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진보 싱크탱크 CAP의 선임연구원들. 왼쪽부터 라이언 멀홀란드, 마이크 윌리엄스, 트레버 서튼. 사진=김리안 기자
미국 진보 싱크탱크 CAP의 선임연구원들. 왼쪽부터 라이언 멀홀란드, 마이크 윌리엄스, 트레버 서튼. 사진=김리안 기자
미국진보센터(CAP)는 중도 진보 성향의 싱크탱크다. 중도 보수 성향의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와 대척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CAP의 선임 연구원 라이언 멀홀란드, 마이크 윌리엄스, 트레버 서튼 선임 연구원 3인방이 최근 방한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관련해 한국 기업들의 미국 투자 전망과 한국판 인플레이션감축법(K-IRA) 추진 현황 등을 살피기 위해서다. 지난 22일 성동구에 위치한 기후솔루션 사무실에서 이들과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IRA가 근로자 친화적인 법안이라고 보는 이유가 뭔가.
=바이든 대통령이 2020년 대선에 출마했을 때 항상 외친 말이 있다. 바로 "나는 기후 위기를 생각할 때 일자리를 떠올린다"는 구호였다. 이는 그가 당선된 뒤 미국재건구상(Build Back Better)이라는 국정운영 제안으로 이어졌고, 이후 IRA로 발전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IRA를 통해 두 가지 방식으로 구체화됐다. 첫째, 청정 에너지 인프라와 에너지 효율성을 구축하는 데 투자하면서 근로기준을 적용했다. 이 기준은 태양광 발전소를 짓거나 (패널) 공장을 건설하는 사람들이 양질의 일자리, 특히 노조원 지위를 가질 수 있도록 보장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여기에 적정 임금 기준과 견습 프로그램 관련 기준도 포함됐다. 둘째는 국내 제조업 부흥과의 연결이다. 미국내 제조업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인센티브가 IRA에 포함됐고, 많은 산업이 되살아나(면서 일자리가 창출되)고 있는 점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IRA는 정의로운 전환이나 청정 에너지로의 전환에 의한 경제적 충격을 다루는 방식에서 큰 패러다임 전환을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기존의 방식은 규제나 세금 부과 등을 이용해 탄소 집약적인 산업의 경제 활동을 전환하도록 (압박하는) 방식이었다. 이로 인해 일부 노동자는 일자리를 잃어야 했다. 하지만 IRA는 다른 접근 방식을 취했다. 먼저 경제적 인센티브를 제공해 녹색 산업의 성장을 촉진하고, 사람들이 새로운 산업에서 즉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창출했다. 우리는 녹색 에너지 산업의 일자리를 먼저 만들어 사람들이 전환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렇게 경제 전환을 추진하면서도 동시에 일자리를 창출하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채찍보다는 당근을 줬다'는 패러다임 전환에 대해 말했는데, 미국 외부로 시선을 돌려보자. 미국이 IRA를 도입했을 때 일각에서는 자본력으로 무장한 미국이 글로벌 보조금 전쟁을 촉발했다고 비판했다. 유럽 한국 일본 등 많은 미국의 동맹국 기업과 자본이 미국행을 택했기 때문이다. IRA가 과연 전 세계적으로 모두가 공존할 수 있는 긍정적인 패러다임 전환일까?
=그 같은 주장에는 여러 위험이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자유 무역과 자본주의를 연관시키는 일부 극우 지식인들이 성공을 거둔 것처럼 보이는 점에서 문제다. 무조건적인 자본주의가 민주주의 사회에 꼭 바람직한 경제 성장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하는 것도 잘못된 전제다. 미국과 한국의 역사뿐만 아니라 최근 중국의 역사만 봐도 변혁적인 경제 성장은 주로 시장 장벽이 존재할 때 일어났다. 예를 들어 19세기 미국 정부의 주요 수입원은 관세였다. 당시까지만 해도 소득세는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제 발전에서도 산업 정책이 큰 역할을 했다. 지금 중국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래서 이를 자본주의(와 자유 무역)에 대한 전쟁으로 표현하는 것은 잘못된 가정이다. IRA는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왜곡과 외부 효과를 바로잡기 위한 시도이다. 경제 활동의 진정한 사회적 비용을 고려했다면, 우리는 화석 연료를 지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의 정책을 통해 시장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의 정책을 통해 시장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이 대목에서 3명의 설명이 더 길어졌다. 아무래도 IRA에 대해 '동맹국과도 보조금 전쟁을 벌이는 것'이라는 공세에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다.)
