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석 칼럼] 인간은 만족을 위해 설계되지 않았다
지난 16일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의 대결로 관심을 모았던 영광군수 재선거. 일각에선 ‘쩐의 전쟁’으로 불리기도 했다. 쌍팔년도처럼 봉투가 오갔다는 얘기는 아니다. 공약이 논란거리였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은 선거기간 동안 연간 100만원과 120만원의 기본소득을 각각 약속했다. 영광군 인구는 약 5만 명. 매년 500억원가량의 예산을 조건 없이 골고루 나눠주겠다는 뜻이었다. 올해 영광군 예산은 7300억원을 조금 웃도는 수준. 기본소득은 이 중 7% 정도에 해당한다. 얼핏 가능할 듯 보이지만 속살은 허약하다. 영광군의 재정자립도는 11.7%로 전국 243곳 자치단체 중 179위다. 매년 500억원 이상을 깔고 가기엔 부담이 큰 살림살이라는 의미. 같은 날 치러진 곡성군수 재선거에도 기본소득은 ‘기본공약’으로 등장했다. 당선된 조상래 후보가 약속한 기본소득은 연간 50만원. 영광에 비해선 소박한 규모지만, 정책의 타당성에는 적지 않은 물음표가 달렸다.

소득 불평등 해소는 모든 국가의 당면 과제다. 나라별로 시스템은 다양하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정책은 기초생활보장제도. 꼭 필요한 제도지만 문제도 적지 않다. 가장 큰 허점은 복지 수급의 ‘선별 조건’에서 나온다. 부양 의무자 유무나 재산 보유 정도를 기계적으로 따지다 보면 예상치 못한 구멍들이 생긴다. 연락이 끊긴 지 오래된 자녀의 수입 때문에 생계가 막막한 부모가 혜택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일할 유인이 별로 없다는 것도 해결 과제다. 어정쩡한 직업을 구했다간 교통비랑 밥값만 날리고, 생계급여는 깎이는 손해를 볼 수 있다.

기본소득은 이런 빈틈을 메우자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모든 사람에게 일괄적으로 같은 액수를 지급하기에 행정적 번거로움이 없다는 것도 장점이다. 최근엔 또 하나의 이유가 추가됐다. 인공지능(AI)의 등장. 노동시장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대거 퇴출당할 우려가 큰 만큼 일정한 소비 수요를 유지하려면 기본소득이 필수적이라는 논리다.

제도의 겉모습은 깔끔하지만 현실성은 떨어진다. 우선 재원 조달 가능성부터 글쎄요다. 영광군과 곡성군만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으로 끝난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그럴 리 없다. 선거를 치를 때마다 모든 지역에서 기본소득의 유혹에 시달릴 게 뻔하다. 한 표가 아쉬운 선거에서 이를 외면하긴 어렵다. 전국에 기본소득 도미노 현상이 벌어지면 수십조원의 예산이 공중으로 흩뿌려진다. 국가 경제가 버티기 힘든 규모다. 소득 재분배 효과도 크지 않다. 선별 지원이 아니라 보편적 지원인 만큼 효과는 반감되기 마련이다.

매년 수십조원의 예산을 간신히 견뎌낼 수 있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기본’의 ‘기준’이 갈수록 상향 조정될 것이라는 점이다. 행복은 객관적 조건보다는 기대치에 좌우된다. 기대는 금세 조건에 적응하고 주변과의 비교를 통해 계속 눈높이를 높여간다. 챗GPT로 유명한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의 기본소득 실험에서도 인간의 이런 본성은 여실히 증명됐다. 그는 2020년부터 2023년까지 1000명에게 월 1000달러씩 조건 없이 지급하면서 매년 수급자의 정신적 만족도를 측정했다. 결과는? 기본소득을 받기 시작한 첫해에만 스트레스가 줄었고, 2년 차에는 효과가 감소하기 시작했으며 3년 차가 되자 오히려 스트레스 수치가 기본소득을 받지 않은 대조군을 넘어섰다. 인간은 만족을 위해 설계되지 않았다. 설계도에 반하는 시도는 성공하기 어렵다. 제2, 제3의 영광과 곡성이 줄지어 나타날 것인가? 이번 재선거는 대한민국 국민의 수준을 묻는 무거운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