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당 대통령선거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대선을 1주일 앞둔 27일(현지시간) 전국 단위 지지도 조사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다시 역전당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을 대신할 민주당 대선 주자로 자리매김하는 데 성공했지만 자신만의 정책 아젠다를 제시하는 일에 실패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美 대선 코앞인데…"해리스만의 정책 뭐냐"

‘간판 정책’ 없어 지지율 저조

미국 대선 분석 사이트 리얼클리어폴리틱스에 따르면 이날 해리스 부통령의 전국 단위 14개 여론조사 평균 지지율은 48.4%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0.1%포인트 뒤졌다. 해리스 부통령은 지난 7월 고령 논란에 휘말린 바이든 대통령 대신 대선 주자로 등장해 지지율을 역전시켰지만 최근 다시 지지율이 하락하는 추세다.

그 원인으로는 ‘간판 정책’ 부재가 거론된다. 후보 교체로 컨벤션 효과를 봤지만 바이든 대통령과 뚜렷이 차별화된 정책을 내놓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해리스 부통령이 대선 후보로 선출된 지 석 달이 지났지만 본인이 인기 없는 (바이든) 행정부와 어떻게 다른지 설명하는 데 고전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WSJ가 25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유권자 중 54%는 해리스 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 정책을 계승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해리스 부통령만의 정책을 펼칠 것’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41%에 그쳤다.

세부 공약은 ‘바이든 재탕’

해리스 부통령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대선 후보로 최종 선출되며 경제 화두로 ‘기회경제’를 제시했다. 주택 보급을 늘리고 물가를 낮춰 저소득층과 중산층에 계급 상승 사다리를 제공한다는 취지였다.

세부 공약이 공개되자 ‘바이든 행정부 재탕’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세금 공약은 바이든 대통령이 3월 공개한 세제 개편안을 큰 틀에서 계승했다. 법인세율 21%에서 28%로 7%포인트 인상, 연 소득 40만달러 미만 가정 세율 현행 유지 등은 완전히 같았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이 제안한 자녀 세액공제(6세 미만 3600달러, 6~17세 3000달러) 공약도 다시 꺼내 신생아 세액공제 6000달러 혜택만 더했다. 주택 200만 가구를 신규 보급한다는 바이든 대통령 공약은 300만 가구로 숫자만 바꿔 해리스표 공약이 됐다.

경쟁자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공약을 가져다 쓰기도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6월 팁 면세 공약을 발표하자 해리스 부통령 역시 8월 네바다주에서 같은 공약을 제시했다.

바이든 선거 지원은 꺼려

전임 정부의 낮은 인기가 발목을 잡자 ‘계승자’를 자처하던 해리스 부통령도 조금씩 거리를 두는 분위기다. 해리스 부통령은 8일 ABC 인터뷰에서 ‘(자신이 대통령이었다면) 바이든 대통령과 다르게 했을 것 같냐’는 질문에 “아무것도 (무엇을 다르게 했을지) 생각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하지만 열흘 뒤 같은 질문에 “나의 경험과 아이디어는 차세대 리더십을 위한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해리스 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의 선거 지원을 꺼린다는 보도도 나왔다. 미국 정치 전문 매체 악시오스는 27일 캠프 소식통을 인용해 “해리스 캠프는 바이든 대통령이 정치적 부담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해 거리를 두려고 한다”고 전했다. 여론조사 분석 사이트 파이브서티에이트가 집계한 바이든 대통령의 평균 국정 운영 지지율은 39%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