=자본주의에 관해 첨언하고 싶다. IRA의 (기본) 구조는 보조금을 통해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 이후 미국 제조업 부문에 약 1조 달러의 민간 투자 금액이 있었다. 이는 역사적으로도 매우 높은 수치이며, 이 투자는 대부분 민간에서 (자율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를 통해 자본주의를 강화하면서도 (단순한 자본 축적이 아니라) 해당 자본을 노동자와 국내 제조업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구조화했다는 점에서 (기존의 자본주의와) 중요한 차이가 있다. 또한 (IRA 이후) 한국이 미국 시장에 대한 외국인직접투자를 크게 늘렸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많은 한국 기업들이 한국에 있다가 미국으로 투자를 옮긴 게 아니라 중국 공급망을 미국행으로 돌린 것이다. IRA의 목표는 미국이 공급망을 지배(독식)하려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미래 핵심 산업에서 자립하는 발판을 마련하도록 돕는 것이다.
=또한 IRA는 한국이나 다른 파트너 국가들에게도 동일한 방향으로 IRA와 유사한 정책을 도입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이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전 세계는 (에너지 전환을 위해) 더 많은 태양광 패널과 전기차, 배터리를 필요로 하고 있다. 여러 국가가 이 전환 산업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다변화된 공급망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는 각국이 협력할 기회를 제공할 것입니다. 각 국가가 미국식 IRA를 그대로 따라갈 필요는 없지만 IRA의 원칙을 각국의 여건에 맞게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러분은 K-IRA에 대해서도 일부 검토해본 것으로 알고 있다. 미흡한 점을 발견한 게 있을까.
=우리는 한국의 경제나 정치 상황에 대한 전문가는 아니므로 감히 한국에 조언을 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반론으로 말하자면 미국 IRA의 성공 비결은 대담함에 있었다. 우리가 IRA를 통해 성공을 거둔 부분은 중요한 산업에 대해 대규모 투자를 집중적으로 했을 때였다. 반면 충분히 투자하지 못한 부분은 큰 변화가 없었다. 예를 들어 미국 중공업의 탈탄소화에 대한 투자는 충분하지 못했다. 전력 부문에서 재생 에너지 발전량이 급성장한 것과 같은 전반적인 변화가 뒤따르지 못했다. 한국의 경우에도 중공업이 중요한 핵심 산업이다. 대담하게 접근해 이러한 부문을 탈탄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미국 진보 싱크탱크 CAP의 선임연구원들. 왼쪽부터 라이언 멀홀란드, 마이크 윌리엄스, 트레버 서튼. 사진=김리안 기자
미국 진보 싱크탱크 CAP의 선임연구원들. 왼쪽부터 라이언 멀홀란드, 마이크 윌리엄스, 트레버 서튼. 사진=김리안 기자
▶오는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경우) IRA가 폐지될 가능성도 계속 거론되고 있다. 만약 IRA가 폐지될 경우에 대해 어떤 대비책 혹은 대응책이 나올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서는 역발상으로 접근하겠다. IRA를 폐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이다. 이는 의회 문턱을 통과하는 절차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선 이후 의회가 IRA를 완전히 폐지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본다. 설사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다 해도 대부분의 IRA는 그대로 유지될 것이다. 특히 세액 공제 기반 보조금 제도 계속 남아 있을 것이다. 이는 (세법에도) 법적으로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직접 지원금(grant)의 경우에도 대부분이 이미 집행됐기 때문에 새 행정부가 이를 회수하거나 취소하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결국 IRA는 더 넓은 관점에서 글로벌 흐름 속에서 탄소중립 산업에 대한 투자의 일환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다고 해서 사라질 문제가 아니다.

