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대를 졸업한 A씨(52)는 2022년 경정 시절 한 대기업 건설회사 영업직으로 이직했다. 일선 경찰서 과장이던 그는 본인의 총경 승진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판단했다. A씨는 “50대 중반에 쫓기듯 퇴직할 바엔 일찍 이직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14만 경찰 조직의 ‘허리급’인 경감·경정 계급 중도 퇴직자가 작년 대비 올해 60% 이상 늘어나며 사상 최대치를 경신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정 연차 내 승진하지 못하면 강제로 퇴직당하는 ‘계급 정년제’ 부담에 중도 이탈하는 사례가 급증해서다.
[단독] "총경 승진 못하면 끝"…'경찰 허리' 다 떠난다

일선 경찰서 과장급 ‘경감·경정 엑소더스’

28일 경찰청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9월까지 비간부 연령 정년인 60세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 퇴직한 경감·경정은 1040명으로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정년 전에 자발적으로 퇴직하거나 계급 정년(14년)에 걸려 경찰복을 벗은 이를 합친 수치다. 경감·경정 중도 퇴직자는 2021년 369명에서 2022년 511명, 2023년 707명으로 꾸준히 늘었다.

계급 정년은 특정 연차에 승진을 못 하면 강제 퇴직하는 제도다. 군인, 국가정보원, 소방, 경찰, 등 특정직 공무원만 해당한다. 경찰은 경정 14년, 총경(경찰서장급) 11년, 경무관 6년, 치안감 4년 등의 연차별 정년을 운영한다. 경정은 일선 경찰서의 과장, 광역시·도 경찰청의 계장급 중간관리자다.

최근 들어 경감·경정 계급에서 유독 이탈 현상이 도드라진다는 분석이 나온다. 20대 중반에 경위 계급으로 입직하는 경찰대 혹은 간부후보생 출신 경찰이 30대 후반, 40대 초반에 경정으로 승진한 뒤 총경 승진에서 밀리면 50대 초중반에 옷을 벗어야 한다. 60세까지 근무할 수 있는 경감 이하 계급, 계급 정년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총경 이상 간부들에 비하면 계급 정년이 경정에게 유독 가혹한 셈이다.

최근 경감·경정의 중도 이탈이 늘어난 이유는 2014부터 2년간 일시적으로 경정 승진자를 평시의 1.5배 규모로 뽑은 영향이 크다. 경찰 관계자는 “당시 초임 경정들이 10년이 지나면서 최근 주요 승진 연차가 됐고, 총경 승진문(門)은 크게 확대되지 않아 퇴직자가 증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직 긴장 위해 불가피’ 의견도

일선 경감·경정들은 총경 승진을 위해 과도한 경쟁에 내몰리고, 승진 막차인 경정 10년 차를 넘어서면 3~4년을 근로 의욕이 떨어진 상태로 근무하는 등 부작용이 크다고 설명했다. 수도권 일선 경찰서의 경정 B씨(52)는 “승진은 사실상 포기했고, 퇴직 후 아파트 관리소장직을 알아보기 위해 주택관리사 자격증 시험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50대 초반 경찰을 보안업계, 보험회사 등에 빼앗기는 게 문제라는 분석도 있다. 김도우 경남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50대 경정은 경찰로서 노하우가 최고조에 달하는 시기로 이 시점 퇴직자가 많은 건 조직적 손실”이라고 지적했다. 계급 정년이 있는 국정원도 이런 ‘허리급’ 인력 손실을 막기 위해 2008년 5급 계급 정년을 18년으로 늘린 바 있다.

경찰 내부에선 계급 정년 제도가 아래 연차 경찰의 승진 기회를 넓히고 조직에 긴장을 불어넣는 기능이 있어 중도 이탈은 불가피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더욱 촘촘하게 장기 복무, 중도 전역 제도가 짜인 군과 비교하면 경찰의 계급 정년은 오히려 관대하다는 것이다.

이건수 백석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경찰 인사 시스템 손질이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계급 정년을 완전히 없앤다면 승진 적체 등 다른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다빈/조철오 기자 davinc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