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미국 정부가 석·박사 등 고급 인재에 발급한 취업 비자를 분석해보니 한국은 인구 10만 명당 10.98명으로 일본(0.86명)의 12배, 중국(0.94명)의 11배, 인도(1.44명)의 7배를 넘었다는 한국경제신문 보도다(10월 28일자 A1, 3면). 한국의 인재 유출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것이다. 고급 두뇌의 한국 이탈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2013~2022년 10년간 이공계 인력 34만 명이 해외로 떠났는데 이 중 석·박사만 9만6000명에 달했다. 스탠퍼드대 인간중심인공지능(AI)연구소 조사에선 한국은 지난해 인도, 이스라엘 다음으로 AI 인재 유출이 많았다.

고급 인재가 한국을 떠나는 핵심 이유는 연봉 차이다. 구글, 애플 등 실리콘밸리 빅테크는 삼성전자 같은 국내 굴지의 대기업보다 통상 2~3배 높은 연봉을 제시한다. S급 인재에게는 수백만달러를 안겨주기도 한다. 빅테크에 비해 열악한 연구 환경과 수직적 조직문화도 핵심 인재들이 한국을 등지는 이유다. 애국심에만 호소해선 이들의 발길을 돌려세우기 어렵다. 능력에 걸맞은 보상이 이뤄져야 하는 것은 물론 글로벌 인재들이 마음껏 일할 수 있도록 조직문화도 수평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물론 기업에만 맡겨둘 일은 아니다. 고용시장을 유연하게 고치는 작업도 뒤따라야 한다. 기업들이 우수 인재에게 파격적인 보상을 해주고 싶어도 연공서열 위주의 임금체계에선 쉽지 않고, 한창 바쁘게 일해야 할 시기에도 경직된 주 52시간제 때문에 집중적으로 일하지 못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게 국내 현실이다. 나눠먹기식 연구개발(R&D)도 성과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연구는 실패하더라도 책임을 묻지 말고 다시 도전할 기회를 줘야 인재들이 마음껏 연구할 수 있다.

인재 한 명이 수십만 명을 먹여 살리고 첨단산업이 경제는 물론 안보를 좌우하는 시대다. 미국, 중국 등 세계 각국은 AI, 반도체 등 첨단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치열한 인재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한국은 가진 게 사람뿐인 나라다. 밖에 나가 있는 인재를 불러들여도 모자랄 판에 국내 인재까지 해외에 뺏긴다면 미래는 보나 마나다.