▶한국경제신문을 읽는 기업 임원들과 정부 관료들에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기후 위기 해결을 위한 견고한 공공 정책과 강력한 공공 투자가 경제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모두 효과적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이번 IRA를 통해 즉각적인 정치적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도 있지만(IRA 입법의 긍정적인 효과 덕분에 민주당 행정부의 정치적 입지가 올라갔다는 주장도 있지만), 유럽이 기후 위기 해결책을 규제책 중심으로 접근한 것에 비해 미국의 기후 정책은 더 인기가 많고 회복력(지속 가능성) 또한 높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원래 기후 위기에 대한 큰 공공 투자를 주저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IRA 경험상 이러한 공공 투자는 매우 효과적이었다. 노동자들에게 실질적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을 때 그 효과는 더욱 강력했다. 이러한 접근법은 노동자들에게 도움이 되었고, 미국이 우경화로 기우는 흐름을 어느 정도 완화하는 데 기여했다.
=여러 한국 기업들은 세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위치에 있다. 우리가 원하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영향력을 발휘할 기회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기업들이 자신의 영향력을 현명하게 활용해 한국과 미국 등 각국 정부들에 노동자들에 번영을 가져오고 공급망을 탈탄소화하는 정책을 채택하도록 촉구했으면 합니다. 이는 한국 기업들이 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이며, 그들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을 적극적으로 행사해야 할 시기이다.
=IRA는 한국 기업들이 친환경 투자를 늘리고, 특히 미국 내 청정 에너지 및 탈탄소화 분야에 진출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 기회를 통해 한국 기업들이 국제적인 친환경 리더십을 발휘하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함께 만들어가는 데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CAP에 대해 소개해달라.
=CAP는 국가 안보, 국제 정책, 에너지 및 환경, 노동 등 다양한 이슈를 다루는 진보적인 싱크탱크다. (IRA의 설계자인) 존 포데스타 미국 기후특사가 2003년 설립했다. 포데스타는 빌 클리턴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역임한 뒤 "미국의 싱크탱크들이 대부분 보수 성향이고, 중도 좌파 정책에 집중하는 조직이 부족하다"는 판단에 따라 CAP을 결성했다. 이에 따라 민주당 행정부와 특히 강한 연결을 맺고 있으며, 에너지와 환경 분야에 중점을 둔 팀이 있어 진보적 정책을 입법하는 의원들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클린턴에 이어 버락 오바마, 바이든 행정부와도 깊은 관계를 맺어오고 있으며 앞으로 (대선에서) 어떤 행정부가 들어서든 그런 긴밀함이 이어지길 바라고 있다.
존 포테스타 미국 대통령 선임고문. 클린턴 정부에서 대통령 수석고문을, 오바마 정부에서 기후변화정책에 관한 조정법무고문을 지냈다. 바이든 정부에서는 2022년부터 클린에너지이노베이션 담당 대통령 선임고문이다. 존 케리 기후변화문제 대통령 특사의 이임으로 국제기후정책 담당에도 임명됐다. 사진 무라타 카즈사토 제공=니케이ESG
존 포테스타 미국 대통령 선임고문. 클린턴 정부에서 대통령 수석고문을, 오바마 정부에서 기후변화정책에 관한 조정법무고문을 지냈다. 바이든 정부에서는 2022년부터 클린에너지이노베이션 담당 대통령 선임고문이다. 존 케리 기후변화문제 대통령 특사의 이임으로 국제기후정책 담당에도 임명됐다. 사진 무라타 카즈사토 제공=니케이ESG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