터 연습 일정 조율, 레퍼토리 선정까지 챙겼을 정도로 공들인 무대 ‘조성진과 친구들’ 얘기다.
이날 공연장 로비는 서울, 대전, 부산 등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인파로 북적였다. 국내에서 좀체 보기 힘든 조성진의 실내악 공연이라서다.
화려한 출연진도 한몫했다. 독일 바이에른방송교향악단의 동양인 최초 제2바이올린 악장인 이지혜, 독일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의 부악장인 박규민, 독일 NDR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비올라 수석 김세준, 아시아인 최초의 파블로 카살스 국제 첼로 콩쿠르 우승자인 문태국, 프랑스 파리 국립 오페라극장 클라리넷 수석 김한, 노르웨이 오슬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호른 수석을 지낸 김홍박이 함께 무대에 올랐다. 오후 5시 5분. 첫 작품은 브람스가 무료했던 노년기에 클라리네티스트 리하르트 뮐펠트의 연주를 듣고 신선한 영감을 얻어 작곡한 ‘클라리넷 삼중주’였다. 묵직하면서도 매끄럽게 흐르는 문태국의 첼로 선율에 스며들 듯 차분하게 소리를 얹어낸 조성진은 첫 소절부터 탁월한 몰입력을 선보였다. 섬세하면서도 우아한 터치와 격정적이면서도 세찬 타건을 넘나들면서 치밀하게 악상 전환을 이끌었고, 끊길 듯 끊기지 않는 유연한 프레이징으로 풍만한 양감을 선사했다.
클라리네티스트 김한은 견고한 아티큘레이션(각 음을 분명하게 연주하는 기법)과 애수 어린 음색, 유려한 기교 처리로 거대한 두 악기에 뒤지지 않을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세 연주자는 2, 3악장에서도 줄곧 안정된 호흡을 유지했다. 브람스의 클라리넷 삼중주는 서로 결투를 벌이기보단 상대의 소리를 감싸 안고 자신을 일부 희생하는 데서 진가를 발견할 수 있는데, 이들은 제한된 음량과 정제된 음색으로 기꺼이 후경을 도맡다가도 주선율일 땐 순식간에 싱그러운 에너지를 뿜어내며 전경에 자리했다. 브람스 특유의 정제된 아름다움과 입체감이 살아나는 순간이었다. 4악장에선 변화무쌍한 리듬에 기민하게 반응하면서도 장음과 단음, 연결과 단절, 고음과 저음 등의 대조를 강조하면서 대단한 추동력을 불러냈다. 다음 곡은 20세기 작곡가 리게티가 브람스에 대한 오마주 차원에서 작곡한 ‘바이올린, 호른, 피아노를 위한 삼중주’였다. 현악기와 금관악기, 건반악기란 독특한 편성 탓에 자칫하면 지저분하거나 산만한 인상만을 남기기 쉬운데, 조성진 이지혜 김홍박은 각자의 선율에 집요하게 파고들면서 이질적인 소리를 조화롭게 풀어냈다. 1악장에선 소리를 앞으로 길게 뻗어내는 바이올린의 수평선과 이를 중심으로 넓고 두터운 폭을 만드는 호른의 광활한 울림, 그 위로 음을 하나씩 떨어뜨리면서 만들어내는 피아노의 수직선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면서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2악장에선 쉼 없이 변하는 리듬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역동감을 불러냈고, 4악장에선 미묘한 음영의 변화를 예민한 감각으로 포착해내면서 ‘통곡’ ‘탄식’의 이미지를 생생하게 살려냈다. 감정을 배제한 듯한 날카로운 음향이 내내 유지되는 가운데 피아노의 거친 타건과 끝없이 치솟는 바이올린의 고음, 미동도 없이 작게 뽑아내는 호른의 저음이 날 선 대비를 이루면서 극도의 긴장감을 선사하다가 점차 음량을 줄여 탄식하듯 사라지는 연주는 깊은 여운을 남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마지막 무대도 20세기 현대음악으로 채워졌다. 버르토크가 20대 초반에 만든 초기작으로 고국인 헝가리의 음악적 요소와 독일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로부터 받은 영향이 혼재된 ‘피아노 오중주’였다. 조성진 이지혜 박규민 김세준 문태국은 시작부터 꿰맞춘 듯한 세기와 밀도, 같은 길이의 음형과 속도로 선율을 주고받으면서 긴밀한 호흡을 선보였다. 단순히 물리적인 힘으로 소리를 키운 것이 아니라 각 악기군의 음색을 켜켜이 포개가며 만들어내는 응축된 에너지와 풍성한 색채는 전체 악곡에서 일관성 있게 나타났다.
2악장에서는 싱커페이션(당김음)을 유연하게 주고받으면서 작품 특유의 경쾌한 맛을 제대로 살려냈고, 3악장에선 모티브 하나하나를 정밀하게 조형하면서 몽환적인 동시에 무게감 있는 악곡 본연의 색채를 완연히 펼쳐냈다.
4악장 초입에선 점차 연주 속도를 높이면서 청년 버르토크가 느꼈을 혈기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뚜렷한 방향성과 강한 추진력으로 모든 음을 앞으로 나아가도록 이끌면서도 아티큘레이션은 흔들리지 않았고, 명징한 리듬 표현으로 시종일관 헝가리 무곡의 자유로우면서도 유쾌한 심상을 그려냈다. 몸에 반동이 생길 정도로 세게 건반을 내려치면서 공연장 천장까지 울림을 퍼뜨리는 조성진과 활 전체를 넓게 사용하면서 묵직한 울림을 뿜어내는 4대의 현악기 사이에서 튀어 오르는 불꽃 같은 에너지는 청중의 환호를 이끌기에 충분했다.
통영=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